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를 살아가는 거지, 행복까지 따라 하진 못해.
요즘은 sns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볼 기회가 많다.
아는 지인이 유럽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럽고 부러워서 샘이 날정도였다.
그래서 집중이 안되고 내 삶이 너무 팍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었다.
나도 저렇게 유럽을 여행하고 예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너무나 행복해질 것 같았다.
이 확신이 내 마음 밑 자락에 강하게 깔려 있어서
이 상황을 재현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안쓰럽고 불행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뭔가 붕 떠있는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나니
정말 저 상황에서 나는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떠나서 멀리 가는 것을 불편해하는 나는
여행이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구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낯선 곳에서는 늘 뭔지 모를 불안이 있기 때문에
마냥 내 집처럼 편안하지가 않았다.
그러니 여행을 가면 새로운 곳에 왔다는 호기심과 흥분이 있기는 해도
뭔지 모를 긴장과 불안은
편안하게 그 상황을 즐길 수 없게 만들곤 했다.
낯선 곳에서 내가 집처럼 편안하게 즐긴다면 행복하겠지만
나는 낯선 곳에서 그 지인처럼 옷을 차려입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차라리 내 거실에 앉아서 티브이 속에서 나오는
세계 테마여행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리 만족하는 편이
훨씬 행복할 때가 많다.
남이 행복해한다고 나도 똑같이 행복한 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시샘이 사라졌다.
시샘이 사라지니 행복해졌다.
최근에 아는 후배와 만나서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이 모든 일은 1시간 이 조금 넘는 시간에 이루어졌다.
정말 짧은 시간에 점심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는데
그 시간은 행복으로 너무나 충만했었다.
우리가 만난 장소는 그 흔한 핫플레이스도 아니고
이국풍의 카페나 대단한 음식점도 아니었다.
그냥 아파트 상가에 있는 시래깃국에 커피였다.
그런데 정말 최근에 그 만남이 가장 집중이 되었고 재미가 있었다.
너무나 좋아서 파리나 맨해튼의 유명한 거리의 카페에 앉아 있어도
지금 여기보다 더 행복하지 않겠다 싶었다.
이 자리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만큼 행복을 느낄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행복은 다 각자의 몫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 과의 상황 비교가 별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어디에 있든지 그 순간 나는 나만큼 행복하다.
그리고 나처럼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알았다.
아! 이것이 각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로구나.
세상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다 따라 한들 마음속 행복까지 따라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의미가 없고 그러기에 나의 삶에 더 진실해지면 될 일이다.
이것이 깨달아지는 지금의 58세가 기적이고 또 다른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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