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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 클리퍼, 9살 딸의 마음을 향한 탐사

나도 딸과의 시간 속에서 아이만의 우주를 밝히고 싶다

by 이열


요즘 우리 딸은 9살답게 호기심이 넘친다.


호기심의 방향은 종잡을 수 없다. 어제는 책상 위에 색연필을 잔뜩 늘어놓고 “거북이 그림 연습해서 그림 대회 1등 할 거야.”라며 계속 거북이만 그리더니, 오늘은 공주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묻는 식이다.


아이의 머릿속은 늘 미래를 향한 반짝이는 아이디어들로 가득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질문하면 명확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가 많다. "오늘 학교에서 뭐 재미있었어?" "그냥 그랬어." "아빠랑 뭐 하고 놀까?" "몰라."


최근 ‘유로파 클리퍼’ 발사 뉴스를 보았다.


유로파 클리퍼는 목성의 얼음 위성 유로파로 향하는 탐사선으로, 2030년에야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한다.


위성은 겉은 차가운 얼음으로 덮여 있지만, 그 아래엔 넘실대는 바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단다. 그 말을 들으며 문득 깨달았다. '나도 딸아이 마음속 바다를 발견하기까지 비슷한 노력이 필요할지도 몰라.'


일단 나만의 유로파 클리퍼를 준비하기로 했다. 딸이 좋아하는 작은 선물과 질문으로 가득 채운 탐사선이다.


어제는 아이에게 말랑카우 세 알을 쥐여주며 그날 있었던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에 대해 물었다. "아빠, 나 오늘 피아노 학원에서 새로운 곡 하나도 안 틀리고 쳤어!" 그 대답은 얼음 틈새에서 튀어 오른 바닷물 한 움큼 같았다.


내일은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으로 탐사를 해보려 한다. "네가 좋아하는 M&Ms 사 왔지. 오늘 수영 어땠어?" 딸은 웃으며 대답할 것이다. “우와, 아빠 최고! 오늘 평영 하는데 쉬지 않고 한 바퀴나 돌았어!"


지금 이 순간 깨닫는다. 딸아이의 마음속 바다는 내가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작은 선물과 다정한 대화가 얼음 아래 아이 마음속을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유로파 클리퍼처럼 천천히 다가가 신호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


아이의 세계는 하루하루 커지고 있다. 탐사선이 우주의 비밀을 풀어가듯, 나도 딸과의 시간 속에서 아이만의 우주를 밝히고 싶다. 언젠가 그녀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더 많이 풀어놓을 때, 나는 그 순간을 우주의 신비를 발견한 기쁨으로 맞이할 것이다.


"우리 같이 뭐 하고 놀까?",

아이의 대답이 어떤 신호로 돌아오든, 그것은 무한한 신비를 향한 가슴 벅찬 탐사의 과정일 것이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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