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그날 밤, 방 안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창문을 열면 부딪히는 바람 소리마저 잠든 듯했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대신 바라보지 않음으로써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불이 꺼진 후, 나는 그의 팔에 안겨 누웠다. 이불 속으로 스며드는 온기는 따뜻했고, 그의 숨결은 내 목덜미에 살짝 닿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직 지금이라는 감각만이, 그와 나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기대었고, 그는 나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우리는 아주 오랜 침묵 속에서 서로를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를 따라가며 하나의 박동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들숨과 날숨, 정적 속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몸짓,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체온, 그리고 입맞춤. 나는 그의 품 속에서 그가 경험했을 자유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단단히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그의 체온 속에서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슬픔도 없고 불안도 없고 걱정도 없이, 우리는 하나였다. 일체감에 머무르며, 죽어도 좋겠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생각했다.
그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로 끌어올렸다. 나는 그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짓는 미소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 미소엔 무언가 끝내려는, 그러나 동시에 무언가를 다 주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손을 움직였고, 그의 목에 손을 댔다. 그의 체온이, 맥박이, 손바닥을 타고 가슴으로 전해졌다. 그 순간, 나는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내 손이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나는 당황해 손을 빼려 했다. 그러나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눈빛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목이 메인 채로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왜."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정말 사랑한다면…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지금 죽여줘. 사랑으로 충만할 때, 이 감각이 최고조일 때… 그 순간에 끝나고 싶어. 제발. 제발… 고통이 아닌 사랑으로 끝맺고 싶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인생을 주고 싶어."
그의 말은 흐릿하면서도, 그러나 선명했다. 나를 끌어안고 있는 이 남자는 지금, 죽음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것도 사랑이라는 이유로. 나는 겁이 났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이 사람이, 사랑을 통해 소멸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
"안 돼. 그런 거 말하지 마. 그건… 그건 사랑이 아니야."
"그래도 돼. 너라면 괜찮아. 내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건 고통이 아니야. 아름다움이야. 당신이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해. 이 이상 뭘 더 바랄 수 있겠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나는 그의 팔에서 벗어나며 간신히 몸을 떼어냈다. 숨이 가빠지고, 눈물로 시야가 흐려졌다. 그는 말없이 내 옆에 앉았다. 그 고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괜찮아.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알아. 당신은… 나를 살리고 싶어 하니까. 나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해."
나는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무너지는 순간을, 나는 손으로 막고 있었다. 그의 죽음은 멈추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어딘가를 떠나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를 안고 잠들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처럼. 그러나 사실 나는 내내 깨어 있었고, 그의 체온을 기억하듯 끌어안고 있었다. 그의 삶의 목적을 알아버린 순간, 나는 모든 게 달라졌다는 걸 알았다. 나는 사랑하기에 살고 싶었고, 그는 사랑하기에 죽고 싶어했다. 사랑이 서로에게 다른 모양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내 곁에 있었던 시간 내내, 그는 조용히 작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도.
나는 아직도 그가 내 손바닥에 남긴 맥박을 기억한다. 그것은 살고자 하는 몸의 마지막 저항 같기도, 모든 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순응 같기도 했다. 무엇이든, 그는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이별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랑이 너무 깊어서, 그 사랑이 끝이라는 말을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에.
그와 함께하는 매 순간이 선물처럼 소중했지만, 나는 점점 내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침묵 속에서, 눈빛 속에서, 나는 나 아닌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만 같았다. 그를 안아줄수록 나는 그의 무게에 눌렸고, 그를 더 사랑할수록, 그의 죽음을 더 선명하게 떠올리게 되었다.
그의 품 안은 너무 따뜻했고, 그의 눈빛은 너무도 선명했지만 그 안에는 삶이 아니라, 마지막을 향한 안식만이 머물러 있었다. 나는, 사랑하기에 도망쳤다. 나는, 사랑받고 있기에 떠났다. 그의 모든 감각으로부터. 그의 모든 고요로부터. 그리고, 그가 나를 사랑한 방식으로부터. 그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무수히 많은 밤을 멍하니 보내곤 했다. 침대에 누운 채, 그와 함께 보냈던 마지막 장면을 끊임없이 되감고, 되감고, 또 되감았다. 그가 내 손을 자신의 얼굴로 이끌던 순간, 아무 말 없이 웃던 얼굴, 마지막으로 느껴졌던 그의 맥박. 그 모든 감각이 아직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체온, 눈빛, 마지막 숨결이 내 호흡에까지 스며 있는 듯했다. 그는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그와 헤어짐을 선택하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출근을 했고, 업무를 마쳤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회의 시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모든 동작은 유리창 너머의 연기처럼 흐릿했다. 웃는 얼굴조차 어딘가 어색했고, 대화는 머릿속에서 되뇌기 전엔 이해되지 않았다. 식당의 맛은 느껴지지 않았고, 카페의 음악은 멜로디가 아닌 진동처럼 지나갔다. 익숙했던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고, 낯설었던 모든 것들이 나를 삼켜버릴 듯 다가왔다. 그러나 그 감각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옅어져 갔다. 그렇게 나는 그를,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잊어가고 있다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으려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누른 뉴스 앱에서 화면을 스크롤하던 내 손가락이 멈췄다. 연인간의 살인 사건을 다룬 인터넷 기사에서 그를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다시 스크롤을 올려 연인을 죽였다는 여자의 사진을 보았다. 하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젊은 여성. 그녀의 눈엔 흐르다 말라붙은 눈물이 남아 있었다. 감정이 고여 있던 자리에 마지막 흔적처럼. 나는 그 눈물에 사랑이란 감정이 담겨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느꼈을 감정을 상상해보려 했다. 그를 안고, 그의 체온을 느끼고, 그의 마지막 말들을 들으며,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그 순간의 충만함 속에서, 그는 진심으로 행복했을까. 그 선택이 자신이 원하던 결말이었다고 믿으며 눈을 감았을까. 아니면, 그 찰나에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떠올리며,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진 않았을까. 그녀는 그런 그를 끝까지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사랑이라고 믿은 어떤 절박한 감정이 그를 죽음으로 이끈 것일까.
나는 문득, 그것이 정말 사랑이었는지를 묻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일.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은 과연, 사랑일 수 있을까. 사랑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감정일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그것은 사랑의 이름을 가장한 파괴였던 걸까. 혹은 가장 순전한 형태의 헌신이었을까.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이해하고 싶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감당해낸다. 누군가는 사랑을 통해 살아남고, 누군가는 사랑 속에서 사라진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는 그 사랑을 끝으로 삼았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그를 떠나보냈다. 그 모든 사랑의 모양은 달랐지만, 그 누구도 가볍게 말할 수 없는 무게를 품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견디는 사람들이었다.
여자의 눈을 자세히 바라봤다. 플래시 불빛에 순간적으로 반사된 그녀의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떠 있었다. 슬픔인지, 안도인지, 공포인지, 사랑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채. 나는 그 눈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하철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바퀴와 레일이 맞닿는 소음은 마치 내 심장의 고동처럼 울렸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나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울었다. 어떤 흐느낌도 없이, 그저 눈물만이 흘렀다. 울어야 할 이유를 찾을 필요조차 없었다. 나는 단지, 울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마치, 그의 방에서 홀로 잠들어버린 이불 위의 온기처럼. 오래전 꺼져버린 초의 연기처럼.
나는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인터넷 창을 닫았다. 화면이 어두워지고, 다시 홈 화면이 나타났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는 듯이, 혹은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