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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물 Aug 19. 2024

타자라기차! 이렇게까지 타봤니?

부제:사서 고생하기


저녁을 먹고 정리하고 난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테이블로 모였다. 낮에 시장에서 사 온 과일을 깎아먹으며 내일 일정을 체크하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내일 우리는 타자라기차를 탈 계획이었다. 타자라기차는 아들이 세렝게티 다음으로 기대하고 있는 여행이다. 나는 불편한 잠자리와 기차를 타는 동안 씻기 어렵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아들은 그저 기차 타고 먹고 자면서 이동하는 것에 들떠 있었다. 우리는 아루샤에서 타자라기차를 타고 잠비아의 카피라음포시까지 가서 리빙스톤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왠지 찜찜한 마음에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출발지가 아루샤가 아니라 다르에르살람이었다. 한번 더 체크하지 못한 나의 실수다. 내일 당장 다르에르살람으로 가야 한다. 타자라는 화요일 완행과 금요일 급행으로 일주일에 딱 두 번만 운행하는 열차다. 급행이라고 해도 한국의 KTX를 생각하면 안 된다.  워낙 3~40km로 달리는 느리고도 느린 기차라 말이 급행이지 꼬박 2박 3일이 걸린다. 하하하!

우리는 화요일에 기차를 타려고 했던 계획을 바꿔 금요일에 기차를 타기로 하고 여행일정을  급하게 수정했다.


여행은 돌발변수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돌발일 수 있을까?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한 달 살기 여행이라 시간적인 여유가 있긴 하지만 다음 일정들도 있고 타자라열차를 타는 데에 시간을 무작정 쏟을 수도 없기에 며칠이나 딜레이 되는 건 큰 일이다. 더구나 여행계획이 수정될 때마다  불어나는 비용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루샤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면  다르에르살람까지 1~2시간이면 갈 수 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우린 사서 고생하는 여행자이기에 눈물 한번 훔치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다르에르살람으로 가기로 했다. 일정을 조율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잠이 덜 깬 아들과 짐을 꾸려 새벽에 출발했다.


다르에르살람까지는 버스로 12시간이 소요된다.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아프리카는 한번 움직였다 하면 최소 7~8시간 아니면 12시간쯤은 기본인 것 같다. 하하하!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내내 나는 대륙의 크기를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칭얼대는 두 아기를 데리고 고군분투하는 젊은 엄마와 멀미로 정신 못 차리는 아가씨, 다운받은 영화를 보다 지쳐 잠든 아들… 버스 안을 가득 채운 승객들의 땀냄새가 뒤섞인 채 끝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리느라 고달팠는지 타이어가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12시간 동안 아무 일 없이 달리면 아프리카가 아니지! 퍼져버린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데 버스기사님을 포함한 남자들 여럿이 구슬땀을 흘린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은 젖먹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누구 한 사람 큰소리 내지 않고 버스가 다시 출발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린다.

다르에르살람에 도착해 숙소로 가는 길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택시기사는 찌는 듯한 탄자니아의 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차창을 모두 내린 채 내달렸다.  코끝으로 들어오는 매캐한 도시 매연에 콧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다음날 나는 약을 먹고 하루종일 누워있어야 했다.  덕분에 아들은 아이패드를 끼고 꿀맛 같은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드디어 타자라기차를 타기로 한 날이다. 우리는 일찌감치 숙소를 나와 기차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기차에서 먹을 간식도 샀다. 출발시간보다 2~30분 일찍 여유 있게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기차역이 이상하리만큼 한산했다.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그때  우리를 유심히 보던 현지인들이 뒤늦게 도착한 우리가 안 돼 보였는지 기차가 이미 출발했다는 슬픈 이야기를 친절하게 전해주었다.

이럴 수가!

어제 티켓 예매를 하며 알려준 시간을 잘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휑한 역사 안에서 망연자실한 채 서 있어 봤자 이미 떠난 기차를 잡을 수도 없는 노릇! 이를 어쩌냐?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오늘 타지 못하면 다음 주 화요일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데 이미 한번 연장한 스케줄이라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외국인들이 기차를 놓쳤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역장님까지 나와 딱해 보이는 우리에게 꿀팁을 주셨다. 마캄바코역으로 밤새 달려가면 내일 오전에 우리가 놓친 타자라열차를 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다르에르살람에서 마캄바코까지 거리는 652km! 서울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다. 밤새 12시간을 쉼 없이 달려가야 마캄바코에 도착한 기차를 탈 수 있다.


간신히 마캄바코까지 가는 차량을 수배한 우리는 캐리어를 차량지붕에 아슬아슬하게 매단 채 타자라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기사님이 졸음운전하지 않을까? 지붕에 매단 캐리어가 떨어지진 않을까? 무장강도를 만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밤새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다음날 아침 일곱 시 마캄바코역에 도착했다. 단 한번 화장실을 이용하느라 쉰 것 외에는 밤새도록 졸지 않고 달린 기사님은 정말 베스트드라이버였다. 나도 운전하지만 12시간을 꼬박 달릴 자신은 없다. 그런데 이 기사님 카페인음료 한 캔 마시고는 한 번도 졸지 않고 밤길을 달리다니 정말 대단하다. 아프리카사람들이 게으르다고 누가 말했던가?

탄자니아를 여행하는 동안 참 쉽지 않았지만 끝까지 책임 있게 우리를 도와준 타자라역 역장님이나 밤샘운전을 해준 기사님을 보며 그동안 갖고 있었던 선입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렇게 기차를 따라잡아 탔으면 해피엔딩인데 아침에 도착한다던 기차가 아직도 마캄바코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 문제는 언제 도착하는지 역장님도 모르니 아무도 모르는 상황! 이걸 타자라열차의 매력이라고 해야 할지 함정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까맣게 탄 우리 속도 모르고 평화롭기만 한 마캄비코>

타자라는 탄자니아를 출발해 잠비아까지 1860km를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3박 4일 소요되는 느리고도 느린 기차다. 그런데 중간에 기차가 탈선하거나 고장으로 멈추면 수리될 때까지 언제 출발할지 기약이 없다. 출발하면 가는 거고 멈추면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 기차! 빨리빨리 민족인 한국사람들은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더구나 마캄바코 역사 안의 누구도 기차가 왜 제시간에 안 오냐며 따져 묻는 사람들이 없다. 언제 출발하는지 궁금해 계속 묻는 건 우리들 뿐이었다.

<기약없는 기다림속에 곤충 찾기 놀이에 빠진 아들>

기차는 끝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역 근처 허름한 숙소를 잡아 잠을 청했다. 그런데 기차는 예정시간보다 일찍 마캄바코역에 도착했다. 그 조용하던 시골동네인 마캄바코가 떠들썩할 만큼 동네 사람들이 우릴 깨웠다. 처음엔 큰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무서웠는데 기차가 도착했으니 빨리 일어나란 거였다.  우리는 눈곱도 떼지 못하고 출발 직전에 기차에 간신히 올랐다.

<타자라기차에서 이 풍경을 보며 그간의 시름을 달래는 중>

기차를 타고나니 어이가 없었다. 대체 우리가 뭐라고 그 새벽에 우리가 기차를 놓칠까봐 우리가 묵는 숙소까지 달려와서 우리를 기차에 탈 수 있게 도와주는건지 말이다. 마캄바코 동네사람들의 오지랍이 아니었으면 우린 또 기차를 놓쳤을 것이다.

대체 이 사람들 뭐지?


그 조용한 동네 마캄바코가 어제 하루종일 우리들 즉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낯선 외국인들(그 동네 사람들은 전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부는 요즘 시대에 코리아가 어느 나라인지도  잘 모른다) 이야기로 시끌시끌했을거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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