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아랫집이다. “저희 김장했어요. 한쪽 맛보세요.” 아랫집 아이 엄마는 뭐 하나 혼자 먹질 않는다. “그냥 드시지. 뭘 자꾸 주세요.” 세상에서 맛있는 것 중의 하나가 이제 막 만든 김치 아닌가. 며칠 지나서였나 이번엔 윗집에서 내려왔다. “주말에 김장했잖아. 먹어봐.” 올해는 김치 나눠 주는 것이 유행인가. “어머. 고생했어요.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세상에서 맛있는 것 중의 또 하나가 남이 해준 음식 아닌가. 남이 해준 맛있는 김치를 김이 나는 밥 위에 올려 먹다 보니 문득 우리 집 김치가 생각이 났다. ‘김장할 때가 됐지.’ 마음 한구석에 부담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친정 부모님은 전원 삶의 꿈을 이루셨다. 분명 은퇴하셨는데 전원은 또 다른 노동의 시작이었다. 몇 고랑 안 되던 고추는 해가 지나면서 점점 증식했고 다른 개체들을 불러왔다. 친정을 갈 때마다 가지, 오이, 토마토, 감자, 고구마, 양파, 참외, 수박, 배추 점점 가짓수가 늘어나는 건 기분 탓인가. 땅이 노는 꼴을 보지 못하는 엄마의 부지런함은 소일거리를 농사일로 만들었다. ‘마트에 다 있는데 노래 교실 다니고 사우나 다니면서 지내면 안 되나.’ 딸의 눈으로 볼 땐 다 노동이고 고역이었다. 그러던 중 엄마가 암에 걸리시고 수술을 하셨다. 엄마가 투병 중인 것이 문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배추가 심긴다는 사실이다. 올해도 배추를 보았다. 몸도 안 좋으신데 왜 자꾸 심는지 모르겠다. 올해는 가을비가 많이 오던데 좀 안 자랐으면 좋겠다. 학교 가기 싫어서 핑계를 찾는 아들처럼 사십 넘은 아줌마도 김장 앞에서 이리 유치해진다.
배추를 뽑았다. 그나마 비가 와서 오십여 포기 나온 것 같다. 밭에서부터 시작되는 김장을 처음 했을 땐 흥미로웠다. 도시에서 자란 나로선 김치가 되는 과정이 일종의 농촌 체험 같았다. 하지만 김치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배추가 김치가 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노동량을 겪어본 후론 체험하고 싶지 않아 졌다. 갓 뽑은 배추를 나르는 것도 다듬어서 절이는 것도 절인 배추를 씻어서 헹구어 내는 것도 뭐 하나 쉽게 되는 것이 없다. 이 모든 것을 전두 지휘하는 친정엄마는 말 그대로 전장에서 호령하는 장군 같다. 각자 할 일을 명령하고 움직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느새 와서 조교같이 시범을 보인다.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야." 엄마 얼굴을 보니 묘하게도 생기가 돌고 신이 나 보인다. 김장은 절여지는 시간 때문에 절대로 하루에 끝낼 수 없다. 1박 2일 동안 온 가족이 모여 한바탕 배추와 전쟁을 벌인다. 김치를 완성해서 김치통에 담길 때면 근육통으로 뻐근함이 차오른다. 엄마 앞에서 힘들다고 허리 한번 두들길 수가 없다. 내가 이런데 엄마는 오죽할까 싶지만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말자는 얘기이다. 김치는 사 먹으면 그만이다.
이전에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라는 책을 읽었었다. 이 책은 자기에게 주어진 어렵고 억울한 환경을 억척같이 순응하며 강인하게 살아간 우리 6070 엄마, 이모들의 이야기이다. 서두에 1954년생 여성들의 학업, 결혼, 일에 대한 통계를 다루고 있다. 이들은 보통 결혼해서 78, 79, 80년생들을 낳았다. 놀랍게도 친정엄마도 나도 그 데이터를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 시절 여성들은 오빠, 남동생들의 교육을 위해 고등교육의 기회를 포기하고 공장과 경리 일을 하며 결혼 직전까지 집안의 경제를 책임졌다. 얼굴 몇 번 보지 못한 남자와 결혼하면 그 남자의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또 다른 굴레에 들어가게 된다. 그 시절 여성들은 대가 없는 노동으로 삶을 채우는 고단한 인생이었다.
슬프게도 엄마의 인생 또한 통계처럼 정확하게 1954년생 여성들과 일치했다. 결혼 전에 경리 일을 시작해 오빠와 남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결혼 후 엄마는 낮에는 아버지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시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쌓여있는 집안일을 시작했다.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챙기는 것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내가 본 엄마는 취미는커녕 낮잠 한번 편하게 주무신 적이 없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첫째 딸로 살았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엄마의 삶의 태도로 내가 이만큼 살아갈 수 있었는데도 나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고생하기 싫었고 언제나 당연한 희생 가운데 있는 것도 싫었다. 엄마는 딸에게조차 엄마의 삶은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1954년생 여성들은 2023년 가을 김장을 담그고 있을까. 여전히 가족을 위해서 이제는 늘어난 아들과 딸 식구들을 위해서 그들의 노동은 계속되고 있을까. “할머니 김치는 못 참지.” 하며 김치를 맛있게 찢어서 수육에 싸 먹는 내 딸에게 눈총을 날려본다. ‘딸아, 제발. 할머니가 김장 힘들어도 그 말에 멈출 수 없단 말이다.’ 손녀가 맛있게 먹는 김치는 그동안 딸에게 먹였던 김치하고 얼마나 다를까. 고생은 엄마가 했는데 손녀들에게 수고했다고 용돈까지 챙겨주는 엄마의 모습에 갑자기 울컥 올라온다. 툴툴거리면서 어느새 엄마 걱정을 하고 있는 내 모습도 우습다. 이럴 거면 애초에 적극적으로 엄마를 돕던지. 김치가 뭐라고... 그렇게 김치냉장고에 쌓인 김치통은 엄마의 자부심으로 든든히 자리 잡았다. 올해도 이루어낸 엄마의 엄마 됨이 김치로 증명되었다. 그렇게 엄마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엄마는 고된 자신의 행복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좋은가 보다. '김치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여전히 엄마의 노동은 넓고 깊어서 나 같은 딸은 이 나이 되도록 이해 못 하려나보다. 비가 유난스레 내리는 가을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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