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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un 12. 2020

감정 쓰레기통만 피해도 회사생활이 두 배로 즐겁다

우리 선배는 자신에게 잘하는 후배들을 함부로 대한다. 후배가 공손하게 하면 그의 위에 군림하려 한다. 그러니 다들 싫어하고 떠나갔다. 이유없이 꼬투리 잡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괴롭히니, 나는 저 사람 왜 저럴까 했는데, 수년을 지켜본 결과 그건 자격지심이다.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내 앞에서 뜬금없이 내가 속했던 매체군을 골라 욕하거나 (나는 ㅇㅇ지 기사는 안 봐, 나는 ㅇㅇ 기사는 안 믿어) 자신이 틀린 사실에 대해 계속 우기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미안하다고 하며 수정했던 일 등은, 결국 그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스스로 깜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해보려고, 보이는데 집중해서 만만한 어린 애들을 속칭 얼마나 '조졌는지' 이제는 다 보인다. 뭐, 처음부터 안 보였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냥 다 보여서 안쓰럽다. 열심히 하는 상사가 능력이 없을 때 후배는 그냥 다 포기해 버린다. 내 마음의 무의식에서, 기존에 함께 했던 선배들과 부장들의 뛰어남에 익숙해졌던 것들이 그에 대고 비교지표를 만들어 내게 매순간 보고서를 들이미니, 나는 그가 안쓰러워서 그냥 안쓰럽게 대한다. 참, 안쓰러워서. 경력이 부족하고 관련 일을 한 적이 없어 모르는 게 많은데, 그걸 숨기려고 안달복달이다.


안달복달하는 그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입만 열면 동네 얘기를 하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당황스럽다. 뭐, 이 일하면서 나는 '아버지 뭐하시니' 같은 질문은 귀에 인이 배기게 들었고 집이 어디에 있는지, 이사는 어디서 어디로 했는지 등을 물으며 간보는 인간들을 수두룩빽빽하게 보고 익숙해진 인간이라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어 하나 도닥인다. 안쓰러운 그 선배가 다른 팀과 회식하는데 내게 그런 티를 좀 냈다. '~였는데 좀 올라오고 있어 ㅋ'하며 술먹고 센 척을 좀 많이 했는데, 나는 그냥 웃고 말았는데 다른 팀 사람들이 듣더니 정색을 했다. 'X님, 저는 ~ 사는데 그럼 전 뭐예요?', '여기 다 ~ 사는데 그럼 그건 뭐예요' 하고 정색을 하고 그건 아니라고 안쓰러운 선배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나는 그냥 그 선배가 웃긴 사람으로서, 그냥 웃겼다. 그 선배가 하는 모든 게 웃긴 사람이라 그 선배가 그 자리에서 쩔쩔매면서 또 '아니~ 어쩌구저쩌구 그렇다는 거지~' 하고 또 아무 말이나 하면서 센 척하고 싶어하는 것에서 또 웃겨서 웃었다. 나는 그가 엄마 욕을 하거나 다른 선배와 또 엄마 욕을 할 때는 또 웃겨서 조용히 그냥 웃는다. 대놓고 미친X처럼 웃기엔 용기가 없어. 너무 웃긴데 어떡하나. 곤란하다. 


A 선배는 나랑 둘이 있으면 세상 다 퍼줄 것처럼 잘해주다가 혹은 자기 스트레스를 미친듯이 풀다가 한다. 이상한 감정기복을 보인다. 그 사람을 보면서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노처녀 히스테리란 참 무서운 거구나 싶다. 과거 모 회사서 인턴을 하면서 느꼈던 열폭을 그대로 해대는 사람이다. 왜 저렇게 살지. 싫으면 이직하든가. 후배 불러서 왜 저렇게 자기 기분을 다 드러내고 밑바닥을 드러낸 뒤 모두가 모인 자리서는 또 센 척하고 싶어 안달이다. 근래 새로운 어린 친구가 하나 들어온 이후 A 선배는 그 친구에게 이상한 센 척을 하고 싶어서 이상한 행동을 한다. 초반에 그 친구 욕하는 걸 안 들어줬더니 화풀이를 해대고 그 친구가 안 받아주면 이리로 왔다가 저리로 왔다가 하다가 아무도 안 받아주니 혼자서 대폭발이다. 다 보이는데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미취학 아동같은 행동을 해대니 나는 그가 소시오패스 같다고 생각하다가 자존감 없는 이의 30대 후반을 보는 듯해 암담하다. 제발 회사만 다닌다고 떠들어대지 말고 뭐라고 했으면 한다. 참 안쓰러운 사람이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게 느껴져서 말이다.


A 선배는 내가 이 회사에 입사했을 초반, 나를 불러다 자꾸 밤을 새우며 다른 사람들 욕을 해서 내가 다른 회사 언니에게 '어떡하냐'고 진심어린 고민상담을 하게 했던 사람이다. 딱 한 번, 언니에게 회사 얘기를 한 적 있던 게, 바로 이 사람 때문이었다. 요즘에서야 그가 내게 하던 행동이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깨닫고 멀리 하는 중이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곁에 둬선 안 된다. 자꾸 아이디어를 훔쳐가길래, 발제 아이디어를 달라고 해 모두 앞에서 주면 회의 시간에 자기가 낸 척하며 낸다. 모두 모른 척해준다. 말하는 어투부터 속도가 래퍼처럼 빨라서 그가 불안해한다는 게 다 티가 나니 불쌍하잖아. 지지해 주면 째려보며 "내 아이디어야" 하는 황당한 대답을 해 소시오패스인가 의심하게 한다. 회의 시간에 막힌 아이템에 대해 술술 풀어주면 다른 선배 눈치보며 받아 적다가 그대로 한 후 "어, 원래 알던 거야" 소설 쓴다. 아무도 안 물었는데 이상한 방어기제를 내뿜고 자기가 오롯이 한 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냥 아무 말 안 하면 나는 모른 척해줄 건데 말이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해줄 건데 뭐가 그리 창피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건지 아이디어를 내준 상대를 깎아내리고 왜곡한다. 내가 타격을 하나도 받지 않으니 더 몸부림치고 난리다. 다른 사람이 말릴 때까지. 그러니 멀리해야 한다. 첫인상은 틀리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해 주었는데 더는 안 될 사람이다.


이들을 보면 나는 자기 안에 중심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불안전한지 생각한다. 나는 여기에 멋지고 좋은 사람 이야기를 적지 않는다. 마음에 품고 기쁘면 그만이다. 내가 적는 건 경각심을 유지하려는 거다. 매몰되지 않으려는 거다. 나이가 들수록, 경력이 쌓일수록 드는 생각은, 확실히 젊은 치기가 사라져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내가 그 끈을 억지로라도 붙잡고 발을 동동 구르지만 언젠가 힘이 사라져 괴물이 될까봐 나는 경각심을 유지하고 싶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은 왜 그러냐고 물으며 그냥 편하게 살라지만 나도 그들도 안다. 진심도 아니고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안다. 최근 들어 전 직장 동료 A의 얼굴이 한 번 떠올랐다. 2년 전,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 안부를 묻기에 '그 정도로 친하진 않았지만 안부를 물어 주다니 고맙네' 했던 대상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그 때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던 때였던 듯하다. 이제 다시 돌아와서 일을 하고 있다. 둘이 있을 때면 버릇처럼 한숨을 쉬면서 '나는 누가 날 미워하는 게 무섭다' 혹은 '나는 누가 날 싫어하는 게 무서워서 모두에게 잘해주려고 한다' 등의 말을 하고 욕을 시원하게 내뱉던 그는 어쨌든 이 업계로 돌아와서 산다. 기자 일을 때려쳤던 몇 명도 생각난다. 어쩌면 나는 요즘 버티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근원적인 의문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만둘 순 없다. 돈도 없고 용기도 없다. 혼자 사는 마당에 더는 감행할 수 없다. 새 일을 만들어 두었고 도망칠 수 없게 나를 옭아매 두었다. 그러니 병이 나는 거다. 하고 싶은 걸 언젠간 할 수 있겠지 하는 굳건한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과연 그 날이 올까 하면서 나는 고통스럽다. 그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엔 내가 아직 어리고 포기하자고 말하기에도 어리다. 내려놓는다는 것도 온몸으로 거부하니 다시 떨치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는데, 몸이 종종 통증으로 거부한다. 이런 말을 쓰는 것조차 '그래서 어쩌라고 어쩔 수 없잖아' 하는 시선이 세상에 분명 존재하기에, 내가 나를 또 검열하면서 찝찝하다고 말은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일기를 쓰기로 했으니 쓴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일기를 못 써왔던 날들을 달리면서 마음 속에 '일기 써야 하는데' 했던 의무감이 또 있으니, 누구 표현대로 '왜 이렇게 힘드려고 애쓰니' 하는 인간이라는 걸, 이제 그냥 받아들인다. 근래의 나는, 살겠다고 스스로 만든 의무 감옥 속에 갇혀서 숨이 안 쉬어진다고 발을 구르고 있는 모습이다. 어디든 안 무능한 조직 없다는 걸 알지만, 생각보다 훨씬 무능하고 열폭까지 하는 고인물에 둘러싸여서, 나는 숨을 못 쉬다가, 일상에서 도망나와 쉬다가, 뭐 그러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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