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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Dec 20. 2019

'담백한 긍정 인간'의 '부정 인간' 학습기

퇴근 후 선배는 항상 카페로 나를 잡아 끈다. 선배는 불평이 많은 사람이라 회의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따지면서 욕을 한다. 툴툴거리고 얼굴이 벌개져서는 툴툴툴툴거린다. 덕분에 나는 긍정회로 돌려 아무렇지 않았던 상황들에 대해서 재해석을 해보는 기회를 갖는데, 이제는 내게 특별한 능력이 하나 생겼다. 감정을 옮지 않는 것, 선 긋는 것, 그러려니 하고 웃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거엔 선배들이 툴툴대는 것에 대해 '못 바꾸면 바꾸지 왜 말로만 열심일까' 했다면은 이젠 약간은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늙어가는 것이란' 하고는 부정적인 영혼들에게 선을 긋고 '그러세요' 하는 요령 따위의 것을 익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정적인 툴툴이 선배가 마냥 밉지는 않은 것이, 그라는 시련 덕분에 나는 부정적인 인간을 대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 나가는 덕분이다.


선배의 말은 대개 3/4은 틀리고 1/4만 맞는데, 나는 이 사실에 대해서도 이제는 선배에게 웃으면서 넌지시 던지는 여유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정적인 사람은 그냥 감정을 쏟아낼, 같은 상황을 공유했던 '내 사람' 따위가 필요했던 거라는 어떠한 역할극에 대해서도 습득하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이제 부정적인 인간 앞에서는 내 영역을 제법 잘 지켜내면서 그의 심기를 적당히 거스르고는 나는 그런 부정적 상황이 싫다는 것을 얼마간 어필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그래서 나는 툴툴이 선배가 마냥 서운하거나 밉지 않다. 인간의 다양한 군상 중, 내가 가장 접근하기 싫어하고 교류조차 싫어했던 부정적 인간을 적당히 대하는 법에 대해서, 툴툴이 선배가 매일 같이 실습 환경을 마련해 준 셈이니까 말이다. 그 선배는 책임지는 걸 너무 싫어해서, 기자 일을 왜 했는지 의심되는 부분이 꽤나 많지만 나는 그냥 '하나의 인간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눈빛이 공허한 입진보 선배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같이 해야할 일이 있으면 1년에 손꼽을 만큼만 참여를 하면서도, 입으로는 불만만 말해서 나는 경영진의 숨긴 자식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웃음 섞인 의심조차 홀로 했던 인물이다. 선배의 글에는 영어, 문장이 아닌 것, 수식어 따위가 가득한데 리더는 그에게는 굽신거리니 나는 그 영문을 몰라 조용히 관찰했더랬다. 대개 먼저 세게 나가는 인물, 정말로 '개썅마이웨이'를 행하는 인물에 대해 과거 조직의 선배들은 불러다가 영혼까지 교육시켰다. '감히', '네가 뭔데, '싸가지 없는 놈' 따위로 혼나는 몇몇을 보기도 했거니와 그들은 그렇게 혼나야 조직의 일원이 됐으므로 그건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리 개인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조직에서 돈을 받으면서 해야하는 일을 하지 않는 인원에 대해서는, 교육이 필요한 게 맞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그 선배를 보면서 나는 '저 사람은 신기하네' 따위의 생각을 했더랬다. 책임은 하나도 지기 싫고 이익만 가져가는 사람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실은 그 선배의 태도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건 '굳이 따졌을 때'고, 솔직히 나는 별 관심이 없다. 그 선배가 인사를 안 하든, 안 받든, 인사 하는 사람에게 인상을 쓰고, 필요할 때만 사회적 자아를 꺼내 '소시오패스'적 면모를 보여 모두를 놀라게 해도, 나는 그냥 별 관심이 없다. 내가 혼낼 수 있는 대상도 아니고, 능력이 없어 화를 내는 걸 욕하자면 좀 미안하니까. 그런 걸 보면, 인간은 정말 사회적 동물이라, 우리 팀의 면면만 봐도 인간은 그냥 뻔한 존재구나 따위의 생각이 나는 드는 것이다. 결국 정답은 능력이고 자기가 가진 것을 얼마나 뽐낼 수냐 있느냐인데, 시시한 인간 혹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노력은 않고 뭐든지 긁어 욕하려는 오만한 태도를 가진 이 동네에 대해 그냥 '그러려니' 하는 태도를 점점 갖고 있는 것이다. 좋게 말한다면 여유가 생긴 것이겠지만 나쁘게 말한다면 무뎌지는 것이리라. 모든 것을 긍정하는 나의 태도를 그리 경계하는 부정 인간에 까지 옮겼으니, 이는 좋게 말한다면 성장이되 나쁘게 말한다면 안일함이리라. 그러나 나쁘게 볼 이유 있는가. 싫든 좋든 혼자 나무집 짓고 살 능력이 안 되니 다양한 인간 속에서 '그러려니' 사는 수밖에 아직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언제든 최대한 긍정주의로 사는 것이 좋다고, 나는 조금 미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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