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2022년 11월 2일 수요일, 맑음.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속 이 문장이 떠오른다.
이 저녁은 깊은 밤으로 흐르고, 밤은 더디게 흘러 언제쯤 우리는 아침을 맞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지난 일요일 새벽, 소식을 접한 후 평소와 다름없는 소소한 일상을 보냈지만 조금씩 내 마음은 저녁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저녁은 절망과 무기력의 또 다른 말.
가장 싫어하는 두 감정이 나를 지배하며 괴롭힌다. 이 두 감정으로부터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내 슬픔과 위로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닿지 못하고, 나는 이번에도 존재의 한없는 가벼움을 확인하며 숨 쉬는 것조차 부끄러워진다. 이 가늠할 수 없는 비극 앞에서 한숨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평생 이곳에 뿌리내려 살면서 지켜봤던 참담한 비극들. 돌아보면 결국 반복일 뿐이었다. 달라지고, 나아진 건 없이 운이 좋아 나는 지금 살아있는 것일 뿐. 비극의 반복은 뿌리내린 이 땅에 대한 적의를 키웠다.
짐작이 간다. 앞으로 당분간 이어질 현상들이. 그 현상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며 견뎌야 할 내 몫을 상상하면... 난 오늘도 잠자리를 뒤척이겠지.
이제는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됐음에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그리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힘 있는 이들이 그 책임을 회피하고 당당하게 핑계를 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더 슬픈 일이다.
이 슬픔의 늪 속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고 몸부림쳐야지.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보잘것없는 위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외면하지 말자. 그렇기에 오늘부터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힘을 내야 한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 한강, '소년이 온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