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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un 13. 2020

젊은이 욕한다고 당신 삶이 정당화되진 않아

나는 요즘 애들이라고 싸잡아서 욕하는 것만큼 구린 게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애들? 뭔 소리야. 시대별로 똑똑한 애들은 똑똑했고 아닌 애들은 아닌 거고. 헝그리 정신도 있는 애들은 여전히 있고 아닌 애들은 없는 거다. 일면만 보고 그 집단을 싸잡아 보려는 건 마치 '90년생이 온다'를 늙어가는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젊은 세대와 분리하는데 악용하는 이들을 보는 것과 같다. 요즘 애들, 야근 열심히 한다. 일부 일 안 하는 선배들이 만들어둔 것들 치우느라 고생한다. 과거 내 직장의 선배들은 그래도 젊은이에게서 배우려고 하거나 뭐든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그 감각을 따라가려고 했는데, 지금 내가 일하는 매체는 굉장히 회피적이고, 자신의 문제를 젊은이를 욕하는 데서 푼다. 요즘 젊은이 누가 투지가 없지? 나는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어서 모르겠다. 투지 없는 젊은이는 언제고 있었다. 뭐든 안 좋은 면만 부각하면 이상해 보인다. 게다가 치명적인 일반화의 오류까지 범한다. 깜이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B 선배가 매일같이 젊은 세대를 욕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일하면서 이렇게나 늦잠을 자고 불성실한 이를 본 적이 없다. 유세는 떨고 싶은데 능력이 안 되니 입으로 실수만 낳는다. 그 선배를 보면 안쓰럽다는 말로 정신승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80년생 왜 그래' 하지 않잖아. 그냥 그 선배가 이상한 거다. 어서 이 조직을 나가야 하는 걸까 싶다가도 어딜 가나 이상한 인간은 있는데 하며 합리화하다가, 부서 이동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며 합리화하다가 말다가 뭐 그런다. 회사로만 일상을 채우지 않으려 이것저것 하고 있어서, 그래도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 브레이크가 두 개는 생긴 것 같다. 언제나 잊지 않으려고 하는 건 내게 선택권이 있다는 거다. 나는 그동안 너무 남의 기분을 맞춰 살았다. 상사나 같이 일하는 사람이나 새롭게 만나는 인터뷰이 등에게 언제나 밝고 잘해주려고 하다보니 몸이 병났다. 그렇다고 이게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바뀌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그냥 부정적인 인간은 그러려니 하면서 멀리하는 수밖에 없다. 얼른 떨치고 일어나야지, 그런 사람들의 피해의식과 부정적인 기운에 내가 내 일상을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슬프지만, 지금 이게 현실이라면, 부단히 다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지 주저앉고 포기하는 건 나답지 않다.


B 선배는 나간 인턴들 등을 욕할 때 '사람 만들었다'느니 헛소리를 해대며 욕을 하는데, 그러니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그를 낮게 볼 수밖에 없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잘해주려고 애를 쓰고 안쓰럽게 보지만, 그가 입만 열면 상황을 모면하려고 줄줄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욕하는 탓에 존중해줄 수는 없다. 존중할 수 없는 사람을 선배로 뒀다는 것은 꽤나 슬프다. 사람의 싫고 좋고가 문제가 아니라 좋은 면을 보며 배우고 싶은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선 참 슬픈 일이다. 저 사람이 어딜 가서 남을 좋게 얘기하는 꼴을 못 보니 어딜 가나 저러고 다니겠구나 싶어 안타깝기도 하고, 그의 밑에 있는 내 현실이 웃기기도 하고, 뭐 그렇다. 근데, 과하다. 일과 일상을 분리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살 길을 최대한 찾아 나가고 있다. 어쨌든 나는 본업을 잘해내고 있으니 그런 것에서 강제 위안을 삼는다.


근래의 나는 스마트폰 알림이 오면 스트레스부터 받고, 새 사람을 만나는 일에 기계적으로 익숙해져 있다. 진상도 많이 만나고 억울할 일도 많지만 그냥 그러려니 한다. 사람들은 기자가 무척 돈도 많이 벌고 갑질도 떵떵하는 줄 안다는 걸, 진상들이 보낸 부탁 문자나 전화를 받으면 한다. 기레기 기레기 하는 저신뢰 사회여서 무시하는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씁쓸했다. 을중의 을인 내 상황이 웃겼다. 어디어디 기자라고 하고 뭐 하면 안 되겠냐고 묻는 어처구니 없는 연락을 받고서는 또 벙찌고 그런다. 몇 달을 연락을 주고받다 갑자기 돈 달라고 하는 이도 있다. 정말 매번 뜬금이 없다. 뭐 처음부터 말하거나 예측이라도 하게 해주지 정말 앞뒤가 없는 연락을 많이 받는다. 벙찔 연락이 일주일에 몇 번은 있는데, 어떤 선배는 그러니까 일반인과 일하지 말라고 한다. 꽤나 위안이 되는 말이지만 그럴 수 없다. 홍보랑만 일할 거면 왜 기자를 해. 에디터를 하지. 듣는 귀가 필요한 곳에 있고 싶었다는 내 초심을 지켜야지. 그럴 거면 경제지 왜 나왔어. 계속 있었겠지. 나는 그 정도 버텨낼 깜냥은 있다. 아직은 말이다. 진상을 만나면 그냥 매번 새롭게 웃으면서 설명해 주고,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해 주고 그러는 수밖에 없는 거지. 고통스럽지만 내가 선택한 직군이 이런 거라면 받아들여야지 하고 나는 일정 부분 포기한다. '그러려니' 안 하면 내가 질식하겠는걸. 웃어 넘겨야지.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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