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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숲풀 Mar 27. 2022

이상한 나라의 무명씨(3)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한 작은 시작(3)

이상한 나라, 고통 허가제

친구 A의 완치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히는 5년 동안 재발하지 않아야 완치가 맞지만 일단 관리 말고는 치료를 더 하지 않아도 되고 회사로도 복귀할 수 있다는 의미의 완치 소식이었다. 그렇게 또 오랜만에 셋이 만났다.     


친구 A : 애들아!

           그동안 응원해줘서 정말 고마워!

나 : 정말 축하해!

      나도 너 보면서 힘내서 이제 오른쪽 다리만으로도 계단 오를 수 있어!

친구 B : 너희들 정말 열심히 했구나. 멋지다!     


무슨 말을 하려던 친구 A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이내 놀라고 만다.     


친구 A : 어머머!! 왜 그래?

           너 괜찮은 거 맞아?      


카페 계단을 오르다 주저앉아버렸다. 요즘 종종 그랬지만 회복 연습 때문이겠거니 했다. 이번엔 달랐다. 일어날 수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제 부작용이니 뭐니 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이러다가 두 다리를 모두 잃을 것만 같다.    

 


119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다. 힘들게 온 병원임에도 막상 진통제를 맞고 정신이 돌아오자 ‘나 정도면 여기 오면 안 될 텐데. 119까지 불렀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알아채기라도 한 듯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 : 이 상태가 될 때까지 왜 치료를 안 받으셨어요?

           조금 더 늦었으면 못 걸으실 뻔했어요.

나 : ...... 오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이 정도 아픈 건 그냥 내 노력이 부족한 거랬는데.

      버티고 노력하면 다 나을 줄 알고......

선생님 :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나 : 아니. 여긴 절대 걷지도 못하고 막 그런 사람들만 오는 거잖아요.
      저는 서 있을 수 있고 심지어 오른쪽 다리만으로 계단도 올랐는 걸요!

선생님 : 환자분. 이 사진 보세요.

           왼쪽 다리는 부러진 뼈가 제 맘대로 붙어 있어요.

           지지가 되는 것 같겠지만 사실 너무 아프죠.

           자, 이 사진 보세요.

           오른쪽 다리는 염증이 가득해요.

           왼쪽 다리가 아프니 이 다리만 쓰셨나 보군요?

나 : 네 맞아요.

선생님 : 이 정도인데 병원에 안 오면 누가 올까요?

           아무리 주변에서 말려도 이 정도 아프면 생각이 달랐을 텐데.

           어떻게 참으셨어요?     


슬프다는 생각은 딱히 못한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막 흐른다.     


나 : 다들 응원해줬어요.

      할 수 있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직접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아니, 도움받아야만 이겨낸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잘못된 것 같았어요.

      근데 회사 상사분 한 분만 이겨내도록 도와줬어요.


나는 F 팀장이 나에게 했던 것을 다 설명했다.     


나 : 그 덕분에 7층까지도 올라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해낸 건 줄 알았고 아픈 것도 또 그렇게 ‘낫겠지’, 혹은 ‘기분 탓이겠지’ 했어요.


선생님은 약간의 침묵 후 답변하셨다.


선생님 : 제가 20년 전에 진로 고민을 할 때 암센터와 외과 중에 외과를 택한 이유가 있어요.

           우리 사회는 암이나 기타 내과 질병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장해요.

           응원하고 지지도 많이 해주죠.

           하지만 외과는 아직도 그렇지 못하죠.

           안타깝지만 아마 그 상사는 돕는다는 명분을 앞세워서 환자분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걸 이용했을

           가능성이 커요.

           시키는 대로 할수록 망가지는 걸 모르고 환자분이 자신에게 의지하면서 더 힘들어하는 데서

           우월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지키는 거죠.

           그러다 증세가 악화되어도 그건 환자분의 노력 부족을 탓하면 그만 일 테니까요.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외과에 대한 인식이 그러했기 때문에 진짜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와서는 안 되는 병원이라고 많이들 생각하고 또한 치료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많을 거라고

           걱정도 많이 하죠.

           그 시선을 바꾸고 싶었어요.     


뭔가 억울한 것 같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참고 대답했다.     


나 : 2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런 거예요?

선생님 : 요즘은 그래도 유명인들도 외과적인 얘기를 많이 하고 알려져서인지 꼭 심하지 않아도 오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환자분과 주변분들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긴 하죠.

나 :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막상 용기 내서 와도 막 병원 기록 남겨져서 취업할 때 불리하다고 들었어요.

      저만 봐도 그래요.

      이 치료 기록을 보면 걷는 데 문제 있을 것 같을 텐데 누가 뽑겠어요.

선생님 : 걱정 마세요.

            병원 기록은 개인정보라서 타인이 열람할 수 없어요.


선생님은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는다.


선생님 : 참 그동안 힘드셨겠다.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엉 울어버렸다.

아픈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 저는 계속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었나 봐요.

     이제야 허락받은 거 같아요.

     선생님만 그런 거예요.

     ‘너도 병원에 와도 되고 치료받아도 된단다.’라고요.

    

이 말을 끝으로 나는 한참을 울었다.

창피한 줄도 몰랐다.

하지만 선생님은 불편한 기색 없이 충분히 기다려주신 후 다독이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 환자분. 많이 억울하셨죠?

           다시는 이런 일 겪고 싶지 않으시다면 하나만 약속해주세요.

           일단 앞으로 누가 뭐라고 해도 지치지 말고 치료를 꾸준히 잘 받아주세요.

           그리고 회복되고 나면 병원 가는 거, 치료받는 거 별거 아니라고 다들 할 수 있고 해도 된다고 많은

           분들에게 널리 널리 알려주세요.                   




이미 느꼈겠지만 이 소설에서 말하는 외과는 정신과에 해당된다.

외과로 표현했을 때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 생각되지만, 정신과로 바꾸면 그렇지 않다.


힘든 상황에 놓여 발버둥 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고 그로 인해 우울증을 앓아도 주변인들은 당사자의 나약함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스로도 의지가 약해서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아직 많다. 또한 정신과에 가는 것 자체를 꺼리고 처방약 부작용이 치료 효과보다 심할 것이라 단정 짓기도 한다. 물론 예전보다 사회적인 인식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주변에 존재하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거나 “저거 저거 정신과 약 먹는 애잖아. 조심해." 라며 장난의 소재로 보기도 한다. 그 말을 들은 당사자가 상처받지 않더라도 정신과 다니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감에 걸려 고열, 구토, 설사로 고통을 호소하는 가까운 누군가에게 ‘겨우 감기 가지고 유난이야? 네가 나약해서 그래. 참고 버텨! 노력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혹은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후 약을 먹고 재활 훈련을 하는 자에게 ‘부작용 있으면 어쩌려고 약을 먹어? 의지가 부족하니까 그렇지! 어차피 지나갈 일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고 지극히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울증 환자에게 나약하다고 버티라고 꾸짖으면 스스로에 대한 자책만 커질 수도 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우울증의 한 증상이지만 내가 못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 ‘남들도 다 힘들다’라고 하는 것은 너의 고통은 별것도 아닌데 예민하게 군다는 말과 같이 들리기도 한다.     

거실에 나와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게 한심스러워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좀 마’라고 하면 절망감을 부채질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거실에 나온 행동만으로도 크게 노력한 것이고 그로 인해 소유한 에너지를 다 쓴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사실 그 답은 이미 존재한다. 경험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이다.

 


우리는 적정 나이가 되면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질환을 예방한다. 그리고 의심증상이 있으면 진찰을 받으러 가고 아프면 치료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한다. (치료비나 질환에 대해 숨겨야 하는 사연 등은 제외하고 말이다.) 병원에 가면 입원해서 간호를 받거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지원받고 주변인들도 간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최소한의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이나 심리적 문제는 이미 누구나 흔히 경험하는 추세에 반해 인식은 아직까지 회의적이고 방어적인 것이 현실이다. 내가 주인공을 '이상한 나라에 사는 이름도 없는 사람' 즉, '이상한 나라의 무명씨'라고 칭한 이유도 그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미 존재하는 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고 현실적이지만 쉽게 접근하기 위해 신체에 빗대어 표현하게 되었다.

     

만약 인식이 변화되어 몸 건강검진과 같이 정신, 심리에 대한 건강검진도 보편화된다면 어떨까? 이런 문제를 겪는 당사자들은 내가 정신 또는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지 판단하기가 보다 쉬울 것이고, 또한 초기인지, 병원에 가야 할지 체크하는 것도, 맞다고 생각했을 때 병원에 가는 것도 쉬워질 것이다. 주변인 또한 그 당사자를 돕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오히려 상태를 더 악화시키는 문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가스 라이팅을 한 상사도 만약 자신의 정신건강 관리를 잘할 기회가 있었다면 내가 정신과에 가는 일이 없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정신과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정신, 심리적 문제 역시 검진과 예방, 적절한 치료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 알아야 하고 환자와 주변인의 마음가짐 등에 대한 안내와 독려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변화의 과정은 어렵고 더딜 것이다. 그래서 겨우 이 단편의 글로 단번에 바뀔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서 다리를 다친 주인공이나 손가락을 크게 베인 아이 아빠의 마음, 그리고 그들에게 주변인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아주 잠시라도 이상함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면 그게 바로 시작일 것이다.           


이제 그 생각이, 그 시선이 정신, 심리적 문제도 적용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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