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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Jul 13. 2020

10만 원으로 이나영의 애교 살은 불가능하다

나의 불안은 쇼핑을 타고

배우 이나영을 보라. 눈 밑 애교 살이 매력 포인트. 어떻게 하면 눈 밑의 지방들이 저렇게 예쁘게 자리를 잡고 있을까? 언제부턴가 나는 이나영의 눈 밑 애교 살에 집착하고 있었다.


워킹맘이던 2년 전, 나보다 한 살 많은 선배가 있었다. 얼마나 부지런한지 주기적으로 피부과를 다니며 쌓여가는 세월을 레이저로 지저 대곤 했다. 한 달에 한 번은 그렇게 벗겨낸 뻘건 얼굴을 하고 회사에 나왔다. 선배는 워낙 피부가 좋지 않았고 한 살 차이이긴 했지만 그녀보다는 내가 서너 살은 더 어려 보인다고 자만하며 그러려니 했다. 더군다나 1회에 기십만원이나 하는 허망한 사치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명절을 끼고 휴가를 며칠 더 내었던 선배가 선글라스를 끼고 출근을 했다. 강남의 유명한 성형외과에서 '눈 밑 지방 재배치 수술'을 받았단다.

처지는 눈 밑의 지방을 끌어올려 생기 넘치는 눈매로 회복(둔갑?) 시켜주는 마술을.

일주일 후 선배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세상에! 흘러내리던 세월의 흔적이 끌어올려져 이나영의 애교 살이 선배의 눈가에 장착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얼굴빛마저 활력이 넘쳐나 번쩍거렸고 다섯 살은 젊어 보였다(그 이상은 안된다). 질투가 났다. 그러나 칼로 눈 밑부분 살을 째야 한단다. 무지 아프다고 했다. 무엇보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겁 많고 짠순이인 내겐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모름지기 희망을 가져야 한다. '얼굴에 칼 대지 않고, 무엇보다 저렴하게 내 눈매를 회생시켜줄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러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인터넷을 폭풍 검색했다. 아! 있다. 역시 인터넷은 우리를 희망으로 이끈다.

안경처럼 꾸준히 착용만 한다면 처지는 눈 밑 지방을 끌어올려주고 원적외선 방출로 다크 서클도 없애준단다.

꾸준함은 내 특기 아니던가. '나의 흘러내리는 젊음을 끌어올려준다면야 그까짓 10만 원'하며 그 신통방통한 물건을 구매했다. 


원적외선을 방출한다는 마그네틱 바가 어디 숨어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플라스틱 안경테 반 조각이었지만, 효과가 좋다는 리뷰들을 무한 신뢰하며 매일 저녁 퇴근하여 안경처럼 걸쳤다. 최소한 한 달은 꾸준히 사용해야 개선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런데 2주가 지나면서 리프팅 패드가 닿는 눈 밑 피부에 땀이 차고 가려웠다. 점점 뻘겋게 부어오르더니 급기야 이나영의 눈이 아닌 붕어눈이 되어버렸다. 뭐야 이거! 내 눈 돌리도!


다행히 며칠의 시간이 지나니 부은 눈은 가라앉았다. 반품을 할까 하다가 짠순이이긴 하지만 피곤함을 싫어하는 게으름뱅이가 우성이라 심심해하는 아들에게 휙 던졌다.

아들이 묻는다. 이게 뭐냐고. 응, 구글 안경이야. 이 안경 하나면 다 볼 수 있다.

이 것 말고도 홈쇼핑의 유혹에 넘어가 구매한 것들도 여럿 있다. 주름을 감쪽같이 없애준다는 앰플을 열심히 발랐다. 그러나 앰플만 없어졌다. 새치 커버와 스타일까지 살려준다는 왁스 스틱, 머리를 한 달 동안 감지 않는 것과 같은 떡짐 효과를 감당할 수 없었다. 유통기한이 지나고 먼지가 쌓여있다. 매진될까 봐 초조해하며 샀었는데.

다 헛 것인 줄 알면서도 요즘도 TV 리모컨을 누르다 '우윳빛 투명한 피부를 선사해준다'는 LED 마스크 광고에서 손이 멈춘다. 이번에는 김희애 언니다.


나는 이성적이며 우매하지 않다고 자만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가장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는 약해지고 이성이 제 기능을 하지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많지 않은 돈으로 젊음을 살 수 있다는 달콤한 '복음'에는 더욱 그러하다.

올해 초 코로나 발생으로 드러난 신흥 종교 신천지가 바로 이 경우가 아닐까 한다. 신도들 중에 20대 청년층이 많다고 한다. 아직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고 기댈 곳이 없어 흔들리는 들의 내면을 간파하여 달콤한 복음으로 그들을 세뇌시켰을 것이다. 사이비는 불안을 파고든다. 절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를 가한다.

어찌 오다 보니 이나영에서 신천지까지 흘렀다. 내게 있어 취약하여 불안한 것, 잃어버리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젊음'이었나 보다. 나의 취약한 틈새를 파고드는 저 쇼호스트의 유혹을 물리치고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는 선구자들의 잠언을, 돈 안 드는 치료제를 마음에 듬뿍 발라야 한다. 발라야 한다..... 거울을 보니 눈가 주름이 거슬린다. 얼마 전 구입한 아이크림을 냉큼 둥글게 발라댄다.


나의 불안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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