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 나오면 룸메이트와 사는 경우가 많다. 대개 서로 배려하면 서로 얼굴을 잘 안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다른 집 현관문 여는 소리 들리면 안 나가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그 유명한 밈처럼 말이다. 이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난 주로 집에서 잠만 자고 일하는 시간이 길어서 별 일이 없다. 쉬는 날 새로 알게 된 건 한 방의 룸메이트가 정말 하루종일 밤새워가며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얼굴을 몰랐는데, 다른 룸메이트가 "나이든 ㅇㅇ"라고 해서 알게 됐다. 정말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그는 하루종일 전화를 했다. 도란도란 하는 게 아니라 전화에 "내가 ㅇㅇ 대학 나와서 ㅇㅇ를 했는데 그걸 해야겠냐"는둥 "ㅇㅇ는 ㅇㅇ학과를 알아주지도 않는다"는둥 매일 화를 냈다. 난 자잘한 백색소음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화내는 소리는 도무지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게 고백한 집주인에게 연락할 만큼 대담한 사람도 아니므로, 나는 그냥 참았다. 왜냐하면, 주로 밖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고, 곧 이사를 갈 것이므로 참을 수 있었다.
애니웨이, 매일같이 방에 갇혀 전화만 해대는 그는 어디에선 엘리트겠지. 어딘가에선 선생일 수도 있다. 이 곳에 와보니 이상한 학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미안하지만 도피성 유학자가 넘쳐난다는 걸 나는 직접 보고서야 알았다.) 애매하게 졸업하고 한국인들의 눈 먼 돈 뜯어내며 사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 참 많더라. 국가별 시스템을 잘 선택했는지에 따라 길이 갈리는 것 같은데, 이렇게 여시(뭐랄까. 틈새시장이라고 해야 하나.)같이 정직한 이들 돈 빨아먹는 이들이 많다는 데 놀란다. 관심도 없던 룸메이트들의 직업을 알게 된 건 ㅇㅇ로부터인데, ㅇㅇ는 남얘기를 습관처럼 한다. 결국 나는 "죄송한데 저 진짜 T라 남 얘기에 관심이 없어요. 공해같아요" 하고 말았다. 진짜 듣기 싫었다. ㅋㅋㅋ T 어쩌구 한 건 ㅇㅇ가 본인이 F라서 어쩌구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방에서 하루종일 떠드는 그 룸메'들'이 한국의 한국인들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이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놔. 그랬구나.
ㅇㅇ는 자신이 가르치는 재벌 자제들의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아 이래서 해외 나오면 비밀이 없구나. 진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흘려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기 바빴다. 누군가에겐 정보겠지만, 내겐 공해다. 흘려듣고 또 흘려들으면서 하나만 기억했다. 돈을 아끼자. (응?) 그런 눈먼 돈이 아까우니 나는 돈을 아끼겠다. 난 언어를 타고나 다행이다. 난 그런 돈 안 들여도 언어와 외국어를 잘했으니 정말 운이 좋다. 복이다 복. 또 이런 생각을 하며 긍정주의로 흘러갔다. 아무튼, 눈 먼 돈이 아까우니 한국에 계신 여러분은 제발 아무 데나 돈 쓰지 마시고 아끼시라. 아끼시라. 아끼는 게 답이라고 황급한 결론을 지으며 일기장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