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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un 19. 2020

직무만 맞다면 회사는 적당히 좋아해도 그만

세상에 안 힘든 사람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각자의 무게는 버겁다. 각자 사연 많고 자리서 버티는 이유도 많다. 제대로 된 세상에 나올수록 더 그렇다. 저마다 그렇게 된 이유 저렇게 된 이유가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하면 된다. 뭐 그리 아등바등 고군분투하려 이해하려 애쓰나. 그냥 그 사람 사연은 그렇구나. 참 힘들었겠다. 안타깝다. 이것도 오지랖일 땐 그냥 그런가보다. 듣고 흘리고 눈치채고 모른 척하고 그럼 된다. 원하지 않는데 함부로 위로해줄 필요 없다. 뭐든 대가 없는 교류는 없을 테니 끝까지 책임질 자신 없으면 그냥 흘러가는대로 두는 편이 낫다. 각자 자신의 서사를 제일 잘 아는 건 스스로니까. 대개 각자의 직업을 명확히 가지고 제대로 자리를 잡아온 사람이라면 놀랍도록 생각 없어 보여도 별 일 없어도 보여도 속내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된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그걸 드러내느냐 마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우리 모두는 그냥 필요할 때 서로 곁에 있어주다가 따수운게 필요할 때 따수운 척해주다가 그냥 또 건조하게 헤어지면 된다. 인생은 혼자다. 뭐 청승떨자는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이 그렇잖은가. 자신의 일을 제일 잘 아는 건 자신이다. 때론 자신도 몰랐던 점을 남에게서 발견하는 때도 있지만 그 순간을 알아채는 것도 스스로 해내는 일이다. 이 순간이 오면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저 순간이 오면 저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자기 본분은 다해내야 한다. 각자의 속도가 있고 각자의 이유들이 있으니 남이 이해 안 가도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된다. 굴러가면 된다는 게 때론 무책임한 말이 아닌 대단한 말이 된다. 어쨌든 각자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굴러가고 있다는 건 긍정적 면이다. 긍정적 면이 있으면 그걸 보면 된다. 상황을 구태여 악화된 것처럼 볼 필요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내 일에 최선 다할 수 있으면 그뿐이다.


왁자지껄했던 저녁 자리를 파하고 목적지로 향하는 차가 끊겨 그나마 가까운 차를 대신 타고는, 수킬로미터를 수시간 걸어 집에 왔다. 비를 좀 맞는데 청승을 떨고 싶었다. 기분은 좋았다. 아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나는 그냥 지독하게 외로웠다가 지독하게 착한 척했다가 스스로에게 연기파라고 치켜 세웠다가 오락가락했다. 요동치는 마음은 침착이라는 큰그림으로 잘 누르고 있었다. 비, 밤거리, 아무도 없는 거리는 긴장, 공포, 알 수 없는 기분을 만들었다. 늘 보던 장면이 새롭고 한두 번 있는 일 아닌데 두려운 이 길에서, 나는 그냥 평정심에 집착해서는, 그저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니다'를 습관처럼 내게 주지시켰다. 별 일 아닌 것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고, 그냥 그런 일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으며. 별 일일지도 모르는 일들에 대해서도 그냥 아무렇지 않다. 어쩌면 나는 아주 행복해서 이제야 평정을 찾고는 숨쉬느라 방금 물 위로 떠올라서 조금 어리둥절한 걸지도, 혹은 너무 잘 알아서 혹은 잘은 몰라서 그저 잔잔해 보이기 위해 아등바등한 걸지도 모른다.


꽉 찬 심야버스에서 하루의 짐을 어깨에 지고 아등바등 집으로 향하는 이들을 보며, 나는 보통의 사람들을 생각한다. 차가 있어도, 몰기 힘들어 버스를 택한 이도, 이 버스가 아니어도, 남은 근거리 버스가 이것뿐이라 택한 이도, 술을 마셔서 어쩔 수 없이 이 버스를 탄 이도, 늘 이 버스를 타서 만원버스가 아무렇지 않은 이도, 저마다 다양한 사연과 하루들과 태도들과 생각들과 모습들이 있을 것인데. 만원버스에 꽉 들어차서는 그저 고단함을 버텨내는 사람들이 갑자기 따뜻해서, 그냥 든든해서, 그냥 의지가 되어서, 나는 그냥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어서는 밤거리를 걸었다. 밤거리는 취객을 만나면 공포가 되기도, 공부를 끝내고 24시간 스터디카페에서 나오는 학생들을 만나면 아련해지기도, 24시간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 나오는 연인을 보면 몽글해지기도,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는 벌건 얼굴들을 보면 치열해지기도, 그저 정처없이 걷는 이를 보면 든든해지기도 했다. 나는 참말로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집에 와서는, 그저 뭐든지 괜찮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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