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밭
밭
다이노들은 마을에 밭batú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따로 설정해 두었다. 이 밭은 마을 한가운데 있다. 광장이라고 할 수 있다. 네모난 직사각형에 가깝게 만들어져 있는데 밭은 신성한 곳이었으므로 납작한 돌판을 줄지어 세워 경계로 삼았다. 돌판마다 그들이 모시는 신과 토템을 새겼다. 일종의 금줄이다. 쿠바에서는 진흙과 돌을 섞어서 야트막하게 능선을 쌓았다. 사람 사는 집에는 담이 없었고, 오직 신성한 밭의 경계로 담을 쌓았다. 담의 기원이다. 돌판 안 밭에서 제를 올리기도 하고, 고무공을 차는 운동 경기를 치렀다. 스페인 기록자들은 이웃 마을에 사는 씨족들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다이노들은 싸우기보다는 이 밭에서 경기함으로써 서로 다름을 해소했다고 기록했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밭의 크기는 제각각으로 달랐는데 대개는 1,300평가량이었다. 원형으로 조성된 밭은 4만 평 가까이 되는 것도 있었다. 원형 밭은 하늘을 상징했다. 히스파니올라섬에 있는 밭의 평균 면적은 약 2,000평 정도, 푸에르토리코는 약 200평이었다. 히스파니올라섬의 밭이 10배 이상이다. 콜럼버스가 침략했을 때 히스파니올라섬의 다이노 인구가 100만, 푸에르토리코 다이노가 60만이었다는 고려 해도 히스파니올라섬의 밭은 매우 컸다. 카리브 여러 섬 가운데서도 히스파니올라섬이 다이노 사회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라스 카사스가 마을 공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은 평평한 땅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필요한 만큼 넓게 터로 만들었다. 어떤 곳은 크게 또 어떤 곳은 그보다 좁게 나누어 만들었다. 터를 잡으면 십자가 모양으로 넓고 반듯한 길을 내서 영역을 갈랐다. 이 길이 없으면 그들은 이동하기 힘들었다. 마을 뒷산은 숲이 짙게 우거졌고, 바위와 돌들이 아주 많았다.” 주목할 대목은 십자가 모양으로 사방으로 길을 냈다는 마을의 공간 구조다. 사방으로 길을 내 공간을 분리했으니 공간은 4개의 공간으로 나뉘었다. 십자로 교차한 가운데 지점은 마을의 중심을 상징했다. 라스 카사스에 따르면 가시관의 집과 사당이 있는 가내caney는 마을의 한가운데 광장 위에 자리 잡았다. 가시관이 가내caney에서 문을 열고 나서면 큰 광장이었다. 그곳을 밭이라 했다. “가시관의 집 바로 앞에 있는 큰 광장은 마을의 한가운데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았다. 모든 마을마다 이런 광장은 평평하게 고른 땅에서 잘 정돈되어 있다. 광장은 정사각형이라기보다는 길게 직사각형이다. 이런 것을 그들 말로는 밭batú, 밭에batey, 밭에batea라고 한다... 이 말은 공차기 경기ball game라는 말이기도 하다.” 밭을 중심으로 4개의 공간으로 나뉜 어느 공간에는 니다이노들만 살았다. 또 다른 공간에는 보이게들이 살았다. 그리고 또 다른 공간에서 나보리야들이 살았다. 공간에는 계급과 차별이 녹아있었다. 고을의 중심이 가시관의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 개념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라스 카사스는 “다이노들은 추수가 시작되면 첫 수확물을 농사의 신 재미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들은 수확한 과일과 곡식을 가시관의 집 가내에 마련된 제단에 올리고 재미에게 제례를 올렸다”라고 기록했다. 그런 다음 밭batú에 모여 고무공을 차는 경기를 하며 마을과 마을이 겨루었다. 이것들이 모두 풍요를 기원하고 단합하는 제례의 일환이었다. 우리도 추석에 밭처럼 넓은 터에서 씨름, 줄다리기, 강강술래, 소싸움 같은 축제를 했었다.
밭이라는 지명은 다이노 민족이 살았던 중앙아메리카와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등 중남미 여러 곳에 남아있다. 다이노 인디언들이 많이 살았던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강 주변 미국 남부에도 밭이라는 지명은 여러 곳이다. 쿠바 동부 깊은 산속에도 밭에Batey라는 곳이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을 피해 산마루로 올라간 다이노들이 모여 사는 큰 공동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고 식민지 노예 처지가 된 다이노들은 눈물을 흘리며 밭에Batey에서 조상신에게 제례를 지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