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진드기 치료로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그래는 생각보다 무난히 적응했다. 물론 가족들도 그래와 잘 지내는 방법을 고민하며 함께 공존하기 위한 지혜를 터득해 나아가야 했다.
맞벌이라 아들도 챙기기 어려운데 강아지까지 챙기려니 시간은 없고, 반려견은 처음이라 한동안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래를 기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나는 회사와 집이 멀었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근무하는 경우도 많았다. 남편은 가끔 회식이라고 늦어지는 날도 있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지만 나름 바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결론은 그래를 키우기 위해서 가족들이 합심하여 각자의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장 먼저, 누구 한 사람이 아닌 가족 구성원 모두가 그래를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나누고 규칙을 정했다. 예를 들어, 내가 아침에 밥을 주고 출근하면, 아들이 학교를 다녀와서는 집에서 그래와 놀았다. 저녁밥은 꼭 같은 시간에 식구들이 돌아가며 챙겨 주었다. 산책과 목욕은 주로 남편이 하고, 훈련을 시키는 일은 내가 담당했다. 똥을 치우고 배변판을 관리하는 것도 그나마 비위가 강한 나의 몫이었다. 아들에게 그래를 돌보는 일은 낯설고 능숙하지 않았지만, 털을 말리는 일이나 밥 주기 등을 함께 하며 그래와 유대감을 쌓도록 유도했다.
그래를 입양하며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온종일 집에 놀아주거나 돌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생각한 것은 그래가 생각보다 정말 많이 잤다. 하지만, 어린 녀석을 덩그러니 집에 두고 출근할 때면 맘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나보다 몇 달 먼저 개를 입양한 회사 동료도 맞벌이였는데, 포메라니안 강아지를 키우며 틈날 때마다 반려견 CCTV로 소통하려고 애썼다. 당시에는 개를 키우지 않아 ‘저렇게 하면서까지 개를 키워야 하나?’란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내가 어쩌다 그 입장이 되니 동료의 애틋한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루 종일 함께 있어주지는 못했지만, 반려견과 보내는 시간을 양적으로 늘이기보다 강아지가 깨어 있는 시간에 충분히 사랑을 주고, 잘 놀아주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의 불편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근처에 사는 이모가 가끔씩 와서 어린 그래가 잘 있는지 살펴봐 주었고, 조카들도 그래를 좋아해 시간 날 때 가끔씩 산책을 시켜주었다. 든든한 지원군이 이웃에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어쩌면 맞벌이가 개를 키우며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그래는 견종 자체가 튼튼하고, 타고난 먹성으로 밥을 정말 잘 먹었다.뭐든 엄청 빠른 속도로 먹고돌아서면배고파 보이는 얼굴이었다. 바쁘고 정신없을 때는 그 모습을 보고 내가 그래에게 밥을 줬는지 안 줬는지 헛갈릴 정도였다. '식신 그래'였지만 몸무게와 개월 수에 맞춰 사료의 양을 정하고하루 두 번씩 같은 시간에냉정하리 만큼 정량을배급해주었다. 이렇게 규칙적인 식사를 시키다 보니 배변활동도 비슷한 시간에 하게 돼서 그래의 생체리듬 패턴도 일정한 편이었고, 비교적 관리하기도 편했다.
처음에는 맞벌이로 개를 키우는 것이 너무 막막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가족들이 규칙을 만들어 서로가 지키고 협력하니 조금씩 적응되어갔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반려견의 습관 형성을 위한 우리 가족의 인내심과 일관된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