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유가
유가
밭에서 유가Yuca, 고구마, 감자, 콩, 호박, 옥수수 같은 작물을 농사지었다. 유가는 카사바Cassava의 뿌리다. 뿌리가 무, 고구마를 닮았다. 마니옥, 마니옻, 야구비아 등 지역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카리브의 열대우림 기후는 동북아시아의 벼를 풀로 만든다. 중앙아시아의 밀은 서늘하고 건조한 지역에서 자란다. 그러므로 카리브에서는 쌀, 밀, 보리 같은 작물을 재배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유가는 다이노들이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가장 중요한 작물이었다. 라스 카사스는 “심은 지 1년이 되면 수확해서 빵을 만들어 먹는데, 고누고라는 땅을 파고 묻어 보관하면 1년에서 3년까지 상하지 않으니 두고두고 꺼내 먹었다. 비 오고 바람 불어도 이 재산은 해를 입지 않았다”라고 기록했다. 유가는 가뭄에도 잘 자랐다. 유가가 카리브해 일대 200만 다이노를 먹여 살렸다. 북미, 멕시코, 브라질 등 모든 아메리카에서도 원주민을 먹여 살렸다. 마야 문명의 발상지가 있는 땅이 유카탄이다. ‘유가가 많이 나는 땅land of Yuca’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약 5억 인구를 먹여 살리는 가장 중요한 식량자원이 되었다. 쌀은 한반도에서, 유가와 옥수수는 중앙아메리카에서 다이노들이 최초로 재배했다. 그런 다이노들은 유가를 땅에 묻어 저장할 때 청개구리 재미도 함께 묻었다. 어린 새끼들이 배고프지 않기를 빌었다.
다이노 여자들은 돌확을 앞에 두고 양지바른 앞마당에 둘러앉았다. 유가 껍데기를 벗겨내고 오목한 돌확에 담고 손안에 부듯하게 잡히는 굵은 돌을 돌려 부드럽게 갈면 고운 가루가 되었다. 그런 다음 대왕 야자 잎을 말려 만든 야과yagua라는 망에 걸러 고운 가루만 걸러낸다. 돌확으로 다이노들도 유가를 빻았다. 지구 반대편의 두 돌확은 생김도 같고 다루는 요령도 같다. 빻아진 가루를 야자수 잎으로 만든 자루에 담근 채 물에 여러 날 담가 우려낸다. 그러면 유가에 들어있는 타닌 성분을 제거할 수 있다. 땡감을 오래 물에 담가둬 떫은맛을 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있었다.
선운사 도솔천은 이름만큼이나 깨끗한 물이지만 냇물의 색은 이름과 달리 거뭇하여 무척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 물이 오염되어서 그런 색을 띠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선운산 숲의 도토리, 상수리가 많이 떨어져 타닌이 물과 바위에 베어 물색이 짙어진 탓이다. 밤의 속껍질이 떫은 이유가 타닌 때문이다. 타닌은 독성이 상당하다. 그래서 타닌을 많이 섭취하면 죽기도 한다. 유가에는 독성을 지닌 타닌 성분이 들어 있다. 다이노들도 도토리를 묵으로 만들어 먹었다. 민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바닷가 구덩이나 토기에 물을 채워 담가두면 떫은맛 타닌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알았다. 떫은맛이 빠지면 공이로 빻거나 갈판과 갈돌로 가루를 내어 조리해 먹었다.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는 방법 그대로 유가를 갈아서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있었다. 도토리를 먹는 민족은 세계에서 우리 민족과 아메리카 원주민 다이노들뿐이다.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까지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도 원주민들이 도토리를 갈아 요리로 만들어 먹었다. 영국에서 최초로 아메리카로 건너간 사람들이 인디언에게 음식을 받아먹어 겨울을 넘겼다. 이때 받은 음식이 ‘콘’이라는 옥수수와 ‘도토리 케이크’ 즉 도토리묵이었다. 북미 인디언들도 도토리의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다이노들은 유가 가루를 3일 동안 물에 담가 독을 빼고 반죽으로 만들어 바구니에 얇게 펴서 한나절을 그늘에 두었다. 그 사이에 독성이 분해된다. 가루로 말려 반죽하여 넓게 펴서 불엔burén이라는 항아리 뚜껑 같은 그릇에 올려 빈대떡 부치듯이 바싹하게 빵을 구웠다. 이 요리를 다이노들은 가리푸나 Garífuna라고 한다. 가리부나는 완전히 건조된 데다 유가의 쓴맛이 남아있으므로 벌레가 끓지 않고 부패하지도 않았다. 오래 보존하여 두고두고 먹을 수도 있었다. 카리브로 이주한 스페인 정복자들도 오래되어 곰팡이 핀 밀 빵을 먹느니 가리부나를 먹었다. 불엔은 굵은 돌 세 개를 솥발로 괴었고, 부뚜라는 나무 막대로 불을 지폈다. 요리는 호떡처럼 작게도 했지만, 솥뚜껑을 다 덮을 것처럼 크게 만들어 여럿이 모여 먹었다. 그렇게 크게 만든 요리를 다와tawa라고 불렀다.
그들은 절구통에 유가를 담고 절굿공이를 찧어서 가루를 냈다. 절굿공이로 쳐댈수록 끈적이는 떡을 만들어 먹었다. 이들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절굿공이에 반죽이 들러붙지 않도록 물을 묻히고 젖혀가며 찧는다. 쿠바의 시골집 마당에는 절구통이 흔하다. 절구통 안 절굿공이도 무척 낯익다.
16세기에 포르투갈 상인들이 유가를 아프리카로 가져갔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에 식민지가 많았다. 같은 시기에 포르투갈과 스페인 상인들이 인도의 고아, 말레이시아 말라카,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등지로 유가 종자와 다루는 방법을 이식했다. 식민지 플랜테이션에서 노예들을 값싸게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 요리법도, 재료를 다듬는 방법도 카리브에서 함께 실어 갔다. 오늘날 아프리카 사람들도 500년 전 카리브의 다이노들처럼 유가를 같은 방법으로 조리해 먹는다. 그들은 유가라 하지 않고 카사바라는 이름을 더 많이 쓴다. 최고의 전분 공급원인 옥수수와 카사바는 세계 많은 곳에서 수천만 명의 주식이 되었다. 노예해안인 나이지리아, 가나, 카메룬 같은 서아프리카에서는 카사바 가루를 가리gari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