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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Dec 26. 2022

휴직하길 참 잘했다.

남자의 육아휴직 만족기

 우리는 저녁 8시가 되면 아이를 잠재우고 있다. 나나 아내 둘 중에 한 명이 아이를 아이 방으로 데려간 뒤 아이가 잠에 들면 빠져나온다. 아이가 잠에 든 이후의 시간은 그야말로 자유의 시간이다. 육퇴(육아 퇴근)란 것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모른다. 하루 종일 온전히 아이에게만 신경을 집중하느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할 수 없다가 육퇴를 맞이하고서야 온전히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잠에 들기까지 길면 1-2시간도 걸릴 때가 있으므로 아이를 재우러 들어간 사람은 아이가 잠에 들지 못할수록 자유 시간이 짧아지게 된다. 아이가 잠드는데 4시간이 걸린 날이 있었다. 그런 날에는 하루동안 나만의 시간을 잠깐도 갖지 못한 채 침대에 눕거나 지친 육체를 억지로 깨워서 기어코 새벽까지 각성해 개인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이미 삼십 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우리 부부는 그렇게 무리하면 다음날 엄청난 피로를 짊어진 채 다시 육아를 해야 한다. 아무튼 아이가 잠을 잘 자면 우리 부부의 삶의 질이 좋아진다. 그리고 아내나 나나 서로 돌아가면서 아이를 재우는 것이 서로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재우는 날은 별로 많지 않았다. 아이가 나보다 엄마를 찾곤 했기 때문이다. 지쳐 보이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억지로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아이는 불 꺼진 방에서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30분이고 1시간이고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밖에서 그 울음소리를 듣다 못해 아내가 방에 들어와 아이를 재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그러면 거실에서 컴퓨터를 켜고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기다렸는데, 조금 편하고 재미있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나를 밀어내고 엄마만 찾는 아이가 서운하기도 했다. 자신을 돌볼 시간이 부족한 아내는 나름대로 불만과 서운함이 있었을 것이다. 이해는 갔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항상 곁에 있는 사람은 엄마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가 있었다. 남편에게 주어지는 출산휴가 10일을 다 쓰고 나서 주 5일 회사에 출근하는 나의 상황상 아내가 주 양육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아이는 평상시 오전 7-8시에 깨어났는데, 내가 출근하는 날에는 아빠 얼굴을 아침에 잠깐 보고 저녁에도 잠깐 보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또 아빠는 잠깐 스쳐서 보는 사람이었을 것이었다. 지쳐가는 엄마와 엄마가 없으면 불안한 아이, 더 친밀해지고 싶은 아빠 모두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10개월이 되었을 무렵 나도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 육아휴직을 쓰겠노라고 마음먹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불안하고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육아로 지쳐가는 아내, 가정과 회사일 모두 신경 쓰다가 스트레스로 가득 찬 나, 엄마가 회사에 복직하면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의 상황 모두를 고려해서 육아휴직을 사용하겠다고 결단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여러 사람에게 상황 설명을 해야만 했고,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준 사람이 많았지만 어떤 이들은 걱정 섞인 충고를, 어떤 이들은 웃는 얼굴로 내 뒤에서 다른 말을 하기도 했으니. 지금은 어찌어찌 휴직 4개월 차를 보내고 있다.


 아내와 내가 모두 휴직에 들어가면서 나와 아내, 아이는 거의 매일 서로 같은 일상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나는 이제 육아가 왜 어렵고 힘든지를 매우 잘 이해하게 되었다. 안전한 것에는 흥미를 금방 잃고 위험한 것에는 열정적으로 호기심을 발동하는 아이를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이 주시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해야만 하는 집안일을 처리해나가야 하는 상황,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서도 (매우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모든 것을 해줘야 하는 상황을.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이유 모를 짜증과 울음을 달래줘야 하고, 아무리 피곤하고 아파도 더 잘 수 없고 누워 있을 수 없음을. 하루에도 옷을 몇 벌이나 갈아입히고(우리 아이는 옷 갈아입는 것을 싫어한다), 쉴 틈 없이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해야 함을. 나라는 사람이 누려왔던 일상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음으로 인한 허탈함을 포함해 육아의 쓴 맛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간 아내가 주로 혼자 겪었을 수고와 고통을 이해할 수 있어서, 미안하고 고맙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 가족 모두가 계속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살면서 결코 쉽게 확보할 수 없는 소중한 기간을 통해서 한 달 동안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소중한 추억과 사진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주말에도 출근했던 나로 인해 처가와 본가를 자주 가지 못했는데 이젠 수시로 방문하고 만날 수 있게 되어 아이가 할머니들과 삼촌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제 아이는 매일 같이 있게 된 아빠를 더 이상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보다 더 찾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같이 놀고, 같이 먹고, 같이 잠을 자다 보니 아빠라는 존재도 엄마와 같이 애착이 가는 대상으로 여기게 된 듯하다. 아빠에게 다가와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내고, 화장실에 있는 아빠를 계속 부르고, 아빠랑 자겠다고 떼쓰기도 하는 아이를 보면 육아휴직을 쓰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서로 돌아가면서 아이를 재우는 것은 물론 엄마가 하루쯤 어디를 간다 해도 둘이서 재미있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휴직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도 마음 편히 약속이나 일정을 만들어 외출하게 되었다. 나의 휴직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가끔 휴직기간이 끝난 후의 회사 생활이나 나의 진로가 걱정처럼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의 눈을 통해 느껴지는 사랑을 볼 때마다 걱정근심은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나의 마음은 어느새 아내와 아이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올라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상태가 된다. 아내와 나 모두 육아휴직으로 소득이 줄어들었지만, 휴직 기간 동안 지급되는 육아휴직수당으로 생활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기만 하다. 물론 아껴서 살아야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내와 남편이 동시에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추가로 지급되는 수당이 약간 발생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가족이 더 끈끈해지는 지금을 통해 앞으로 닥쳐올 수 있는 시련과 위기들을 더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아, 육아휴직하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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