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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하나 바꾸려다

늘 아내 덕분에 인생의 진리를 깨친다

by 이열 Jan 30. 2025

예전에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무심코 이런 말을 꺼냈다.

“저번에 상품권 받은 거 있잖아. 그걸로 텐트 바꾸자. 지금 텐트 너무 무겁기도 하고. 내가 알아봤는데…”


물론 아내의 의견을 묻는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아내의 싸늘한 반응.

“뭐라고? 남자들 소비는 진짜 이해 못 하겠네! 옆집 누구랑은 다를 줄 알았더니. 상품권이 공짜로 받은 거야? 공짜라고 생각해?”


아내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당황한 기색이 느껴지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었고, 마주한 자리의 공기가 을씨년스럽게 변했다.


일순간 내 사고 회로의 길이 끊겼다. ‘뭐가 문제였지?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단순히 텐트를 바꾸면 어떨는지 제안했을 뿐이었는데. 머릿속에서 빠르게 생각을 굴리며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씩씩대는 아내 앞에서 보일 수 있는 반응이라곤 어버버버 뿐이었다.


아내의 반응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던 걸까?


시간이 지나 아내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아 조심스레 물었다.

“아까 내가 말한 거, 혹시 기분 나빴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고 싶어서…”


아내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답을 꺼냈다.

“사전에 얘기도 없이, 갑자기 큰 소비를 하자고 하니까 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어. 상의를 해야 하는 부분인데, 혼자 결정한 것처럼 들려서 당황스럽고 화가 났어.”


문제의 원인은 명확했다. 화가 난 이유는 텐트 자체가 아니었다.

아내는 서로 충분히 상의도 않고, 내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한 것처럼 느껴져 화가 났던 것이다.

제안의 내용보다 전달 방식이 문제였다.


내가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그전에 상대가 내 이야기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했더라면,

“자기야, 우리 텐트가 무거워서 설치하고 철거하는데 힘들지 않아? 이번에 가볍고 튼튼한 텐트가 합리적인 가격에 출시됐다던데, 한 번 알아볼까? 저번에 받은 상품권도 있고 하니…”

아내는 적어도 내 제안을 ‘함께 논의해야 할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테지.


상대를 설득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 욕망이 무엇인지 알리기만 해선 안 된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 세심하게 대화를 열고 풀어나가야 한다.

상대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 당연한 것을 잊고 거칠게 접근하기 쉽다.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내가 더 신경 쓰고 배려해야 해야 할 존재다.

작은 말 한마디가 서로를 더 가깝게 만들 수도, 불필요한 오해로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늘 아내 덕분에 인생의 진리를 깨친다.


텐트는 결국 바꿨다. 결제 금액의 반은 상품권으로 반은 내 용돈으로. 아무래도 수양이 더 필요하다.

다음번엔 더욱 애절한 빌드 업으로 대화를 시작해 보려 한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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