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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숲풀 Mar 27. 2022

이상한 나라의 무명씨(1)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한 작은 시작(1)

번아웃과 우울증을 앓던 당시 그 증상과 원인 제공자들만큼이나 힘들었던 것이 있다. 바로 주변인들의 비난 아닌 비난이었다. 그들은 악의를 가진 것이 아니라 나를 걱정하는 말이었지만 우울증인 내게는 오히려 독이 되는 말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또한 나 조차도 내 증상이 정신과에 갈 증상이 맞는지도 헷갈리고 간다고 해도 기록이 남아 불이익을 당할까 봐, 혹은 약의 부작용이 있을까 봐 무서워 가기를 꺼려했던 기억도 있다. 물론 요즘은 코로나 블루, 연예인 공황장애 이야기, TV 속 정신건강 전문가의 상담 프로그램 등을 접하며 과거에 비해 그 인식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본인이, 혹은 주변인이 정신이나 심리 문제를 겪으면 실질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식 개선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소설로 이야기를 꾸며 보았다.




고통의 시작

이게 뭐지?’          

나는 작은 출판사에 다닌다. 발행된 책들을 잔뜩 등에 지고 하루에 다섯 번씩 이 계단을 이용, 1층에서 5층까지 올라가 전달해야 한다. 다른 계단과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이 빌딩은 우리 회사 소유가 아니므로 방침 상 외부 방문자, 그리고 단순 이동만 하는 직원들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계단은 거의 나만 이용한다고 보면 된다. 그 말은 곧 이곳은 나의 무대! 신나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올라가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3~4층 사이에 처음 보는 알 수 없는 큰 물건이 놓여 있다. 크고 무거워서 치워지지도 않는다. F 팀장님께 보고 드려야겠다.     


       

3일 후. 여전히 그 물건은 치워지지 않았고 나는 무거운 책을 들고 그 큰 물건을 겨우 뛰어넘듯 지나쳐 간다. 언젠가 책이 망가지든 내가 다치든 할 것만 같다. 다시 한번 F 팀장님께 보고 드렸다.          


나 : 팀장님. 아직도 그 물건, 장애물 그대로인데 회사에서 아무 소식 없어요?

F 팀장님 : 어, 치워준대. 기다려. 근데 그게 뭐래?

나 : 저도 처음 보는 거예요. 아직 뭔지 확인도 안 됐대요?

F 팀장님 : 기다리라고.

나 : 넹! 알겠습니다!        


‘뭐, 주중은 바쁘니까 주말에 해주겠지?’

룰루랄라 흥얼거리며 다시 일을 하러 간다.            



장애물이 생긴 지 일주일째. 상황은 여전하다. 심지어 이게 뭔지 왜 생긴 건지 와보는 직원조차 없다. 휴직 후 복귀한 동료와 오늘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내 답답함을 호소해 봐야겠다.          


나 : G대리님. 몸은 좀 어때요?

G대리님 : 이제 괜찮아요. 근데 책장 많은 곳에 가는 게 좀 무섭긴 하네.

나 : 그럴 것 같아요. 책장 삐그덕거린다고 다섯 번이나 말했다면서요?

G대리님 : 그랬지. 그것도 세 번째까지는 F 팀장님이 알았다고 보고한다고 하고 안 했어요.            그래서 내가 지원팀 직접 갔다가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지원팀장님은 그쪽 상사가 아무 말 없는데 왜 왔냐고 핀잔주고 F 팀장님은

          그 얘기 듣고 뭐하는 짓이냐고 엄청 화내고 말이야.

          그래 놓고도 말 안 해서 내가 또 가서 위험하니까 제발 조치해달라 한 거고.

          그때서야 F 팀장님이 지원팀에 처음 말했대요!

          더 웃긴 건 그러고도 며칠을 와보지도 않더니 결국 내가 깔린 거잖아.

나 : 소름이다. 진짜!

    아니 대리님! 저 지금 딱 그래요!

    그 저만 쓰는 계단 있죠? 거기 뭔 물건이 있는데.

G대리님 : 무슨 물건?

나 : 몰라요. 처음 봐요.

     근데 너무 크고 무거워서 계단 다 가리는데 치우지도 못하고.

     그 무거운 책 들고 뛰어넘어야 해요.

     여차하면 다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다른 계단도 못쓰게 하면서 진짜.

G대리님 : 보고 했어요?

나 : F 팀장님한테는 했죠.

    근데 대리님 말 들으니까 왠지 지원팀은 모르는 것도 같은데.

G대리님 : 아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장애물이 생긴 지 10일째. 콰광쾅! 결국 넘어지면서 책이 쏟아져 내렸다. 살펴보니 피는 안 난다. 안심도 잠시, 갑자기 미친 듯이 고통이 밀려온다.          


나 : 아아악!!!!!!!!!!!!!!!!!!!!!!!!!!!!!


딛고 일어서려 하자 왼쪽 다리가 풀려 버린다. 아무래도 뼈가 부러진 것 같다. 내 소리를 듣고 달려온 Y 씨의 부축을 받고 사무실로 겨우 들어왔다. F 팀장님이 쳐다본다.          


F 팀장님 : 왜 그래?

Y 씨 : 계단에 있는 장애물 뛰어넘다가 넘어졌대요.

       근데 대체 저게 뭐예요?     


F 팀장님은 Y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진통제를 가려오라 시킨 후 나를 쳐다본다.   

     

F 팀장님 : 아니, 조심했어야지!

           미련하게 그걸 왜 넘어 다녀서 다치고 그래!

           진작 치우자고 했어야지!

나 : 네? 제가 몇 번이나...

F 팀장님 : 됐고! 내 말이나 들어.

           빨리 약 먹고 더 이상 소란 피우지 말고 조용히 조퇴해.     


진통제를 먹었지만 너무 아파서 밤새 자꾸 잠에서 깼다. 그렇게 뒤척이다 출근 시간이 되어 아픈 몸을 이끌고 준비를 해본다. 움직일수록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나 : 언니. 나 아무래도 출근 못 할 것 같아. 너무 아픈데.

언니 : 많이 아파? 진통제 먹었어?

나 : 응. 근데도 너무 아픈데.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언니 : 얘! 너 외과가 어떤 곳인 줄 알고 그래!

      그렇게 함부로 가는 거 아니야.

      너 지금 절뚝거려도 일어서 있잖아.

      피도 안 나고 멍든 거야 금방 빠질 거야.

      정 아프면 오늘 연차 쓰고 쉬어.

      엄마한테 너 사골국 끓여주라고 말씀드릴게.

      깁스도 사다 줄테니까 그거 하고 사골국 먹고 푹 쉬면 괜찮아질 거야.


너무 아팠다. 하지만 다치면 당연히 이 정도는 아프겠지? 그래, 정형외과는 뼈가 막 으스러진 그런 심각한 사람만 가는 거니까, 참는 게 맞나 보다.              


하루는 쉬고 다음날 택시를 타고 겨우 출근했다. 하지만 너무 고통스럽다. 계단을 오르기는커녕 평지를 걷는 것도 힘들다. 당연히 일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결국 무급 휴가 통보를 받았다.            


같지만 다른 고통의 크기     

당시, 장애물을 뛰어넘지 않으면 계단을 오를 수 없었다. 다른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이용도 몇 번 더 물었으나 안된다고 했다. 조치를 요청했으나 회사에서는 아무 회신도 없었다. 그러나 다친 건 내 탓이 되어있었다. 산재도 신청할 수 없다고 한다. 아니, 할 수 있지만 CCTV도 없고 그 장애물 때문에 다쳤다는 증거도 없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산재 처리를 하면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을 너무 자주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심난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친구 A의 소식을 들었다. 위암 1기라고 한다. 술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지 않는 친구였는데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친구 A는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했다.          


암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무섭다. 하지만 완치율 90%로 치료를 잘 받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주변 사람들 모두는 다독였고 A는 힘을 내서 병원에 다니기로 했다. 젊은 친구가 암이라는 사실에 친구 A의 주변인들은 늘 A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고 약을 챙겨 먹는 사실만으로도 응원받았다. 그 덕인지 치료 효과는 다행히 좋은 듯하다.          



나는 여전히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누워서 뼈가 붙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쉽게 낫지가 않는다. 주변에서는 내 노력이 부족한 거라고 해서 엄마가 주시는 사골국도 잔뜩 먹어보고 뼈에 좋다는 영양제도 사 먹고 뼛조각을 잘 맞추어 붙잡고도 있어 보았다. 하지만 회복이 너무 더디다.               


친구 A와 나, 그리고 친구 B는 셋이 함께 절친한 사인데 취업 후 시간도 안 맞고 A와 내가 아프다 보니 미루다가 정말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생각보다 밝아 보이는 친구 A의 모습에 우리는 마음이 놓였다.     


친구 B : A야. 치료는 받을 만 해?

친구 A : 힘들어. 그래도 다들 응원해주고 효과도 있는 것 같으니까 열심히 해보려고.

         너는 다리 좀 괜찮아?

나 : 모르겠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거 다 해봤는데 잘 안 났네.

친구 B : 뭐 해봤는데?

나 : 사골국, 깁스, 영양제 등등 다 해봤는데 안되니까 이 정도면 그냥 병원을 가볼까 싶어.

친구 B : 음... 병원은 좀..

         부작용 위험하다는데 감안하고 갈 정도는 아니잖아?

나 : 나는 많이 아픈 것 같은데.     

눈치가 보인다.          

나 : 역시 그 정도는 아니겠지?

친구 B : 그래! 너 피도 안 났었다며?

         지금 아예 못 걷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내가 보기엔 그냥 너는 의지가 부족한 것 같아.

         A 봐!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겨내잖아!

나 : A는 치료를 ㅂ         

내 말을 끊고 친구 B가 말한다.          

친구 B :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힘 내고 더 노력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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