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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Oct 24. 2021

04 훈육을 시작해야 해!

            진짜 훈련은 사랑인가?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밤이를 혼내기 시작했다.


방법은 모르니까 인터넷을 뒤져서 강아지 훈련하는 법을 검색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따라서 해 보기도 하고 

또는  TV에서 나오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라는 프로를 보면서 

“그래 세상에 나쁜 개는 없지 우리 밤이도 나쁜 개가 아니지”라고 

 머릿속으로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듯이 세뇌를 했고 

가족들이  모이면  열띤 토론을 벌이고 나름의 정의를 내리면서 우리 나름대로 궁여지책을 찾았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우왕좌왕했고 그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들이 너무나 쉽게 하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TV 하고 우리의 현실은 달랐다.


한 번씩 따라 해 보다가 교육의 효과가 없으면 우리는 밤이 에게 다시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너 그렇게 자꾸 물면 세나개에 신청한다.”     

지금 와서 보니 협박으로 끝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세나개를 신청하든 전문 훈련사에게 의탁을 하든 했어야 했다.

 우리의 협박은 사실 우리의 답답함을 어찌 할바 몰라서 우리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달래주는

 메아리  같은 것이었지 밤이 에게는  협박이 아니었다.

강아지가 아무리 영민해도 우리의 협박을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정말 그때는 누가 우리 밤이에게 제발 

주인을 무는 건 나쁜거라고  말을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쉽게 생각을 했던 건 아닌지 걱정과 후회가 밀려 올라왔다.


내가 생각했던 강아지란 어릴 적 집 마당에서 

키우던 우리나라 시골 개였었다.

 내 기억에 어릴 적 우리 동네 개들은 마냥 순하고 마음 좋은 털털한 아줌마 같아서 물지도 않았고

 우리 옆에 늘 붙어서 따라다니는 마냥 친구 같은 그런 강아지 말이다.

 하긴 그때는 아이들을 마당에서 키웠기에

 그 아이들의 이갈이나 이런 것을 모르고 

지나갔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밤이는 앙칼졌다. 

그래서  시바견인 밤이가 일본 토종개라서 우리나라 강아지랑 정서가 달라서 저렇게 물어대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 가족의 성품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녀석이 깨물면 너무나 아파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다가도 한 번의 반가운 꼬리 짓에도  

가족끼리 모여서 했던 모든 결의와 다짐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밤이의 노리개로 전락되기 일쑤였다.

훈련이 엉망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밤이는 왜 갑자기 우리가 자기에게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또 왜 금방 간식을 주면서 웃어대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응시하고 있는 똘똘한 밤이


점점 날은 더워지고  옷은 얇아져 자연스레 맨 살이 점점 드러나면서 우리의 아픔과 고뇌도  깊어가고 있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여기저기 비명소리가 들렸고 우리 가족은 서로 손과 발을 비교해 보면서 

그날의 피해 정도를 서로 나누고 위로와 속상함을 토로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당시에 우리는 밤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밤이의 깨물기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우리 밤이는 무는 일에도 에너지가 넘쳤다.

그나마 군기반장을 자처하며  군기를 잡던 아들이 국가의 부름을 받아서

훈련소로 가버렸기에 밤이가 그나마도 무서워할 사람이 없었다.

     

아이는 영민하고 예민해서 배변을 가리는 것도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단어들도 빨리 습득을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눈치 빠르고 영민한 강아지는 

어떻게 해야 우리 집에서 주도권을 뺏어오는지를 알아버린 것 같았다.

또한 이 집에서는 최소한 자기를 제어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이제 남은 우리 식구들은 다들 서로를 비난하면서 군기를 잡는다고 하지만 

누구 하나 딱 부러지게 밤이를 휘어잡을 사람이 우리 집에는 없었다.

특히 한 번도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은 없고 옆 집개에게 물려만 봤다는 

겁 많고 어진 남편께서는 녀석과 공감을 한다면서 녀석의 응석을 한껏 받아주고 있었다. 

점점 우리 집은 밤이 천하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럴수록 밤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는 더욱 힘이 들었다.

방에서 나와서 주방으로 가는 평범한 과정이 마치 007 작전을 하듯이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곤 했었다.

당연히 나는 가급적이면 밤이를 피해서 다녔고 어떻게 하든지 나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었다.

이런 시간들은 몹시도 천천히 흘러가는 듯했다.

창밖을 구경하고 있는 밤이


 밤이를 입양한 것에 대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부인할 수가 없는 감정이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나를 따라서 뒤꿈치를 물던 녀석을 따돌리고 안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닫아버린  미닫이 문을 열어야만 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문을 슬며시 열어보니

거기에는 밤이가 우두커니 앉아서 내가 사라진 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그만 몸을 동그랗게 구부린 채로 동그마니 앉아있는 아이는 나를 슬픈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그 모습이 슬프게 보인 것일까?

나도 모르게  갑자기 측은지심이 생긴 걸까?     

동그랗게 몸을 말고 구부린 채로 바라보는 녀석이 너무나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그 녀석을 안아주었다.

그 순간 아이는 나를 물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에게 폭 안겨서 안심을 하듯이 한참을 안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왜 이제야 밤이를 안아주었지? 라는 생각과 함께 

이상하게 따뜻한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그제서야 밤이가 사랑스러웠지만 밤이에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 일이 있은 뒤 밤이는 거짓말처럼 무는 행동이 많이 줄어들었다.     

왜 그런지는 이유는 모르겠다.

그 시간 이후에 갑자기 이빨이 간지러워서 아무거나 깨물대는 시기가 지나간 건지...

아니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을 그때 내가 안아준 걸로 해소가 된 건지 

아니면 이제는 자기가 이 가족과 하나가 된 것을 느낀 건지..

이유는 모르지만 그 시간을 시작으로 밤이는 깨무는 횟수가  많이 사라졌다.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혼나던 시절 밤이

그 시간 이후로  나 역시도 밤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인식되는  가치관의 변화 시점 같은 것 일까?     


사랑스러운 모습에 환호를 지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 모습 뒤에는 아이와 함께 하면서 겪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 첫 번째 불편함을 어떻게 나는 감수할 것인가? 

이것이 밤이와 겪는 첫 번째 상생의 고민이었다.

그리고 이 고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고민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상생의 고민을 거쳐야 비로소 밤이는 나에게 반려견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명은 절대로 귀여움으로만 마냥 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생명은 성장하고 변화한다.

그 변화 속에는  존중해야 할 그 존재만의 특별함과 나와는 다르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는 어떤 모습들을 

인정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밤이로 인해서 반려한다는 말에 대해서 더 신중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반려자인 우리 남편과 가족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반려는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생명과 관계 맺고 살아가려면 정말 배워야 할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정말 반려하는 법을 잘 배우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훨씬 따듯해지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아니면 반대로  따뜻한 세상은 서로 반려를 잘하는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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