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니 금수저니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내 안의 보석을 발견하면 그건 얼마든지 금수저의 조건을 갖출 수 있는 거다. 경제적인 것을 무시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안다. 지독히 힘들여서 자기 안의 재능을 찾아내 갈고닦을 수 있을 독기를 지녔다면 금수저로 탄생할 수 있다.
사람이다. 수저라니. 가당치 않다. 그래도 굳이 요즘 말 빌려서 얘기하자면 그렇다. 무어라고 색깔 운운하는가. 내가 기계를 좋아한다면 기계로 빠져들 거다. 화장품을 사랑하면 뷰티 업계로 관심이 가겠지. 그럼 금수저다. 내 안에 뭔가를 열망하는 게 있다는 것. 그걸 계발할 수 있다면, 그 후로 우리 모두 금수저다.
유행이 지났다. 수저 색깔 운운은 이제 너무 당연해서 누구도 새롭게 꺼내는 말이 아니다. 웃긴 얘기다. 세상천지가 상대적인데 누가 무어라고 남의 색깔을 정하겠는가. 기준이랄 게 없으니 내 안의 소리에만 집중하면 된다. 뭐 그냥 손 놓고 있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지독하게 노력하면서 말이다.
뭔가에 늘 쫓기고 조급했다면, 그게 마음의 소리였다면, 그것도 축복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래야만 한다는 기질, 그리고 그러고 싶게 하는 어떤 소질. 미세하게라도 느껴졌다면 그것도 내가 물려받은 색깔이란 말이다. 그건 금보다 더 값지다. 갈고닦을 자신이 있다면 더 멋진 수저다. 모르겠다. 다이아몬드니 뭐니 관심이 없어서.
세상 남 탓하면 참 살기 쉽다. 아니 더 고통스럽다. 내 마음에서 그를 놓아주지 못하는 거니까. 정작 발 뻗고 잘 그를 나 혼자 생각하며 발 동동 구르면 무얼 하겠나. 그냥 나는 핑계니 뭐니 다 시끄럽다. 겉으로 상냥하게 들어줄 용의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나도 안다. 세상에는 분명 계단이 존재한다. 그걸 부인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걸 핑계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게 있다면 마음에 멍울이 지더라도 이겨내야 한다. 그 후유증이 남더라도 어쩔 수 없다. 어쨌든 더 값진 시간이 올 거라고 굳게 믿는다. 때론 궁금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 하지만 뭐. 그것도 상대적인 거다. 내가 할 수 있으면 그런 거다. 힘들고 어렵고 내 능력 밖이어서 때론 벽에 부딪치더라도 나는 분명 자꾸 맞닥뜨려야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