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남은자들 08화

이제는 보지 못하는 사람 (2)

단편 소설

by 포도씨

아버지의 눈 상태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그는 요즘 부쩍 자주 눈을 깜빡였고, 자주 뭔가를 놓쳤다. 길을 걷다 폐지 수레에 손을 찧은 자국, 컵을 들다 흘린 물, 비뚤게 잘린 김치 조각. 병원에서는 왼쪽 눈은 동수가 어릴 때 이미 시력을 상실했고, 오른쪽도 시신경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 눈마저 멀 수 있습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동수는 병실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결말이었다. 한 번도 준비된 적 없던 상황이었다.


그 밤, 동수는 오래된 필름을 꺼냈다. 아이들이 웃고 있는 사진. 무표정과 낡은 것들과 무거움과는 다른 웃음이 가득한 장면들. 그 속에서 동수는 사랑을 포착하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동수도 정확히는 몰랐다.


아버지는 평생 그를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적어도 기억하기에 “동수야”하고 부르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동수를 향한 다정한 말도, 화난 말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동수는 아버지의 그 눈빛 속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는 있었다. 그걸 구별할 수 없었던 동수는 아버지 앞에서 더욱 침묵했다.


동수는 아버지의 방 문 앞에 섰다. 문을 열진 않았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러나 동수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동수는 아버지의 얼굴 앞에 렌즈를 들이밀고 싶었다. 말 없이 앉아 있는 아버지를 찍고 싶었다. 수 없이 많은 얼굴들을 찍어왔지만, 그 얼굴 앞에서만은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시력은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다. 처음엔 “빛이 너무 부셔”라는 말이 반복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동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커튼을 쳐주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유일한 취미였던 TV도 더이상 틀지 않게 되었다. 휴대폰이 울려도 집어들지 않았다. 식사 중에도 수저를 놓치거나 반찬 그릇을 엎지르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찬장을 열다 머그잔을 떨어뜨렸고, 또 어떤 날에는 고물 수레에 손을 베어 피를 흘렸다. 동수는 조심스레 아버지의 손을 받아 소독약을 묻히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정말 더는 혼자 두면 안 되겠구나.’ 아버지는 아픈 내색 하나 없이 가만히 손을 내밀었고, 동수는 그 손등에 깊게 패인 세로 주름을 바라보았다.


고물 줍는 일도 완전히 그만두게 되자, 아버지는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창가에 앉아 볕을 쬐거나, 부엌과 거실 사이를 아주 천천히 오가는 게 전부였다. 벽에 등을 기댄 채 하루 종일 앉아 있거나,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든 모습도 자주 보였다. 그런 날엔 동수는 괜히 숨소리를 낮추고, 말없이 그의 옆을 지나쳤다. 말수가 줄었던 그 시절보다도, 지금의 침묵은 훨씬 더 짙고 무거웠다. 그 고요는 단순한 조용함이 아니라, 더는 아무 말도 필요 없는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종류의 고요였다.


동수는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갔다. 병원 대기실에는 안대를 하고 오고가는 환자나 앉아서 핸드폰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접수대에는 무표정하게 환자를 대하다가도 뭐가 그리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나왔는지 자기들끼리 킥킥대는 간호사들이 있었다. 병원 창문 너머로 우중충한 가을의 흐린 빛이 묻어들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검사실을 몇 차례 오간 뒤,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동수는 문득 손끝이 차가워졌다는 걸 느꼈다. 오래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아버지는 익숙한 무표정으로 의자를 지키고 있었다.


의사는 컴퓨터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신경이 거의 망가졌습니다. 이제 오른쪽 눈도 곧 시력을 잃을 겁니다. 각오하셔야 합니다.”


말은 조심스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명확했다. 시력을 잃는다는 건 단지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접점을 잃는다는 뜻이었다.


동수는 어깨를 굳힌 채 고개를 끄덕였고, 아버지는 그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침묵하고 있었다. 눈썹 하나 꿈틀이지 않았고, 동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런 질문도 없었다. 동수는 그 침묵이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었다. 차라리 당황하거나, 무언가를 물어봐 줬다면.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모든 말을 삼켜버리는 쪽을 택했다.


병원을 나와 차에 올랐을 때도,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창밖에는 오후의 빛이 잿빛 구름 사이로 간헐적으로 스며들었고, 차 안에는 히터 바람이 낮게 웅웅거렸다. 조수석에 앉은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익숙한 거리 풍경일까, 아니면 이미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마지막 응시일까.


동수는 핸들 위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교차로의 신호등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붉은 빛이 초록으로 바뀌고, 다시 황색으로 변하는 그 단순한 변화조차, 그날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앞 유리 너머의 세상이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책임지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감당할 수 없다는 감정이, 너무나 또렷했다. 그 모순된 감정이 어깨 위에, 손목 위에, 그리고 그의 가슴 깊숙한 곳에 얹혀 무겁게 눌러앉아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서연은 동수와 카페에 앉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녀는 그날따라 말수가 적었고, 커피잔을 손가락 끝으로 돌리며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컵받침 위를 미끄러지는 도자기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고, 동수는 그 소리에 집중하는 척하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유리창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낯설 만큼 지쳐 보였다.


“우리… 조금만 더 생각해볼까?”


그 말은 갑자기 떨어진 것 같았지만,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곁에 머물고 있었던 문장이었다. 동수는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더는 이 삶을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손을 다쳤을 때는 약국에 가서 연고를 사오기도 했고, 가끔 함께 했던 밥상이 너무 조용하면 일부러 농담도 던졌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말없이 숨을 쉬는 것조차 벅차 보였다.


“당신이 뭘 포기하고 있는지 알아. 나도 알아. 근데…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잖아.”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끝이 떨렸다. 그 떨림 속에는 동수를 향한 원망도, 연민도,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고백도 함께 섞여 있었다. 그녀는 동수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를 떠날 결심을 조용히 굳히고 있었다.


“당신은 평생 그 사람을 보고 살았겠지만… 그 사람은 널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적어도…진심으로는.”


그 말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말은 아팠고, 동시에 정확했다. 동수는 반박하지 못했다.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말이 그의 내면 어딘가를 정통으로 찔러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를 이해한다고 믿었지만, 동시에 그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시간도 분명 존재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동수는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식은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손에 들고서, 그는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남긴 말과, 아버지의 침묵이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각각의 말 없는 무게가 마음속에서 부딪혔고, 생각은 점점 안쪽으로 침전되어 갔다. 그날 밤, 그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있었고, 서연은 문가에 서 있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고, 동수는 그 사이에 앉아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입이 붙은 사람처럼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서연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없이 등을 돌리고 걸어 나갔다. 동수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깨어났다. 벽시계 초침이 방 안을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며칠 뒤, 동수는 결국 양로원 입소를 결정했다. 수십 번의 망설임 끝이었다. 책상에 앉아 입소 신청서를 펼쳤을 때, 그는 펜을 손에 쥐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 가족관계. 단순한 항목들이었지만, 각 칸을 채워 넣는 것이 마치 하나의 문장을 써내려가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보호자와의 관계’라는 란에 ‘자’라는 글자를 쓸 때, 손끝이 잠시 떨렸다. 그는 마음속으로 수십 번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나 혼자 편해지기 위해 당신을 보낼 수 있는 걸까. 이건 도피일까, 배려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단정할 수 없는 마음속 물음들 앞에서 그는 몇 번이나 펜을 내려놓았다. 그런데도, 펜은 결국 마지막 칸에 도달했고, 서명은 잉크로 남았다. 검은 글씨는 조용했고, 묵직했다.


짐을 싸는 날, 아버지는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아니, 담담해 보이려 애쓰는 쪽은 오히려 동수 쪽이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커튼을 타고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바닥에 가늘게 그려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동수를 불러 침대 옆에 조심스레 놓아둔 낡은 여행가방을 열게했고, 옷 몇 벌을 집어 넣도록 했다. 옷은 오래되고 빛이 바래버린 면티와 츄리닝 바지 따위들이었고, 그밖에는 헤진 손수건, 그리고 젊은 시절 어머니와 함께 찍은 흑백사진 몇 장이 전부였다.


“이건, 챙기지 말자.”

아버지는 손거울 하나를 가리키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떠난 후에도 가끔 그 거울을 닦던 모습을 떠올린 동수는, 그 한마디에 이상하게 가슴이 조여왔다. 아버지는 이삿짐이 아니라, 인생의 잔재를 정리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동수는 말없이 짐을 정리했다. 옷을 개는 손길이 이상할 만큼 느렸고, 주름을 맞추는 데에 쓸데없이 정성이 들어갔다.


짐을 다 싼 뒤, 아버지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동수도 말을 걸 수 없었다. 현관으로 나서기 전,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거실 한복판에 섰다. 흐려진 눈으로, 천천히. TV, 소파, 주방, 벽에 걸린 시계, 창문 너머 낡은 놀이터까지 그는 마치 눈에 담기 위해 애쓰는 듯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은 슬프다기보다, 한 편의 의식 같았다. 지금껏 살아온 날들과, 말없이 흘러간 침묵의 시간들에 보내는 마지막 작별 인사처럼.


양로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별다른 저항 없이 안내를 따랐다. 복도에는 조용한 텔레비전 소리와, 서로 다른 리듬의 걸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몇몇 노인들이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고, 간간이 웃음소리와 기침이 엇갈렸다. 창밖에는 단풍나무의 마른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은행나무에서는 은행 썩는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직원이 문을 열고 방 안을 소개할 때,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앉은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것은 분명한 미소는 아니었지만, 동수가 지금껏 본 아버지의 표정 중 가장 부드러운 것이었다. 평온했고, 조용했으며, 해방된 사람의 얼굴 같았다. 마치 이곳이 자신을 위한 마지막 장소라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로 말했다. “이제 됐다”고. “여기까지다”라고.


동수는 혼자 차에 올라 시동도 걸지 못한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양로원 벽과 나무들이 가만히 흐르고 있었고, 엔진은 조용히 꺼진 채였다. 마음속이 복잡했다. 차마 그 미소의 의미를 묻지도 못했고, 대답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건 있었다. 아버지가 이 선택을 받아들였다는 것. 어쩌면, 그것을 오래도록 기다려온 사람은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는 것.



(계속)



3부는 https://brunch.co.kr/@grapeseed/170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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