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내가 버티는 곳이 아니라, 나를 벼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본부장이 물었습니다. “내가 저번에 얘기한 프로젝트 잘 진행되고 있나?” 순간 머릿속이 깜빡였어요. 사실 의미 없다고 생각한 일이어서 뭉개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네, 지금 리서치 중입니다. 조만간 보고 드리겠습니다.”였습니다. 본부장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집무실로 향했고요. 그렇게 하루를 사소한 거짓말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가벼운 거짓말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장 생활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분위기만 깨질 뿐이니까. 회의에서 동의하지 않는 아이디어에도 “이야, 좋은 생각이네요.”라고 맞장구치고, 프로젝트 일정이 너무 빡빡해 힘들다는 말은 못 하고 그저 “할 수 있습니다.”라고 공언했습니다. 어느새 예의와 처세로 포장한 거짓의 기술만 늘어갔죠.
하지만 이게 과연 친절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나약함이었을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을 외면하는 습관이 점점 나를 잠식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회식 자리에서는 술잔을 거절하지 못하고(술을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상사의 무리한 요청에 “알겠습니다.”라고 억지 미소 지으며 받아들이는 일이 잦아졌어요. 사회생활의 기술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회사에서 나 자신을 철저히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어요.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한 가지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총대 메고 대표에게 보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안 풀리면 책임이 저에게 돌아올 수 있었지요. 스스로 프로젝트의 효용에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상사의 의중을 거스르지 않으려 애매한 선택을 했습니다. 결국 흐릿한 주장과 불충분한 논리는 대표의 화를 돋워 날벼락을 불러왔고요.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다는 것을.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을.)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굴종하고 가짜 안정감을 쌓다 보면, 결과적으로 사상누각 위에 서 있게 됩니다. 언젠가 그 기반이 무너지면, 세상을 원망하게 되고요. 세상이 옳다고 동의하고 나를 그곳에 맞췄는데, 끝내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 자신이 진실을 외면한 점에 있는데도.
이제서야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진실을 말하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쉽지는 않았어요. 상사와 의견이 다를 때도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야 했고, 무리한 요구에는 정중하게 거절하는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우려했던 난처한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나의 의견이 더 존중받고 있음을 인지합니다. 덕분에 생활이 만족스럽고요.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직장에서 ‘꼿꼿이 선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 태도이며, 진실한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회사는 내가 버티는 곳이 아니라, 나를 벼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거짓으로 쌓아 올린 성장은 오래가지 못해요. 우리는 어렵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습관을 기르며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직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거짓된 나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어렵더라도 부딪치며, 나만의 원칙을 세워가겠다고. 그 과정에서 강해지는 내가, 마침내 진짜 바라 오던 내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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