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정이 건강한 변화로 이어지려면 환기가 필요합니다
캠핑장 텐트 안, 난로에서 피어오르는 온기가 골고루 퍼질 때의 그 기분. 설명하기 힘든 아늑함입니다. 별빛 아래 위스키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동안, 난로는 묵묵히 우리 가족의 동상을 막아주고 있었어요.
"여보, 텐트 입구 좀 닫으면 안 돼?"
"안 돼. 틈은 꼭 열어둬야 한다고."
"추운데..."
"일산화탄소 중독 vs 감기, 둘 중 골라."
겨울 캠핑의 철칙 중 하나, 난로 틀 땐 환기구 필수. 고집스럽게 지키는 이 원칙이 문득 제 일상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한창 책에 몰입했던 시기, 저에겐 환기구가 없었습니다. 독서를 통해 삶을 바꾸고 싶던 저는, 책마다 강조하는 내용들을 실생활에서 실천하고 싶었어요. 문제는 꼭 ― 책을 읽지 않은 ― 아내와 함께 하고 싶어 했단 거죠.
철학 책에 빠졌을 때:
"여보! 우리의 삶이 똑같은 하루를 무한히 반복하는 거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냥... 오늘처럼?"
"아니야!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해!"
"… 빨리 설거지나 해."
재테크 책에 몰입했을 때:
"여보, 우리 집을 팔고 미국 주식에 올인하면 10년 후에는..."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이혼하겠다!"
"아니, 한 번쯤 같이 생각해 보자는 거지."
"나, 안정 추구형인 거 몰랏?!"
자기계발서에 중독됐을 때:
"내일부터 5시에 일어나서 명상하고, 운동하고, 일기 쓰고... 같이 할래?"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난 밤에 아이디어가 더 잘 나와!"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길게 쓰면 기분이…"
"지금 너 땜에 기분이 안 좋아졌어."
책을 읽을 때마다 저의 뇌는 난로 위 주전자처럼 들끓었습니다. 주변의 온도는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열기를 아내에게 그대로 부어버렸어요. 난로 열기로 텐트를 데우는 건 좋지만, 환기 없이 밀폐하면 위험하듯, 제 생각도 환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은 아내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 왜 이렇게 푸시하는 거야?"
"아니, 나는 그냥 좋은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내가 지금 신경 쓰고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앗?!"
아내의 말에 비로소 저희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 깨달았어요.
아내는 차분하게 계속했습니다.
"내가 인테리어 책 읽고 갑자기 집 벽 다 허물자고 하면 할 거야?"
"으잉, 그건 좀..."
"그거랑 똑같아. 새로운 생각도 좋지만, 소화하고 적용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
역시 아내는 제 생각의 환기구였습니다. 모든 아이디어를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고, 적절한 질문을 던지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
요즘 저희는 함께 출근하는 길에 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강압적인 선언("우리 이렇게 살아야 해!") 대신 함께 생각해 볼 문제("이런 관점도 있더라고")로 시작해요.
때로는 아내도 자신이 읽은 기사나 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요. 딱딱하게 굳은 생각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과정이죠.
난로의 열기처럼, 책에서 얻은 지식도 삶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열기 못지않게 중요한 건 틈새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예요. 뜨거운 열정이 건강한 변화로 이어지려면 환기가 필요합니다. 급하게 도착해야 할 목적지를 정하기보다, 함께 걸으며 풍경을 즐기는 여정이 중요하다는 걸 깨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그냥 난로 끄고 두꺼운 이불 덮고 자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책은 잠시 덮어두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함께 나누는 것. 어쩌면 그것이 책에서 찾던 지혜의 본질인지도 모릅니다.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