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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Apr 29. 2022

내게 주는 선물

PORTRAIT. 2022년 4월 29일 금요일, 맑음.


내게 주는 선물로 뮤지컬 ‘광주’를 어제 봤다.

내 기준으로는 꽤 비싼 관람료를 내고 오랜만에 객석에 앉아 이야기에 몰입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오후 버스를 타고 저녁 6시 30분쯤 강남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남부터미널역에 내려 예술의전당까지 걸어갔다. 저녁 먹을 시간을 놓쳐 사이다 한 캔을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고 저녁 7시 30분부터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 내용은 특별하지 않았다. 고선웅 연출가는 5.18 민주화운동을 좀 더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택한 것 같았다. 5.18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1980년 5월 16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의 상황을 윤상원 열사와 들불야학 구성원들, 그리고 마지막 도청에 남았던 이들을 중심으로 시놉시스를 구성했다. 거기에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조장하기 위해 투입됐던 ‘편의대’의 존재를 추가해 극적 긴장을 만들고,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를 창조했다. 


뮤지컬 넘버의 제목들을 다는 모르지만 가장 울림이 컸던 넘버는 27일 새벽, 도청의 마지막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나온 ‘우리 흘린 눈물’과 공연의 마지막에 울려 퍼진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그리고 커튼콜에 불렸던 넘버 ‘투쟁가’도 좋았다. 특히 ‘우리 흘린 눈물’이 나올 때 내 옆에 앉아서 보던 한 젊은 여성 관객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보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뮤지컬 ‘광주’를 보면서 한편으로 브로드웨이 대표 뮤지컬 중 하나인 ‘레미제라블’이 많이 떠올랐다. 광주를 소재로 한 뮤지컬을 계속 다듬고 작품성과 규모를 키워간다면 충분히 레미제라블 못지않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 정신’의 수많은 예술적 변주는 바로 광주 정신의 보편화라고 나는 믿기에 앞으로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활발히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포함해 커튼콜까지 다 마치니 밤 10시 30여 분. 왔던 길을 다시 걸어 남부터미널까지 간 후 지하철을 타고 서울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 30분.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마흔한 번째 생일을 0시부터 깨어있는 상태로 맞았다.      


뮤지컬 ‘광주’는 내게 주는 선물로 완벽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나와 아직 가시지 않은 여운을 되새기며 밤거리를 걷는 느낌도 좋았다. 그 느낌을 기억하며 조촐하게 따뜻한 커피와 편의점에서 사 온 티라미수로 내 생일을 자축했다. 




이제 진정한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됐다. 그 시작을 내가 평생 안고 가려고 하는 ‘광주’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뭔가 상징적인 것도 같아서 나쁘지 않다. 아마 내년부터는 광주에 좀 더 다가간 삶을 살지 않을까 싶다. 지금 뭔가를 계획하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그 계획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내게 또 다른 선물을 주며 하루를 보냈다. 우선 새로운 치아를 선물했고, 또 새로운 안경을 선물했다. 이것 역시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는 날에 내게 줄 수 있는 완벽한 선물이구나. 그리고 가족들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받고 간단한 답장을 하며 생일을 보냈다.     


오늘부터 다짐한 게 하나 있다. 특별한 건 아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꿈꾸는 삶을 위한 노력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자는 다짐을 했다. 아마 예전부터 하던 다짐을 다시 한번 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그 다짐으로 이렇게 이 글도 쓰고 있다. 이야기를 창작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만큼 매일 이야기를 쓰면서 살아야 그 꿈에 다가갈 수 있다. 그 다짐을 오늘부터 다시 소중히 여기며 꿈을 향한 노력을 부지런히 쌓아가는 삶을 살자.


그래도 부모님 덕분에 이 세상에 태어나 40년을 살아오면서 꽤 많은 경험도 하고, 그 경험만큼의 내 세상을 키우며 느끼고, 깨닫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절망하고, 때론 설레며 여기까지 왔다. 

후회를 한 적도 물론 많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내 인생 전체를 후회하진 않는다. 오히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이제 내가 서 있는 이곳을 시작으로 다시 나아가면 된다. 지난 시간과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나는 또 한 번 나만의 길을 가보려 한다. 무턱대고 가는 길이 아니다. 지난 2, 30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 더 신중하고, 조금 더 현명하게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의 후반전이 기다려진다.      


오늘이 그 첫 발자국이구나.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그래도 가보자. 

두려움보다 설렘이 앞서니 시작이 그리 나쁘진 않다.

다행이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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