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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숲풀 Mar 27. 2022

인생 클레임 처리 매뉴얼(5)

재발방지대책

개선활동을 마친 후에는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내 인생에 있어 다시 마음의 병을 앓지 않기 위해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부캐 줄이기

어플 2~3개만 이용하는 스마트폰과 수십 개를 이용하는 스마트폰의 배터리 소진 속도와 충전 속도가 같을까? 당연히 후자가 훨씬 빠르게 방전되고 충전도 느릴 것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멀티 페르소나'라고 칭하는데, 맡고 있는 역할이 많을수록 번아웃이 쉽게 찾아온다고 한다.


나 역시 착한 딸, 열정적인 직원, 좋은 회사 동료이자 친구 등 많은 역할을 다 잘 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잘 해낼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아직도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알고는 있기에 할 수 있는 역할을 선정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몰두하려고 한다. 


완벽주의 탈피하기

게으른 완벽주의가 예전의 내 모습이다. 100을 해낼 수 없을 것 같으면 미루고 또 미루고 걱정하면서 결국 0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일단 1씩 하다 보면 어느새 50이 되어있고 그 과정에서 10 만큼이 틀렸던 거라면 고쳐서 10을 더하고 또 계속해가면 된다. 그럼 100이 아니라 그 이상도 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만약 예전의 나였으면 이 글은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완벽하게 찾고 회복도 완전히 끝나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글 쓰는 것 자체만 해도 그렇다. 나는 여전히 사고력, 논리력, 창의성 등이 부족한데 이런 내가 무슨 글을 쓰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일단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고 그래서 더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즐거움 찾기

많은 역할에 몰두하면서도 방전되지 않았던 예전을 떠올려보면 힘들게 일한 만큼 또 많이 즐기는 것이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친구와 수다 떨기를 좋아했다. 방탈출 카페에 가고 '문제적 남자'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여행도 자주 다녔다. 그래서 야근, 특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쉬는 날에는 꼭 여가를 즐겼고 일요일 하루 충전해서 다시 출근했었다.  


지금은 강아지와 놀기, 웹툰 보기, 꼬꼬무 챙겨보기, 네잎클로버 기르기, 여행 등에서 꾸준히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비록 두렵고 힘들지만 내 새로운 비전을 찾는 것도 즐겁게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즐겨보는 웹툰 회차가 많이 밀려있어 왜인지 떠올려보니 글쓰기가 즐거워서 다 제쳐두고 있었던 나도 발견했다.    


감사하기

좋은 일에는 당연히 감사해한다. 좋지 않은 일인 경우 당시에는 힘들어하더라도 꼭 그것을 통해 얻은 것을 찾거나 그나마 이 정도라 감사하다 싶은 부분을 찾는다. 사실 원래 감사하는 마음은 늘 지니고 있어서 과거 연수받는 당시, 나를 표현하는 단어 세 개만 빼고 지우라는 미션에서 '감사, 평화' 같은 단어만 남아 성직자냐며 웃던 동기들과의 일화도 떠오른다. 그런데 한참 힘들던 시기에는 그저 나쁜 것만 봤던 것 같아서 지금은 감사할 부분을 꼭 찾으려고 다시 노력하고 있다. 사실 지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내가 누군가를 돕고 싶어 졌고 또 경험이 있는 만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자들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어 감사해졌다.   


인정하기, 알리기

가끔씩 활발하고 자신감 넘치던 예전의 내가 그리울 때도 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그리운 정도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지금은 왜 이모양인지 자책도 하곤 했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나이고 지금의 이 모습도 나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나를 온전히 지지해 주는 이가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사실을 알리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만약에 올림픽 1등을 놓치지 않던 선수가 부상 후 예전의 모습만 떠올리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게 과거에만 머무른다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다친 부분을 잘 살피고 치료받은 후 재활훈련을 꾸준히 해주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전의 기량으로 가까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팬들에게 부상과 재활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그동안의 행적과 돌아온 후 저하된 기량을 이해하지 못해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데 알려져 있다면 응원을 받아 더 잘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나는 마음이 아팠었고 어디가 어떻게, 왜 아픈지 파악하고 인정했다. 그리고 믿는 주변인에게 알려 지지받은 덕에 치료도 받았으니 재활 훈련도 지금 받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곧 필드로도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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