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속도에 숨이 차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업무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동생이 운영하고 있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생 아들 원룸 월세라도 채워보려는 마음이다. 50대 중반에 새롭게 배워야 하는 일이지만 편의점에서 계산하는 일쯤은 나도 할 수 있겠지라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편의점은 간단한 음식과 생활용품을 파는 곳이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상품 계산만 하면 되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때로는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하기도 한다.
그중에 택배 접수 전달 업무가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아들에게 설명은 들었지만 경우의 수가 많아서 접수방식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택배 손님이 오면 어떻게든 하게 되겠지? 설마 택배 손님이 많기야 하겠어? 운이 좋으면 피해 갈 수 있겠지라며 만만하게 생각했다. 아들도 이모네 편의점에는 아주 가끔 있는 일이라고 엄마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그런데 아주 가끔이라던 그 택배 업무가 근무 3일 차에 닥쳤다. 그나마 손님에게 전달만 하면 되어서 부담이 덜했다. 업무교대하면서 사장님인 동생이 손님이 보여주는 큐알코드 찍고, 송장번호 확인하고 내주면 된다고 어려운 일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이것쯤이야 나도 하지?"
라고 했지만 내가 근무하는 시간에는 손님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근무 한 시간쯤 지난 뒤 마침내 택배 손님이 왔다.
자, 침착하게,
아무 일 아니란 듯해 보자고!
포스기에서 택배전달 메뉴를 터치하고,
“큐알코드 보여주세요.”
손님이 휴대폰을 내밀었고, 이제 큐알코드만 스캔하면 된다.
삐비빅?
어, 안 된다.
다시 한번... 삐비빅?
큐알코드가 스캔이 안 된다! 손님의 휴대폰을 이렇게 저렇게 눕히고 세우고 올리고 내리고... 이게 왜?
“죄송합니다. 제가 처음이라서요...”
사과하는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손님도 당황스러워한다. 몇 번 더 삐비빅 거리고 나서야 겨우 큐알코드 스캔을 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안녕히 가세요!"
식은땀이 등줄기에서 또르르 굴렀다.
편의점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음료수 몇 개 계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편의점에서 택배라니! 택배라 함은 내가 받을 때는 택배 기사님이 집 앞에 놓아두는 것이고, 내가 보낼 때는 우체국에 가는 것 아닌가? 쉰 살이 넘도록 택배는 그렇게만 주고받았다. 편의점에서 보내고 받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 세상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택배 시스템에 뭔가를 했구나! 더 편하게 또 변했구나!
세상은 부지런히 쫓아가고 있는데도 자꾸만 멀리에서 변하고 있다. 편의점은 일상의 상품을 파는 곳이라는 나의 상식을 가뿐히 누르고는 택배도 받고, 교통카드도 충전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나의 상식이 구식이 되는 현재, 나는 어느 세상에 살고 있지? 이제 나의 상식은 과거이고 나의 일상은 현재이다.
어느 세대를 살든 세상의 변화를 겪는다. 특히 현재 50대가 가장 큰 물결을 맞고 있다. 20대에 컴퓨터를 배우고, 30대에 인터넷 랜선 소통을 시작하고, 40대에 스마트폰을 사용한 세대이다. 전자 통신 분야에서 맨 앞에 있다가 점점 뒷자리로 물러서고 있는 꼴이다. 그렇다고 나는 모르는데 하면서 피해 갈 수도 없다. 어떻게든 배워야 생존하는 세대이다. 인터넷 쇼핑도 할 수 있고, SNS로 소통하는 것도 익숙하다. 화상회의도 참여하고 편집 앱도 간간히 사용한다. 나름 잘 배우고 뒤처지지 않게 잘 따라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우 하나를 배워 놓으면 열 발자국 앞에서 낯선 언어들이 어깨를 세우고 있다. AI는 무엇이고, 챗GPT는 또 어떻게 쓴다는 말인가? 인공지능 로봇이 어쩌고 하더니 이건 또 어떤 세상이란 말인가? 따라가지 못하면 뒷방 신세가 되는 건가? 아직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나는 낯선 시스템 앞에서 어질어질하다. 세상은 나의 시간보다 너무 빠르게 흐르고 있다. 중년의 아줌마는 숨이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