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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숲풀 Mar 27. 2022

유한도전 무한도전

실패자의 '도전' 도전기

친구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때 신메뉴가 보이면 꼭 도전해보는 친구가 있는 반면 늘 먹는 메뉴를 고르는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먹던 메뉴를 고르는 친구가 바로 나였다. 안정, 회피가 일상이었기 때문에 도전이라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나를 얽매며 '절대 안 돼'라고 많은 것들을 외쳤다. 그러나 그 절대 안 된다던 재수, 퇴사 등의 상황에 스스로를 데려다 놓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번아웃과 우울증마저 겪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도전한 적도 없이 실패자가 되어있었다.


억울했다. 도전이라도 해봤으면 실패를 각오하기라도 했지. 나는 대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리고 생각했다.          

     

'어차피 실패할 거면 그냥 도전이라도 해보자. 아, 그런데 나는 아직 자존감이 완전히 높지는 않은 겁쟁이니까 끝이 있는 것에 도전하는 걸 도전하자!'    

           

유한도전을 무한도전하면 결국 도전한 자체가 성공이다.   

  

그렇게 도전을 하기 시작했는데, '도전'에 도전하기를 성공했음을 물론이고 멈춰있으면 몰랐을 다양한 사실들을 알아가며 내 마음에 살을 붙이고 있었다.




결과물 만들기


* 자격증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라는 새로운 국가자격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총 4과목인데 한 과목은 이미 일하며 너무나 자주 접한 법령이고, 다른 두 과목은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꽤나 접해봤던 것, 그리고 나머지 한 과목만 새로 공부하면 되는 것이었다. 점심시간, 퇴근 후, 주말이 되면 열심히 공부할 마음으로 등록부터 했다. 하지만 첫 도전이라서인지, 무기력함 때문인지 계속 하는 둥 마는 둥 미루다 결국 시험이 임박한 전 주 주말에서야 공부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생각보다 내가 아는 바가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합격했다. 예전의 나였으면 결국 아는 건 한 과목이고 1회 시험이면 내가 될 리가 없다고 도전도 안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의외로 아는 게 많았다'는 사실을 몰라서 2 회고 3 회고 도전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도전에 도전했더니 해내고야 말았다. 


* 특허증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상업화되지도 않은 상품이다. 미술 솜씨는 형편없지만 냅다 종이를 접고 그렸다. 특허사무소에 찾아가 내밀었다. 하하하. 이미 비슷한 상품은 존재했고 심지어 그래서 반려된 특허도 있었다. 상업화되지 않은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그래도 뭐, 도전에 도전한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특허사무소 분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고 결국 디자인 특허를 따냈다.      

특허사무소는 기존의 특허가 있는지 여부를 봐주고 등록을 위한 서류 작성을 도와주는 곳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내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주기도 하고 다소 부끄러운 내 디자인을 캐드로 완벽하게 구현해 내주었다. 또한 특허비용도 얼마든지 나라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내가 진행하던 당시에는 연말이라 지원이 마감된 후였지만 이를 계기로 추후 특허를 내고 싶을 때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블로그 운영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 사실이 명확한 과학만 좋아하던 내게 글쓰기라는 문학적 요소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한 개, 두 개, 글을 올리다 보니 실력과 별개로 글쓰기가 너무 재미있어졌다. 내 얘기를 하면 누군가 보고 공감하며 뭔가를 얻어간다는 사실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절대 못할 것 같았던 글쓰기라는 걸 할 줄 알게 되었다.     


* 브런치 작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글도 많이 써보고 내 인생 경험을 담을 글을 써서 문과 출신 친구에게 보여줬다가 재밌고 의미 있다는 칭찬을 받아보니 자만하고야 말았다. 브런치 작가에 덜컥 도전했다. 당연히 떨어졌다. 글이 한편이라 그랬나 싶어 하나 더 완성하고 도전했지만 또 탈락. 그제야 실패의 이유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을 보완하고 세 번째 도전했지만 역시나 탈락. 사실 도전에 도전하는 게 목표인데 이미 세 번이나 했으니 성공했던 건데도 이상하게 또 도전하고 싶어졌다. 나 혼자 내 글을 수정하면 객관적으로 비평할 수 없으니 보완이 아닌 것 같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이제 글쓰기로도 성장할 수 있을 기회를 얻었다. 그 과정에서 또 글감이 떠올라 적었고 결국 네 번만에 합격했다.     


* 공모전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질 무렵 지자체에서 '생명존중 수기, 표어 공모전'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즉시 표어를 지었다. 차라리 길게 적으면 할 말이 많은데 25자 이내로 압축해서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5일 정도 쓰고 지우고 반복하다 오늘 제출했다. 결과는 모르지만 나는 또 도전을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말하는 바를 압축하는 방법을 배웠다.               



배우기


* 연기     

꿈까지는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묘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감정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줄 안다는 게 부럽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평소 내가 말을 할 때 대상 인물의 언행을 연기처럼 표현하며 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무슨 연기야'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에 감춰두다가 원데이 클래스로 참여를 해보았다. 피드백은 '처음 하시는 걸 감안하면 꽤나 잘하시네요.'였다. 그리고 무대체질이었다. 앉아서 연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간단히 해볼 때는 자신감이 없어 고칠 점이 많았는데 무대에 올라가 상황극을 하면서 웃는, 우는, 행복한, 무서운 연기를 하자 모두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다만, 화내는 것만 잘 못했다. 화가 안 나는 게 아니라 워낙 꾹꾹 누르며 남의 눈치를 보다 보니 어떻게 내야 하는지를 몰랐나 보다. 동경하던 연기를 배우러 갔다가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되새겼다.   

  

* 댄스     

리듬감이 있고 배운 적 없어도 웨이브가 쉬웠다. 그래서 잠깐이지만 20대 중반쯤 재즈댄스를 배울 때는 두 번 만에 한곡을 마스터했었고 노래방에서도 신나는 곡을 부를 때 춤은 기본이었다. 그래서 원데이 클래스에 한참 빠졌을 때 '헤이마마'를 배우러 갔다. 20대의 나는 없었다. 각 단계별로 배울 때는 '동작이 완벽하다'라는 칭찬을 받았지만 연결만 하면 흐물흐물 연체동물이 따로 없었다. 기억력의 문제였다. 마음의 병을 앓으며 기억력이 현저히 저하되었기 때문에 춤을 출 때 다음 단계가 뭐였는지 생각하다 보니 정작 추고 있는 춤은 대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원래는 잘했는데.' 하는 마음에 조금 씁쓸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잘 추는 나는 예전의 나이고 지금의 나는 그저 즐기러 온 것이다. 신나게 추고 땀을 흘리면 된다며 나를 인정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나중에 번아웃 회복 방법 중 '나를 인정하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 댄스 클래스 덕분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 노션     

이직이 아닌 전직을 해야겠다 생각했을 때 포트폴리오를 준비해보라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디자이너나 연구원들만 해당된다고 생각해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줄만 알았다. 게다가 이미 쓰던 사무 프로그램으로도 충분한데 어려워 보이는 걸 배워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정말 놀라웠다. 평소에 '이런 건 이렇게도 활용하면 좋을 텐데.' 했던 것들이 거의 구현되고 있었다. 여행, 동물, 심리에 대한 내 비전을 확고히 하고 난 상태였기에 나도 자본이 있으니 포트폴리오라는 걸 만들어봐야겠다 생각했다. 배움은 늘 소중하다.    


      

감정 다루기

* 의견 피력하기     

갈등이 싫어서 남에게 맞추고 의견을 잘 표현한 적이 없었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자고 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의외로 갈등 상황은 잘 생기지 않았고 혹시 생기더라도 조율하는 게 그렇게 불편한 감정을 가져오지 않았다. 아직 더 연습이 필요하지만 도전은 성공했다.     


* 걱정 덜하기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으니 행복만 남았을 거라고 기대하는 날이 많다. 그럼에도 힘든 상황을 몰고 올 것 같은 초기 상황들을 마주하면 이내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돌아보면 실제 벌어진 상황들이 걱정보다 덜 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 걱정이 될 때마다 '아니야. 죽으란 법은 없어. 너도 알잖아.'라는 자기 최면을 하기로 했다. 정말 별게 아닌 것 같지만 평화로운 마음을 갖는 시간이 많아졌다.     


* 칭찬은 그대로 흡수하기     

역시나 마음의 병을 앓은 이후 늘 칭찬을 받으면 아니라고 난 부족한 사람이라고만 했다.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한 후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아닐 텐데'라고 했다. 이번주부터는 또 방법을 바꾸었다. 아니어도 일단 받아들이기로. 상대는 나에게서 분명 그런 모습을 본 것이니 내 일부가 맞고 아닐 거라 생각하는 나도 일부가 맞다. 즉, 칭찬은 틀리지 않았다. 온전히 그대로 흡수하고 감사하며 행복해하면 그만이다.                          



도전에 도전하는 걸 계속 성공하다 보니 내 성공은 정말 많이 쌓였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유한도전에는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또 얻는 것은 분명 있었다.      


도전하자. 해내지 말고 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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