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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an 16. 2020

'대충살자'

'대충살자'는 유행어에 숨은 건, 전력질주했으니 이제 힘을 좀 빼라는 걸 포함한 조언일 테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살라는 얘기가 아니라 할 거 다 했으면 자기 돌볼 시간 좀 가지라고. 삶에 노련미를 가지라는 주문일 것이다. 뭔가를 이뤄낸 이에게는 꿀같은 조언이지만 아무 것도 없는 이에게는 독이 되는 조언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술자리에선 저마다의 고민이 오간다. 대학원을 다니는데 나이 많은 동기가 괴롭힌다거나 회사를 다니다가 돌아온 동기가 자기를 괴롭힌다거나 하는 따위의 누군가 듣기엔 한량같은 소리들이다. 잔인한 문장이라 미안하지만 남의 힘든 얘기를 듣다 보면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한다. 자기 기준에 맞춰서 재단한다. 각자의 역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이에게 고민을 흘리고 마는 게 독이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득이 될 수도 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 못할 상대니 평가나 기억은 날아간다.


사람은 다 가질 수 없다. 여유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마음을 갖는다. 여유는 돈, 시간, 마음, 사랑 등 다양한 게 될 수 있다. 뭐든 하나 쥐고 자존감이 단단하거나 무너져도 잡아줄 뭔가 있다는 생각은 스스로 의식하지 않아도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고 그저 스스로에 빠져서는 시간을 오래 보낸 사람은 작위적이고 오만하다. 그러니 후배든 동기든 누구든 받아주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오로지 친절을 베푸는 체라도 하는 대상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다. 스스로가 강자에게만 가짜 여유를 드러낸 사람으로 오래 살았으니 자신 역시 후배를 포용하질 못한다.


이 일을 하면서 아쉬운 건 후배를 인격으로 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다. 상명하복이라고들 하지만 정도껏 해야지. 후배의 인격까지 배려해 주라고 하지 않겠다. 사람이라고 생각을 못하는 게 아쉬운 점이다. 스스로를 갉아먹을 그 모습은 자신만 모를 뿐 제3자들은 다 느낀다. 이미 늙어버려 생각을 고칠 마음 따위가 없다는 것을 티내는 이를 많이 봤다. 그들은 성별, 나이에 따라 괴물이 되진 않았다. 어떤 자기만의 틀에 갇혀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병에 걸려버린 이들은 때론 30대 여성, 20대 남성, 40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도 존경할 수 없는 이들의 상태는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꼭 누군가를 존경하라고 주문하는 건 아니다. 세상은 다양한 색으로 만들어진다. 공익광고 문구 따위서 볼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평범한 문장을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갈수록 다른 의미로 본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 대한 열등감, 꾸준하게 뭔가를 해온 이들에 대한 반박 심리, 얼마간의 능력을 검증받고 그 자리를 지키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에 대한 깎아내림 등을 소리내어 말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 뿐이다. 감히 재단하고 판단하는 행위, 나아가 모두의 의견이 다를 뿐인 것을 자기만 옳다 우기고 싶어 열올리는 한심한 작태는 그저 성장을 멈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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