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마음과 마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주로 거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보니, 아이가 저를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기 비슷한 글을 태블릿에 작성한 후 뿌듯한 표정으로 저에게 묻곤 해요. "아빠, 내 글 어때?" 잠시 머릿속에서 ‘진솔한 표현이 좋고, 어휘도 풍부하며, 전개가 자연스러워.'라는 생각이 스쳐갔을 겁니다. (아마도) 하지만 제 입에서 나온 말은 "와, 진짜 잘 썼다."라는 단순한 한 마디뿐. (재빨리 끄집어내긴 어려웠겠죠) 물론 아이는 이 정도 칭찬에도 매우 흐뭇해합니다.
어린 시절, 저희 집에서 칭찬은 보기 드문 표현이었습니다. 시험에서 두 개를 틀리면, 부모님은 "다음에는 다 맞자."라고 말씀하셨어요. 잘하면 더 잘하라는 것이 애정 표현 방식이었던 가정에서, 저는 칭찬의 언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자기 절제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예요. 또 전쟁과 경제 성장기의 생존 경쟁이 '늘 부족하다' 정신을 무의식에 심어 놓았을 테고요.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타인의 성공을 인정하기보다 그 틈새를 파고드는 데 익숙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제 안에 은밀한 공포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네는 순간, 그것이 거절당할까 봐, 혹은 상대방이 "무슨 꿍꿍이가 있나?" 하고 의심할까 봐, 아니면 제가 다른 이의 강점을 인정하는 순간, 상대적으로 제가 작아질까 봐요.
실패한 칭찬의 경험도 한몫하지 않나 싶습니다. 몸이 안 좋았던 직장 선배에게 칭찬이랍시고, "선배님 살 빠지셨네요?"라고 했다가, 침울한 분위기를 조성한 적이 있어요. 이런 실패 경험이 쌓일수록 저는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칭찬의 효능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후배가 작성한 파워포인트 보고서를 보고 "어떻게 이런 디테일을 잡았어?"라고 물었어요. 그의 눈이 반짝였지요.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를 보며, 이 작은 대화가 저희 관계를 단순한 '지시-보고' 너머로 발전시켰음을 느꼈습니다.
칭찬은 마치 사진 찍기와 같습니다. 보통 사람은 스마트폰을 꺼내 무심코 셔터를 누르지만, 전문 사진작가는 피사체의 가장 빛나는 순간과 각도를 포착하지요. 두리뭉실한 "잘했어"는 흐릿한 스냅사진이지만, 구체적인 칭찬은 완벽한 구도와 빛으로 담아낸 한 장의 작품 사진과 같습니다. 칭찬은 의무인 일과도, 자기계발 테크닉도 아닌, 타인을 진정으로 '보는' 행위입니다.
아버지를 떠올렸어요. 그는 제가 자랑스러운 적도 많았을 겁니다. (꼭 그랬길 바라고요) 그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을 뿐이겠지요. 다만 어려운 형편에도 내게 컴퓨터나 오디오를 사주는 걸로 표현을 갈음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모두 비슷했을 거예요. 마음과 표현 사이의 간극에 어쩔 줄 몰라했겠지요.
오늘 아침, 아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어제 네 글, 여러 단어가 적절하게 들어가 있어서 표현이 풍부해 보여. 솔직하게 네 생각이 담으려고 한 부분이 읽혀서 정말 좋았어. ㅎㅎ" 돌아온 답장에는 “ㅇㅇ ㅎㅎ”가 전부였지만, 그 속에 담긴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정신승리일 수도요)
칭찬은 마음과 마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그 다리가 처음엔 흔들리고 불안정할지라도, 계속해서 보수하다 보면 언젠가는 단단해질 거예요. 그리고 그때 저는 이 글의 제목을 '칭찬이라는 이름의 난제'가 아닌, '칭찬이라는 이름의 선물'로 바꿔 쓸 수 있겠지요.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