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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 라테 한 잔 나왔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평균적인 사랑의 색깔과도 닮아 있지 않을까

by 이열

예전에 유튜브 BODA 채널 영상에서 귀에 딱 걸리는 단어를 하나 발견했다.


코스믹 라테


이게 뭘까 싶어서 계속 듣다 보니, 우주 속 모든 빛의 색상을 평균 내면 밝은 베이지색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이 색깔에 ‘코스믹 라테’라는 이름을 붙였단다.


‘이름 진짜 귀엽다.’

내 머릿속에서 이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생각해 보라. 어느 누가 이런 깜찍한 단어를 처음 듣고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이 아이를 어딘가에 써먹고 싶다는 이상한 집착이 생겨버렸다.




아내와의 저녁식사 자리.

그녀가 밥을 먹다가 무언가를 얘기했는데, 솔직히 잘 듣고 있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오직 ‘코스믹 라테’를 자연스럽게 써먹을 타이밍을 찾는 데 집중돼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를 포착했다.


“자기 오늘 피부 톤, 완전 코스믹 라테 같다.”

와이프가 젓가락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눈동자에서 약간의 혼란이 느껴졌다.


“뭐? 코스메틱… 라테?”

“아니, 아니. 코스믹 라테. 우주 속 모든 빛을 평균 내면 그 색깔은 밝은 베이지색이래. 자기는 나한테 우주 같은 존재니까…”

(당시 나 자신에게 80점 정도를 주고 싶다. 아내가 진정한 F라면 감동하지 않았을까)


아내는 한동안 나를 말없이 바라보더니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색인데?”

“어… 밝은 밀크커피색 같은 건데…”

(그쯤 되니 자신감이 흔들렸다)


사실, 기대했던 건 이런 반응이 아니었다.

설거지 면제권이라든지, 아니면 최소한 반짝이는 눈빛과 함께 “와, 로맨틱하다.”라는 말이 나와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적이 흘렀고, 내가 굳이 무리수를 둔 걸 살짝 후회하고 있을 때, 아내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다행히 모든 게 정리됐다. '그래도 약간 먹히긴 했구나.'


아내가 조용히 설거지거리를 가져가며 말했다.

“애썼다. 뭐, 잘못한 거 있어?”


그 말이 왜 그렇게 웃겼는지 나도 모르게 아내와 같이 웃어버렸다.




돌이켜 보니 이 짧은 대화에서 느꼈던 건 말의 힘, 그리고 순간의 반짝임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때론 대화 속 가벼운 농담과 칭찬이 서로를 조금 더 가깝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코스믹 라테’가 아니었으면, 그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 평범한 저녁식사 중 하나로 지나갔을 것이다.


우주의 모든 빛을 평균 낸 색이라니. 단어 그 자체로도 참 로맨틱하다.

이건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는 평균적인 사랑의 색깔과도 닮아 있지 않을까.

어느 날은 밝고 어느 날은 탁하지만, 결국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는 하나의 색.


다음엔 또 어떤 단어로 아내를 웃게 할 수 있을지 궁리해 본다.

그리고 다음번엔 좀 더 자연스럽게, 좀 더 빌드 업해서 말해야겠지.

(설거지 면제권은 그때를 노려보자)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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