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금만 쉬었다가 가자.
첫 해외여행을 갔을 때였다. 나는 약 한 시간 간격으로, 의자가 보이기만 하면, 일행에게 잠깐 앉았다 가자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하루에 삼만 보 이상을 걸어 재끼며 온갖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일정을 소화한 지 삼 일째였다. 다리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발바닥에 뜨겁고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심지어 든 것도 없는 가방이 어찌나 무겁게 느껴지던지 그냥 만사가 싫었다. 유명하다는 건물의 장엄함이니 아름다움 따위는 느낄 겨를도 없었다. 당장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는 내 육신을 쉬게 해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흥미롭지 않았다. 미술관이라도 들어가면 미술 작품을 보는 것 대신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지켜봤다. 그리곤 이내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너무너무 피곤했다. 여행은 고문이 아닐까. 이렇게 많이 걷고 괴로운 것이 여행이라면 이걸 굳이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근데 정작 같이 간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오히려 뭐를 더 해볼까, 매사에 의욕적이었다. 나의 이 저질 체력 때문에 친구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아 괴로웠다. 나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쉬고 싶지 않을 때 쉬어야 했으니 말이다. 서울로 돌아오기 직전에는 거의 울고 싶은 지경이 되었다. 나 또한 당장 느껴지는 육체적 고통에 집중하느라 놓쳤던 많은 것들이 아쉬웠다.
그때 처음 생각했던 것 같다. 체력에 대해서. 강인한 체력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건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사실 나는 남들에 비해 빨리 지칠 수밖에 없었다. 과체중일수록 조금만 걸어도 여기저기 관절에 과부하가 걸리니까. 뚱뚱한 몸은 자주 크고 작은 한계를 만들었다. 체력이 되지 않으니 이런 건 섣불리 못 할거고, 괜히 내가 끼었다가 민폐가 될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이런 체력을 가진 게 부끄럽고. 살이 찌면 관절이 아픈 것뿐만 아니라 피곤함도 금방 느낀다. 마치 언제나 피곤한 몸, 풀려버린 눈, 쏟아지는 졸음이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듯했다. 맑고 개운한 정신을 유지하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질수록 삶의 질도 그에 비례해 뚝뚝 떨어졌다. 그래서 강인한 체력을 갖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을 건강하게 잘하고 싶어서. 의욕만 앞서고 몸이 따라주지 않는 그 불협화음이 못 견디게 싫어서.
운동 목적을 물어볼 때면 나는 언제나 두 가지를 얘기한다. 체중감량과 체력증진. 몸을 단련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듯, 체력이 길러지는데도 꾸준함이 필요하다.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할 수 있는 운동이 많지 않았다.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니 중량을 치면서 하는 고강도의 웨이트는 아예 불가능했다. 대부분 전신 위주의 저강도 맨몸운동이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힘이 들어서 잘하지 못하는 시간이 참 답답했다. 내 몸은 원래 이것밖에 못 하니까. 더 무리했다가는 허리가 아파질 거고, 그럼 지금 하는 운동마저도 못하게 될 테고, 안 되겠다 여기까지만 하자.
어느 날은 같이 운동하는 언니가 내게 등산과 마라톤을 나가자고 제안했다. 체력이 안 돼서 못할 것 같은데. 걱정이 앞섰다. 괜히 이런 체력으로 나갔다가 큰일 나는 거 아닐지, 혹시라도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일이 생기면 서로 속상할 테고. 그럴 때마다 언니는 등산이든 마라톤이든 언제나 네가 갈 수 있는 속도로 가면 된다고 가볍게 얘기했다. 꼭 정상을 올라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기록을 세우는 일도 아니니까 무리하지 않고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면서. 등산과 마라톤은 강철 체력의 소유자들만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꼭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등산과 걸어서라도 완주가 목표인 마라톤이라니. 왠지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이 슬그머니 풀리는 기분이었다.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변변한 등산화도 없어 대충 엄마 거를 빌려 신고 나갔다. 막상 산 초입부에 다다르자 과거에 어지럽고 속이 좋지 않아 황급히 하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지. 조금 긴장이 됐다. 내 페이스에 맞춰서 천천히 가면 돼. 느려도 괜찮아. 얼마나 올라갔을까. 반복되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 점점 허벅지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고 호흡도 거칠어졌다. 그래도 아직까진 어지럽지는 않았다.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언니에게 말을 걸 여유도 있었다. 그제야 조금 긴장이 풀렸다. 아, 지난 시간 동안 운동을 헛한 건 아니구나. 맨날 이렇게 똑같은 기본 운동만 해서 언제 좋아질까 툴툴거리기만 했는데.
확실히 과거에 비하면 많이 좋아져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멋들어진 웨이트 동작은 아직 못하지만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게 수월해지고, 회사에서 조금 덜 피곤하고, 짧은 거리는 걷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대단한 변화를 바라느라 작지만 확실한 변화는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언니는 계속해서 허리랑 무릎은 아프지 않은지 확인했다. 하지만 관절 통증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었지만 언니는 아쉬운 기색 없이 곧장 내려가자고 했다. 조금씩 천천히 늘려나가면 되니까 오늘은 더 무리하지 말자고. 나도 고집부리지 않고 내려가는 데 동의했다. 그날은 이상하게 약한 내 관절과 체력이 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정상을 오르지 못하고 내려왔지만 괜찮았다. 나의 체력도 근육을 키워가고 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해보지도 않고 못 한다고 했던 것들이 늘어날수록 나 자신도 내 몸을 한계 짓고 있었다.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안 봐도 어떤 결과일지 뻔히 보인다는 이유로. 그런데 정말 해보지 않으면 영원히 모른다. 내가 지금 어디쯤인지, 얼마큼 좋아지고 나빠졌는지. 실패한 등산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굳건히 믿고 있던 믿음과 한계가 얼마나 별것 아니었는지 알려줬다. 완벽해야 하는 등산이었다면 내 몸은 여전히 한계 덩어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잘 못 해도 괜찮고, 안되면 멈추고 돌아가도 된다는 느슨함 덕분에 오히려 어떤 가능성을 보았다. 다음에는 조금 더 많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상이 아니라도 괜찮다. 지금은 그저 한 발 더 많이, 조금 더 늦게 통증을 느끼는 게 중요하니까. 누군가에겐 고작 그 정도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조차도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간절히 바라던 모습이었으니까. 애쓰지 않고 자주 느슨하게 시도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내 귀여운 체력도 어느새 힘이 세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