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플래그 감별해드립니다

by 팔로 쓰는 앎Arm

잠을 청하기 어려운 밤이다. 이 곳에 와서 정말 처음으로 날을 새웠다. 종일 처리중인 서류들과 행정적인 일들 탓일 거라고 추측한다.


이 곳에선 맹렬한 추위가 오면 집이 흔들린다. 농담이 아니고 참말이다. 집이 흔들리고, 여기저기서 삐그덕댄다. 침대가 흔들리는 건 예삿일도 아니다. 그렇게 흔들리는 집 안에서 이젠 이 정도는 별 일 아니란 듯이 오늘 하루 집에서 보내보았다. 진즉 이런 시간을 가져볼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인처럼, 집에서. 이 곳에 원래 사는 사람인 것처럼, 하루를 온전히 아늑하게. 근데 그럴 수 없는 것이,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쉬면 두통부터 시작해 고통이 이어지므로, 뭐 그럴 수 없었다. 밸런스가 늘 중요하다. 균형. 오늘은 천지간의 도움으로 그 균형이 잘 맞았다고 하겠다. 매일같이 돌아다닌 나에게 가장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그게 가능한 건 모든 천지간의 도움이 있던 덕일 테다.


하루종일 이어지는 연락들에 답을 하다보면 정말 너무 괴롭다. 헤드헌터들의 무작위성 지원 협박은 정말 이골이 난다. 넌덜머리가 난다. 이 곳에 올 때 너무 아무 것도 모르고 순수하게 응하고 온 후 정말 그냥 담담히 기록할 수 없는 온갖 괴롭힘을 당한 터라 (참말이다. 가치없는 기억들을 되새길 필요가 없으므로 팩트를 나열하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 될 것이다. 그만큼 소화된 후에 쓸 수 있으리라.) 그럴 일이 없게 해야 했다. 해외 근무를 원하는 이들에게 몇 가지 레드플래그를 알려주겠다.


1. 네 돈 들여 비자 해결하고 와라.

2. 회사에서 너 하는 거 보고 해주겠다.

3. 대표가 해주겠다고 강렬하게 밀고, 행정팀의 말은 다르다.

4. 행정팀에서 입사 전부터 사내정치를 시작하는 게 보인다. (이런 치들은 대개 안에서 고인물이라 멍청해서_미안하다 이런 표현_자기들 행동이 눈에 빤히 보인다는 걸 모른다_외부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0에 수렴하므로)

5. 와서 살다보면 남자 혹은 여자 만나서 결혼해 정착할 수 있다.

6. (대개 이력만 보고 꽃밭에서 산줄 알고) 고생해본 적이 없는 모양인데, 해외에서 살기 위해 나는 청소일부터 했다. 이런 '허슬' 끝에 꿈을 이뤘다.

7. 젊은 여성들을 찾고 있다.

8.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는 서명을 해 보내달라. (합법을 가장한 편법일 수 있다. 이직하는 선배들에 대해 발목을 잡았음 잡았지 좋은 얘기해주는 리더를 본 일은 드물다. 좁은 업계서 괜한 화근이 될 수 있다.)


1~7은 그냥 '아묻따' 거르시라. 안다. 엄청난 유혹처럼 느낄 수 있다. 선진국(표현 미안하다. 농담 섞은 거다.)에서의 근무를 위해 뭐든 감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헬게이트에 굳이 발을 들인 후 다 안 다음 '음 이런 경험 필요없었겠다' 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기에 조금의 고민이라도 든다면 돌다리를 부술 때까지 의문을 해소하시라. 제대로 된 기업, 헤드헌터, 인사팀은 그 돌다리가 부서질 때까지 같이 고민을 해결해준다. 그 과정에서 조금의 찝찝함이라도 든다면 하지 마시라. 이건 어린 날 열정페이니 뭐니 하는 문제가 아니다. 정말 큰일날 수 있다.


헤드헌터들 중에서도 자신이 중장년 남성이란 이유로 (본인이 그걸 어필했으니.) 아묻따 반말을 한다거나 '다른 후보자들은 다 동의했다'거나 새벽에도 톡을 보내고 집착 수준의 연락하는 이들은 무조건 차단하시라.


정상인 찾기 힘든 세상이다.

정상인 아니라는 레드플래그를 들고 뛰어드는 자들이라도 멀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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