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중해
작년 이맘때쯤 수박페페(잎이 수박모양을 닮은 식물. 수박 페페로미아의 줄임말)를 인터넷으로 주문하였고, 더운 날이라 그런 지 도착했을 때부터 식물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더위 먹은 듯 축 처진 이파리는 이내 툭 하고 떨어져 버렸다. 잎모양이 동그랗고 귀여워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에 꽂아두었다. 초반에는 금세 잎이 나지 않을까 자주 들여다봤지만, 잎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잔뿌리만 살짝씩 길어져 나왔다. 새 잎이 나는 건 포기할 때쯤. 1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흐른, 며칠 전 빼꼼히 수박페페 잎이 쏙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plant와 interior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planterior(플랜테리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요즘 반려식물 키우기가 대세이다. 반려식물 키우기는 나의 오래되고 한결같은 취미이다. 식물 키우는 건 단순히 인테리어 효과만 있다기에는 무궁무진한 면을 지니고 있다.
어릴 때부터 피어나는 꽃, 식물, 푸르른 풍경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처음 ‘내손으로’ 식물을 키워본 건 직장생활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직장에서 누군가가 남는 꽃 포트, 선인장 하나를 주었고, 그때 처음으로 반려식물과 함께 있는 행복감을 느꼈다. 빛이 거의 들지 않던 자취방이라 꽃은 금방 시들어버렸지만, 그때의 선인장은 아직 우리 집 베란다 한켠에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반려식물들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보고 싶어서 아침에 눈을 뜬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식물이 주는 치유 효과는 엄청나다. 일에 치여 힘든 날에도 묵묵히 내 곁에 있는 식물을 보면 안정감을 느끼고, 내가 무언가를 성장시키고 돌보고 있다는 뿌듯함과 책임감도 든다.
‘식멍’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식멍’은 ‘식물을 보고 멍 때리기’의 줄임말이다.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매일 ‘식멍’을 하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에너지를 충전한다. 너무나도 바쁘고 메마른 일상에서도 무언가를 멍하니 보고만 있는 걸로도 힐링이 되는 건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고, 또 어떤 조건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 자기만의 모습과 향기로 성장해가는 식물을 보고 있으면, 나의 모습과도 닮은 것 같아 더 애틋해진다.
힘없이 축 쳐진 채 떨어져 나가서 더 이상 성장할 힘이 없어 보였던 수박페페가 온 힘을 다해 새순을 낸 것처럼, 내 온몸에 힘을 다 쓴 것 같은 순간에도 다시 나도 모르는 새 서서히 온 힘을 비축해, 더디더라도 성장이 이어지길.
내가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식물이 나를 키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