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봄 Jul 29. 2022

입덧 지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앞선 두 번의 경험이 무색하게 세 번째는 모든 게 달랐다. 우선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괜히 힘들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굳이 비교하자면, 첫 번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간 일이 대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모든 것이 처음보다 수월했다. 고비의 순간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론대로라면 세 번째가 가장 쉬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혼자 생각하기에는 나이 탓 아닌가 싶었다. 두 번째 임신은 8년 전, 그러니까 30대 초반이었다. 새벽 출근을 하고 밤늦게 퇴근해도 밥 한 공기 뚝딱 먹고 푹 자고 일어나면 쌩쌩해지던 시절이었다. 감기에 걸려도 며칠 생강차를 마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나았다.


40대는 달랐다. 입덧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밥상 앞에서 우웩 하고 헛구역질을 할 때면 ‘에이, 설마 저럴까’ 싶었다. 입덧으로 고생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공감하기 어려웠다. 당연했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가 있나?


이번은 달랐다. 임신 초기부터 갑자기 속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 때 훅 끼치는 김치 냄새며 각종 양념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음식을 입에 대는 순간 토기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소화가 안 되는 듯 그저 더부룩할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먹는 대로 올리기 시작했다. 그럼 처음부터 먹지 않으면 될 텐데 식욕은 없어지지 않아서 매콤하고 자극적인 음식이 당겼다. 하지만 미국에서 입에 맞는 한식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부족한 솜씨로 직접 만들어 먹어야 했는데 역한 냄새를 참고 요리를 하고 나면 먹기도 전에 질려 손도 대기 싫었다.


조금이라도 먹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변기를 붙잡고 있었다. 처음 며칠은 먹자마다 뱉어내는 것이 죽을 만큼 괴로웠는데 나중에는 토하는 데에도 기술이 붙어 큰 수고 없이 음식을 게워냈다. 먹고 비우기를 몇 주, 이래도 되나 걱정이 됐다. 도대체 입덧이라는 놈은 왜 하는지, 그 까닭이 궁금해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을 붙잡고 물었지만 그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입덧은 과학이 풀지 못한 마치 고대의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 나중에는 입안에 고인 침이나 물조차 삼키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그러던 중 마침 시어머님이 방학을 맞은 조카들을 데리고 미국 집을 방문하셨다. 어머님은 임신한 며느리가 시집 식구들 방문에 고생할까 염려했지만 나는 내심 잘됐다, 쾌재를 불렀다. 솜씨 좋은 어머님 손을 빌려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을 먹어볼까 하는 속셈 때문이었다. 결국 어머님은 먼 길을 날아 온 이튿날부터 여독을 풀 새도 없이 며느리 손에 한인 마트로 끌려(?)가셔야 했다.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신이 나서 재료들을 쓸어 모아 카트에 담으며 말했다.


“어머님, 오신 김에 김치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사 먹는 건 영 맛이 없어요.”

“어머님, 멸치도 좀 볶아주세요. 저는 솜씨가 없어 어머님 손맛을 못 따라가요.”


배 부른 며느리의 성화에 결국 어머님은 미국 구경에 앞서 음식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새콤하게 무친 상추 겉절이, 달콤하고 바삭하게 볶은 멸치볶음에 각종 채소와 소고기를 볶아 넣고 들기름에 구운 김에 싼 김밥까지. 하나하나 차려진 음식을 보니 집 나간 입맛이 서둘러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알차고 단단한 김밥 한 줄을 썰기가 무섭게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고 엄지를 치켜 들며 말했다.


“어머님! 짱이에요. 완전 맛있어요!”

“천천히 먹어라. 그러다 체한다.”


아무래도 입덧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탓인 것 같았다. 아무렴, 그렇지. 첫째, 둘째 때도 없던 입덧이 갑자기 생길 리가 없지.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기가 올라왔었는데 어쩐 일인지 한 입, 두 입, 끝이 없이 들어갔다. 이제야 비로소 지옥에서 벗어났다 안심한 순간, 욱 하고 뭔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설마, 또 시작인가? 먹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왜 속이 안 좋나?”

어머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으셨다.


“아니, 괜찮아요. 욱!”

나는 두 손으로 입을 감싸며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괜찮아…. 좀 참아봐…. 지금 토하면 안 돼….’


어머님 덕분에 입덧이 싹 나았다며 신나게 먹어댄 게 무색하게 곧바로 먹은 것들을 게워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음식은 위장에서 춤을 췄다. 김밥과 겉절이가 한데 뭉쳐 배로 불어나 목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결국 입만 벌려도 폭포처럼 잔해가 튀어나오겠다 싶을 때 “어, 어머니!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소리를 남기고 욕실로 달려가야 했다. “할머니, 외숙모 토해요.” 변기를 잡고 웩웩대는 소리에 놀란 조카들이 주방으로 뛰어가며 외쳤다. 먼 길 오셔서 여행도 마다하고 음식부터 차려주신 어머님 정성 앞에 구토가 웬 말인가. 아무리 입덧 때문이라 해도 면구스러운 노릇이 었다. 결국 시어머니표 음식도 입덧이라는 놈을 막지 못했다. 그나마 먹을 때만큼은 행복했기에 다행이었다.


계속되는 입덧으로 정신까지 피폐해질 때쯤 주치의 선생님에게 입덧 약을 처방받았다. 입덧 약의 한 종류인 디클렉틴은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고, 태아에게 안전한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 해도 꺼림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임신 중에는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약이라니. 선생님은 하루 최대 네 알까지 괜찮다고 했지만 일단 하루 한 알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약을 먹자 마법처럼 증상이 개선됐다. 먹는 대로 게워내지 않으니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입덧 약 덕분인지 토하는 증상이 급격이 좋아졌고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제대로 챙길 수 있게 됐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입덧은 임신 17주를 지나며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성경 속 다윗의 반지 구절인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모든 상황에 맞는 명언이 아닌가 싶다. 비록 입덧이 사라짐과 함께 불어나기 시작한 몸무게 숫자가 걱정스럽긴 했지만 그 어찌 먹는 즐거움과 바꿀 수 있으랴! 혹시 지금 입덧을 겪는 이가 있다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기억하고 위안받길 바란다. 17주가 되는 마법의 그날까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기 바란다.


이희준 교수's 산부인과 클리닉

입덧에 관해

입덧은 임신 5~6주 이후부터 구역질이 나고 입맛이 떨어지는 증상을 말합니다. 그 원인이 아직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임신 중 태반에서 생성되는 사람융모성성선자극호르몬(human chorionic gonadotropin, hCG) 분비와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의 급격한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임신성 호르몬의 증가가 둔화되는 임신 16~20주 이후에는 대부분 입덧 증상이 좋아지나 간혹 임신 후반기까지 지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입덧을 관리하는 방법은 적은 음식을 자주 먹는 것입니다. 평소 세 끼를 먹는다면 더 적은 양으로 대여섯 끼를 먹으면 도움이 됩니다. 또한 기름진 음식은 위에서 소화되는 시간을 지연시키기 때문에 지방이 적은 음식을 먹고, 매운 음식은 메스꺼움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가급적 단백질이 많고 탄수화물이 적은 식사를 하고 물이나 차 등의 액체를 마시는 것도 메스꺼움과 구토 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입덧은 아침 공복 시에 심해지기 때문에 잠자리 옆에 크래커 등을 두고 일어나자마자 먹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육아 관련 커뮤니티를 보면 입덧에 관한 고민이 꽤 많더군요. 탄산수를 마시는 것도 좋고 주스나 수프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냄새가 진하지 않아 입덧이 없는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게 먹기 좋은 것들이죠. 얼음 조각을 좋아하는 임산부도 있는데요,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차갑고 냄새가 강하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밖에 진저롤(gingerol)이 구토를 억제하기 때문에 음식에 생강을 넣거나 생강차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토마토, 매실, 바나나도 좋습니다. 입덧이 너무 심할 때는 고칼로리와 고비타민 음식을 먹으면 좋고 너무 맵거나 달거나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입덧 약, 안전한가요?

메스꺼움이나 구토감이 너무 심해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에는 약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입덧 약으로는 디클렉틴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약은 캐나다에서는 1979년부터, 미국에서는 2013년에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처방받을 수 없었는데 2016년부터 허가돼 처방하고 있습니다.
디클렉틴은 피리독신(Vit.B6) 10mg, 항히스타민제(doxylamine)10mg으로 구성된 약입니다. 피리독신은 수용성 비타민으로 과량 섭취 시 소변으로 배출돼 일반적인 용량에서는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한 항히스타민은 H1 receptor를 억제해 구토를 예방하는 작용을 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만 명 이상의 임산부가 임신 초기에 이 약을 복용했고 태아나 모체에 다른 이상 반응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주 드물게 임산부 카테고리 약에서 매우 안전 등급인 A등급을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입덧 약 디클렉틴은 임산부가 감기에 걸렸을 때 처방받을 수 있는 타이레놀만큼이나 안전합니다. 하루 최대 용량은 네 알이며 처음에는 취침 전 두 알씩 복용하면 됩니다.



노산이어도 괜찮아! _ 김보영, 이희준 지음


매거진의 이전글 난소, 너마저 나이가 들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