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동수는 늘 웃는 얼굴을 찍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웃고 있는 얼굴이 아니라 웃음이 터지기 직전의, 그 미세한 전조의 순간을 담으려 했다. 입꼬리가 조금씩 꺾이는 지점, 눈매가 살짝 흔들리는 찰나, 그리고 광대뼈 위에 스치듯 내려앉는 빛의 명암. 완성된 미소는 오히려 연극 같았고, 진실은 그 직전의 망설임 안에 머물렀다. 동수는 그 찰나를 찾아 다녔다. 누군가가 마음을 풀기 직전,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은 표정, 말하자면 마음의 여백 같은 것.
이번 전시회 제목은 [작은 웃음]이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대체로 빛 아래 있었다. 놀이방에서, 놀이터에서, 작은 골목에서. 고요한 미소, 깔깔대는 웃음보단 막 웃기 시작하려는 얼굴들. 아이들의 얼굴엔 설명할 수 없는 햇살이 있었고, 동수는 그 햇살이 감싼 순간을 잡아내는 데 몰두했다. 그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어쩌면 그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도 했다.
사진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어릴 적부터 그는 타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아이였다. 말을 걸진 않았고, 걸 수도 없었다. 대신 눈으로 말하는 법을 익혔다. 사람은 눈으로 이야기한다. 눈빛은 말보다 먼저 진심을 드러내고, 입술보다 먼저 흔들린다. 그는 그렇게 배웠다. 누구에게 배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말이 적은 집에서 자랐고, 침묵이 일상이었던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런 그는 자기도 모르게 사람의 표정을 기억하고, 그 속에서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어내는 습관을 들였다. 그래서 그는 사진기를 들었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의 사진은 표정을 읽는 일인 동시에, 자신의 세계를 복원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무도 들려주지 않은 말, 끝내 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미지로 남기는 방식. 누군가는 그걸 기록이라 했고, 누군가는 예술이라 불렀지만, 동수에게 사진은 그저 말의 대체물이자 침묵의 번역이었다.
동수의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다. 아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동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는 대화라는 것을 나눠본 적이 없었다. “다녀왔습니다”에 “응”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날은 오히려 낯설 정도였다. 아버지는 늘 조용했고, 침묵으로 모든 것을 대신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어린 동수가 무언가를 물어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린 나무가 벽돌벽을 뚫고 자라나려는 것과 같았다. 무리였고, 상처가 남았다. 둘만 있는 집 안에는 TV 소리나 수저 부딪히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적막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웠고, 동수는 그 침묵 안에서 눈빛을 읽는 법을 익혀야 했다. 말 대신 눈을 보는 일. 어디까지가 화난 얼굴인지, 어떤 날은 조금 덜 피곤한 것인지. 그는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의 눈빛을 파악해야 했다. 그건 사랑을 원해서라기보단, 생존을 위한 감각이었다.
전시를 마친 날, 서연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족발을 시켰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포크를 들었다. 늘 그랬듯이.
“너는 왜 그렇게 포크를 좋아해?”
서연은 웃으며 물었다. 질책이라기보단 의아함이 섞인 말투였다.
“치킨 먹을 때도 포크, 밥 먹을 때도 포크. 아예 손에 포크를 붙이고 다녀.”
동수는 그제야 눈을 깜빡였다.
“몰랐어? 나 어릴 때부터 포크 쓰면 혼났어.”
“진짜?”
“집에 아예 포크가 없었어.”
“진짜 이상하다. 왜?”
“글쎄. 그냥, 안 된다고 했어. 어릴 땐 이유 없이 안 되는 것들이 많잖아.”
서연은 젓가락으로 무김치를 집어 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지금은 복수하듯이 쓰는 거야?”
“그런 셈이지.”
동수는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포크는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를 향한 작은 반항심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가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거의 유일한 ‘형태’였다.
집에 돌아오면 풍경은 전시장과는 전혀 달랐다. 빛도, 냄새도, 공기의 결도, 감정의 밀도까지 모두 달랐다. 전시장에는 웃음이 있었고, 아이들의 숨결이 있었으며, 무언가 살아 움직이는 기운이 있었다. 하지만 이 집에는 오래된 시간만이 묵직하게 쌓여 있었다. 현관문을 열면 먼저 맞는 건 습기와 약한 철 냄새가 뒤섞인 공기였다. 그건 아버지가 주워오는 고철 덩어리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못 하나, 냄비 뚜껑 하나에도 녹과 먼지가 배어 있었고, 동수는 그 냄새가 낯설지 않았다. 익숙했다. 그 쓰레기더미로 동수 부자는 지금껏 살아왔다. 고철 위에 얹힌 생계, 말없는 식사, 느린 오후.
아버지는 늘 거실 한쪽, 오래전 어디선가 주워 온 가죽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가죽은 벌써 갈라지고 눌려 있었고, 등받이 한쪽은 눈에 띄게 꺼져 있었다. TV는 켜져 있었지만 화면은 정지된 듯했고, 아버지는 그 빛을 마주하지 않고 있었다. 화면은 의미 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그것은 마치 이 집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다녀왔어요.”
동수는 인사했고, 아버지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말이 없는 사람. 대신 움직임으로 대답하는 사람. 그 동작 하나가 모든 감정의 표정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왼쪽 눈 실명 이후 감당할 수 없는 침묵과 함께 집을 나갔다. 아버지의 유일한 기술이었던 막노동도 더는 하지 못하게 된 후, 대화는 거의 없어졌고, 말보다 깊은 피로만이 서로를 향했을 것이다. 실명의 충격과 무너지는 집안 사정, 더 깊어진 침묵은 어머니에겐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삶은 점점 집 안으로만 수축되었고, 그와 반대로 어머니는 집을 벗어났다.
동수는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차갑게 식어 있던 반찬통 몇 개를 꺼내고, 전날 끓인 국을 다시 데웠다. 밥솥에서 밥을 퍼 담고, 국을 담고, 그릇을 가지런히 놓았다.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숟가락과 젓가락만이 그릇과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다. 언제나 그랬듯, 말 없는 식사. 식탁 위엔 늘 필요한 만큼의 음식만 있었고, 그 위로 쌓인 침묵은 오래된 먼지처럼 가볍지만 치워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도 서로를 보지 않았고, 말 대신 한 숟갈 한 숟갈이 마음을 대신했다. 그 조용한 식사 속에서, 동수는 늘 아버지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아버지는 늘 같은 표정이었다. 무표정, 혹은 너무 오래된 감정.
서연과의 갈등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아버지를 향한 직접적인 불만은 없었지만, 그 존재 자체가 불안정한 감정의 근원이었다.
“그냥… 난 네가 네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서연은 부드럽게 말했고, 그 부드러움이 동수를 더 아프게 했다.
“난 살고 있어.”
“아니, 넌 죄책감에 눌려 있는 거야.”
“그 사람이 날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생각해.”
“근데 너는, 그게 고마운 게 아니라 무서운 거잖아. 넌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굴어. 말없이, 도망치지도 못하고.”
동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녀의 말이 맞는 걸 알아차려서였다. 서연은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우린 아직 괜찮아. 하지만 네가 계속 그 안에만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계속)
2부는 https://brunch.co.kr/@grapeseed/169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