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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Dec 21. 2022

상처

더 늦기 전에

자기 방에서 자던 아이가 엄마와 아빠를 찾는 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범퍼침대에서 자력으로 나올 수 없는 아이가 깼다는 신호다. 아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와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침을 차려주었다. 뭔가 불편했지만 뭐가 불편한지 알 수 없었다. 식탁에서 밥을 다 먹은 아이를 바닥으로 내려주고 같이 놀다 보니 어딘가 쓰리다는 걸 깨달았다. 살펴보니 종아리에 길게 상처가 나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언제 난 상처인지, 어떻게 난 상처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굳어있는 피로 시간이 조금 지난 상태라는 정도만 파악이 되었다. 어젯밤에 잠들 때까지는 분명 괜찮았는데… 간밤 잠에서 깨기는 했다. 새벽 4시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다가 요즘 그렇게도 재미있는 재벌집 막내아들을 소파에 누워서 한 편 보았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들어갔는데, 도대체 왜 상처가 생긴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상처에 치료패치를 붙이면서 생각했다. 하긴. 상처란 게 간혹 나도 모르게 생길 때가 있기도 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 갑자기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는 것을. 누군가 별 의도 없이 뱉은 말이 가슴속에 깊숙하게 들어와 자리 잡기도 하고, 선을 넘은 장난이 모멸감을 남기기도 한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기다리다가 좌절이 찾아오고, 바라고 바라던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인연이었음을 직시하고 싶지 않아 분노를 쌓아두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모를 때가 있다. 상처에서 나던 피가 굳고, 덧나기 직전까지도. 아픔을 마주하는 게 불편해서 그럴 수도 있고, 너무 아플까 봐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주변을 배회하기만 하다가 나중에는 썩은 것을 도려내야 할 때도 생긴다. 상처를 깨닫지 못하는 건 큰 손해다.


왜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처를 발견해서 치료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당신도 약간의 불편함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면, 아픈 곳을 어서 발견하길 바란다. 그래서 상처가 더 커지기 전에 치료했으면 좋겠다. 물론 그 아픔이 어떻게 우리에게 왔는지 알아내어 동일한 괴로움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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