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남은자들 04화

사랑의 맥박 (1)

단편 소설

by 포도씨

(작가의 말 : 이번 소설은 https://brunch.co.kr/@grapeseed/4의 초단편을 단편소설화 한 것입니다.)




손가락이 멈췄다. 바쁜 출근길, 사람이 가득 찬 만원 지하철 좌석에 운 좋게 앉아 있는 중이었다. 익숙하게 뉴스 앱을 무의식적으로 넘기다 어떤 기사 제목이 시선을 붙잡았다.


[남자친구를 살해한 20대 여성]


그다지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다. 연인 사이에 벌어지는 죽음은 이제 뉴스에서도 흔했다. 질투나 배신, 감정의 충돌, 때로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가 폭발을 일으켰다. 술에 취해 다툼이 있었고, 평소 폭력의 기미가 있었으며, 결국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터졌고, 한 사람은 죽었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그날도 나는 별 생각 없이 화면을 눌렀다. 흔한 뉴스. 흔한 사건. 그러나 익숙한 것은 언제나, 가장 느닷없이 낯설게 다가왔다.


화면 속엔 한 여성이 호송 차량으로 이송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하얀 모자와 마스크에 얼굴을 가린 채,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카메라 플래시에 반응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앞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그 눈매에는 흐릿한 흔들림이 있었고, 나는 그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녀가 우는 것 같았다. 울음인지, 무너짐인지 모를 그 표정에는 무언가 얇은 균열이 스며 있었다.


그러다 그 사진 아래, 사건 현장을 담은 이미지에서 내 손가락이 다시 멈췄다. 사진 속 공간. 정확히 말하면, 그의 집이었다.


벽에 걸린 작은 그림 두 점, 베이지 톤의 소파, 그 위에 놓인 짙은 갈색의 쿠션. 창가에 매달린 드림캐쳐.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너무도 잘 아는 것들이었다. 그림은 내가 처음으로 그에게 선물했던 거였다. 두 연인이 서로 껴안고 키스를 하는 장면과, 사과와 바나나 같은 과일들이 탐스럽게 담긴 바구니. 기념일을 앞두고, 작은 화방에서 산 캔버스에 엉성한 색을 입혀 완성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나의 유화였다. 쿠션은 그가 이케아에서 고르고, 내가 커버를 직접 만들었다. 그는 내가 바늘에 손을 찔러가며 천을 꿰매는 걸 보고는 몇 번이나 “그만 해도 된다”고 했지만, 완성된 쿠션을 소파에 놓으며 기뻐하던 그 표정을 나는 기억했다. 그리고 드림캐쳐는… 데이트로 들렀던 한적한 골목의 작은 공방에서,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만들었던 우리만의 장식품이었다. 나는 손 기술이 서툴렀지만, 그는 그런 나를 칭찬하며, 기꺼이 창가에 걸었다. 그 모든 것이, 사진 속에 그대로 있었다. 그곳은, 나의 기억이 머물던 공간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본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죽은 건가. 정말 죽은 건가. 그 기사가 말하는 ‘남자친구’가, 내가 사랑했던 바로 그 사람인 걸까. 뉴스 기사에는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고, 여자의 정체 또한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내 직감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만든 물건들, 내가 그에게 줬던 시간, 그가 내 곁에 있던 모든 순간들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창가에 걸린 드림캐쳐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 장식이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있었을지 생각했다. 우리가 이별하고, 그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 동안, 그 방은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그의 방은 나를 닮아 있었다. 어딘가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과, 남아도는 공간, 그리고 무언가를 애써 놓아주지 못하는 마음까지도.


나는 기사 속 여성을 다시 보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말하자면, 사랑을 잃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사랑을 끝낸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게, 가장 두려웠다. 사랑을 끝낸다는 말이, 이토록 무거울 수 있을까. 그녀 대신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날, 그가 내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의 마지막 미소를 외면하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 그를 살린걸까?






5년 전이었다. 막 학교를 졸업한 나는, 처음 입사한 작은 광고회사 4층 사무실의 낯섦에 매일 압도당하곤 했다. 출근 첫날,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오픈형 책상과 구획 없는 회의 공간에는 누구 하나 웃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 누구인지는 알지도 못한 채 인사만 여러 번 반복했고, 오후에는 입사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자리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날, 처음 본 그도 조용한 사람이었다. 사내 복지 게시판 앞에서 홀로 핸드폰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을 기억했다. 어깨가 조금 구부정했지만, 손가락이 예뻤다. 그는 자리에 돌아와 앉을 때마다 의자를 끌지 않고 들었다. 작지만 배려가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며칠 후, 나는 교육 자료를 정리해 인사팀에 제출하라는 업무를 처음 맡았고, 프린트실 앞에서 어쩔줄 몰라 서성이고 있었다. 프린터기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때였다.


“찾는 거 있으세요?”


그의 목소리는 작지만 또렷했다. 나는 놀라 고개를 들었고, 그는 웃으며 다시 물었다.


“출력 안 된 거요? 프린트기 잘 고장나요, 얘는.”


그는 내 대신 버튼을 몇 개 눌렀고, 재출력된 문서가 기계 아래로 차례차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A4용지를 정리해 내게 건네며 말했다.


“그 정도면 오늘은 퇴근 성공하신 거예요.”


그 말에 괜히 웃음이 났다. 그날 처음, 회사에서 웃었다.


그는 따로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무심한 사람도 아니었다. 점심시간이면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서 마주친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누군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는 조용히 문서를 정리해 도와주었다. 그가 맡은 자리는 기획부였다. 회사 전체의 색과 톤을 가장 먼저 잡는 부서였다.

내 자리는 디자인 파트와 기획부 사이, 화장실 옆 책상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내 모니터를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사람들을 의식할 때마다 작업하는 손이 자꾸 느려졌다. 포토샵 단축키를 눌러도 반응이 없었고, 저장을 하지 않아 한참 고생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디자인 파일을 잘못 첨부해 클라이언트에게 보낸 날도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 회사에서 나 같은 사람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 차가 되었을 때, 나는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문득, 그에게만은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날, 처음으로 식사를 같이 했다. 회사 근처 고깃집이었다. 나는 된장찌개가 나오기도 전에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요. 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난 못할까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물을 한 잔 따르더니, 젓가락으로 내 접시에 반찬을 하나씩 덜어주었다.


“다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거예요. 처음인데… 실수 안 하면 이상하죠. 나도 첫 달에 회사 문 비밀번호 세 번 틀려서 경고장 받았어요.”


그는 말을 이으며 입가에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그때만 해도 여기가 무슨 감옥인 줄 알았다니까요. 지금도 조금 그렇긴 해요.”


그 한 마디에 나는 웃음과 눈물이 섞여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식사 후, 우리는 조용한 골목의 포장마차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는 처음부터 무언가를 애써 말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말 없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계속 다닐 수 있을까요?”

“내일만 나오면 돼요. 그다음은 또 그다음 날 생각하면 되고요.”


그 말은 단순하지만, 그날 밤 내게는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그와의 관계는 그날 이후 달라졌다. 우리는 여전히 부서가 달랐고, 식사를 같이 하지도, 특별한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그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그가 음료 하나를 내 책상에 올려두고 갈 때면 나는 늘 혼잣말로 “감사합니다”를 말하고, 그가 회의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괜히 모니터를 확인하는 척했다. 그건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많은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나아졌다. 작업 속도가 빨라졌고, 작은 실수는 메모장에 적어두고 고쳤고, 기획부와의 협업도 안정적으로 돌아갔다. 1개월, 2개월. 계절이 넘어갈 무렵, 그가 점점 더 편하게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먼저 “우리 밥 먹어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성격이었다. 거리를 두지만, 다정한 사람.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천천히 스며들었다. 호의는 조심스럽게, 호감은 조용히 다가왔다. 누구도 다가서려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리고 어느 늦은 저녁, 그가 내게 전화했다.


“퇴근하고 나니까, 딱 한 사람 생각나더라고요.”


그 말은 고백도, 요청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가 내 곁에 있다는 걸 처음으로 ‘기쁜 일’로 여겼다.



(계속)


2부는 https://brunch.co.kr/@grapeseed/166 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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