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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계의 충돌

이렇게 다른 두 세계가 만나서 딸이라는 미래가 탄생했다

by 이열

부계사회 vs 모계사회


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집안일을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게 집안일이란 ‘엄마의 영역’이었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며 컸다.


결혼 전에 처음 처가에 갔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장인어른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과일을 깎고, 먼지를 털고, 설거지까지 하셨다.

집안 곳곳을 바쁘게 움직이시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때는 ‘참 자상한 분이시구나’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건 내 미래의 예고편이었다.

(왜 그땐 깨닫지 못했을까)



개인주의 vs 공동체주의


나의 성향과 아내의 성향은 참 다르다.

나는 개인의 경계와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아내는 관계와 소통을 더 중시한다.


집안 행사를 준비하는 태도만 봐도 딱 드러난다.

나는 “이 정도면 됐지” 수준에서 멈추지만, 아내는 상대방의 성향과 상황까지 다 고려해서 완벽하게 준비한다.

그걸 볼 때마다 진짜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낀다.


그런데 와이프는 내가 혼자 뭘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게임이든, 독서든, 글쓰기든 말이다.

그래서 주로 새벽 시간을 공략한다.

아내가 자는 틈에 조용히 블로그를 쓰다가 가끔 쎄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면… 도끼눈이…

(어… 사랑 맞지?)



T vs F(선택적)


나는 T(Thinking) 성향에 가깝다. F(Feeling)를 다루는 법은 와이프에게 혼나면서 배워가는 중이다.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와이프가 감기에 걸리면 최대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물어본다.

“많이 아파? 어디가 힘들어? 괜찮겠어?”

그리고는 토닥토닥 다독인다. 나름 성장 중인 가장이다.


하지만 내가 기침이라도 한 번 하면, 아내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다.

“아프지 마. 나 힘들게 하지 마. 나만 아플 수 있어.”

(아니, 왜… 나도 좀)



두 세계의 충돌이 낳은 중첩


이렇게 다른 두 세계가 만나서 딸이라는 미래가 탄생했다.

아내와 나는 세상을 보는 관점도, 방식도 참 다르다. 하지만 딸아이를 응원하는 마음만큼은 같다.

나는 헐렁한 아빠, 와이프는 꼼꼼한 엄마.

그 사이에서 딸은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 딸이 객관적인 진실을 추구하면서도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TV를 없앤 것도 다 너를 위해서였어. (사랑해)



다양성이 희망이다


사람마다 다 다르고, 그 다름이 세상을 더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든다.

오늘 하루는 주변의 다름을 포용하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아름다움을 즐겨보자.

(그리고 나 같은 문화적(?) 약자에게도 부디 따뜻한 시선을...)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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