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찬재 Apr 11. 2019

모두 각자의 시간이 있는 건가 봐

시간은 참 무심히도 흐른다.

ⓒ 이찬재

시간은 참 무심히도 흐르는구나


할머니는 때때로 브라질에 살고 있다는 걸 잊을 때가 있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볼 때 더욱 그래. 벌써 35년이란 시간이 지났네. 넓디넓은 하늘을 지나는 저 구름처럼, 시간도 무심히 지나갔구나.

물가를 혼자 걷는 저 남자도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네.



ⓒ 이찬재

저마다


바람도 쌀쌀해지고 구름도 엷어졌다. 썽빠울로엔 가을이 왔지만 마당엔 꽃들이 이렇게 예쁘게 피어 있다. 

어떤 나무는 잎을 떨구고 있는데 말이야. 꽃들도 나무도 모두 자기의 시간이 있는 건가 봐.



ⓒ 이찬재

나비들이 날고 있다


나비들이 많이도 날고 있지?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야.많이 있으니까 더욱더 빛나는 듯하다. 나비를 보다 보니 잊었던 옛 노래가 절로 떠오른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훨훨 날아, 다 같이 날아 청산으로 가자는 그 마음. 옛날 사람들도 인간세계를 벗어나고 싶어 한 모양이야. 그땐 또 무슨 이유로 그런 마음을 가졌을까? 

여름이면 나비를 잡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게 생각나. 방학 숙제였는데, 한국엔 노랑나비와 흰나비가 제일 많았다. 어쩌다 호랑나비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지. 브라질에 와서 파란 나비를 보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 이찬재

아코디언 치는 노인


찌라덴찌 역 앞에서 가느다란 멜로디가 들려왔다. 아주 묘한 소리였다. 한 노인이 아코디언을 치고 있었어. 그것도 아주 조용하게. 그러니까 그의 손과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음악은 다른 곳에서 들려온 것이고, 그는 오래전부터 아코디언을 잡고 있는 정물처럼 보일 정도였지. 아코디언은 아주 작고 가벼워 보였어. 색도 남달랐지. 그런데 색다른 건 악기뿐만이 아니었다. 

노인이 쓰고 있는 두건도, 길고 하얀 수염도, 옷의 색깔도 묘했는데 마치 먼 어느 동쪽 나라에서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한 이방인 같았어. 옆에 잔뜩 쌓인 보따리들도 심상치 않았고. 행인들은 무심히 지나쳤지만 나는 근처 벤치에 앉아 천천히 보기 시작했단다. 

첫 발견은 그의 모든 것이 종이라는 거였다! 아코디언도 두건도 목도리도 모두 종이로 만든 거였어. 짚는 자리에 따라 소리가 되어, 멜로디가 되어 흘러나오게 만든 작은 종이 악기. 그 옆에 놓인 짐 보퉁이들을 보니까 노인의 하루하루가 눈앞에 떠올랐다. 브라질의 국민 작가 조제 바스꼰셀로스가 그 모습을 보았더라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후편으로 이 노인 이야기를 썼을 거야.



ⓒ 이찬재

지나간 시간


시내 나가는 지하철에서 한 노인을 보았다. 노인 우대석의 그 할머니는 비스듬히 앉아 저쪽 젊은이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어. 문득, 그분에게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먼지 많은 날, 마스크를 하고 지팡이까지 짚고 어딜 가는 걸까. 

궁금했다. 할머니의 청춘이, 지난 젊음이.




이전 02화 너는 어떤 어른이 될까, 그땐 내가 없겠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