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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방 Oct 14. 2023

답장

A

(이이영 씀)


수는 조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조는 수의 손길을 따라 웅크리고 있던 어깨를 풀었다. 수는 어깨 펴, 그렇게 말하는 것 대신 다정한 손짓으로 말했다. 조용히 벌어지던 변화의 찰나를 목격하며 나는 뻣뻣한 목을 한 바퀴 돌렸다. 


그날 A도 그랬다. 그의 책에 사인을 받겠다고 막 책을 내민 뒤였다. A는 책을 펴지도 않고, 싸인을 하기 위해 이름을 묻지도 않고, 내 한쪽 어깨를 한참 어루만졌다. 그날 입고 갔던 피케이 티셔츠 원단이 A의 손길을 따라 양옆으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가슬가슬했다. 그건 원단의 느낌이었지만, A의 손길이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반년 전 A의 수업을 중도 하차하겠다는 메일을 보낸 뒤 나는 오랜만에 울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완전히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소리치는 날을요.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 시동이 꺼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죽음의 날들을요. 그동안 저는 대부분 대체적으로 시동이 걸렸습니다. 매연을 뿜든, 사이드 미러가 하나 없든, 천천히 가든 조건이 어떻든 어딘가로 갔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고장 난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고장 난 것을 알게 되면 고쳐야 하는 게 싫었습니다. 


끝까지 쓰지 못한 말 : 제가 아는 한 최대한 멀리 갔는데 다시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관성처럼요. 그러니 망가지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멍한 얼굴로 상담실에 앉아있는 내게 상담 선생님은 온몸을 이용해 말했다. 이영, 너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 어린 시절 부모 역할의 부재로 나에게 이러이러한 결핍과 인지 왜곡이 생겼다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에이포 용지에 적어가면서 설명했다. 뭐든 알게 해 주려는 선생님의 시도가 빈 종이 위에서 사각거렸다. 그럴수록 나는 불안해졌다. 내 고통이 진짜인가요?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거라면요? 사실 그건 나의 착각이라면요? 이 이야기를 엄마가 들었을 때 죽을 만큼 억울하다 면요? 내가 갖고 있는 고통이 고통이 맞는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져보고 싶었다. 백 명 중 백 명이 나의 고통에 동의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다시 집으로 되돌아온 것을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는 제 감정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객관적으로 이해받고 싶어요. 이해, 이해받고 싶어요. 이 생각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이해, 받고 싶어요. 그럼 선생님은 또 다른 말을 하기 위해 두 팔을 휘두르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고 감정을 표현했다. 마치 연극배우처럼, 그렇게 몸을 썼다. 그 몸짓이 A의 답장이 됐다. 마치 두 사람이 이어받기를 하는 것처럼 절묘하게.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아예 이해 못 하진 않아요. 


모니터에 선명하게 찍힌 이해라는 두 글자에 목구멍이 가슬가슬해 입 안의 공백을 삼켰다. 백 명 중 한 명이 나의 고통을 반쯤은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한 것인데, 내 고통이 고통이 맞는지 하나하나 따져본 것도 아닌데 마음이 휘청했다. 숨 쉬어, A의 메일에는 숨 쉬라는 말이 한마디도 없었지만 어쩐지 그렇게 들렸다. 


우리 어떤 날 다시 만나요. 


나는 참고 있던 것을 뱉었다. 잠깐 질서가 뒤바뀌는 것을 눈을 감고 지켜봤다. 이미지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땅 속 깊은 곳까지 떨어졌다. 나도 그렇게 같이 무너졌다. 저항 없이 누워 지냈다. 매일 아침 해야 할 일을 정리할 필요도 없었고, 읽어야 할 책도 써야 할 글도 없었다. 그즈음 내가 해낸 일은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고, 온 힘을 다해 1호선에 몸을 싣고, 몸을 씻는 일이었다. 휴지통이 쓰레기를 다시 뱉어낼 만큼 집이 엉망이 됐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냐고 물었고, 엄마는 다음 날 내 방문을 벌컥 열더니 물었다. 너 우울증이야? 


다 먹은 약봉지를 버리러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가족들 몰래 정신과 약을 먹은 지도 3년이 지났다. 보통 약봉지는 에코백에 차곡차곡 모았다가, 가방이 꽉 찼을 때 밖으로 가지고 나가 버렸다. 내 이름 가운데 별표가 쳐진 약봉지 일부는 공원에 비치된 쓰레기통에, 남의 집 생활 쓰레기 안에, 회사 쓰레기통에 버렸다. 영역 표시를 하는 기분으로. 이*영의 약봉지는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었다. 


A는 내 팔뚝에서 손을 떼고 책 표지를 열고는 이렇게 썼다. 재회의 기쁨과 고마움을 담아. 


다시, 


너 우울증이야?
나는 뭔 소리냐고 대답했다. 이해받을 수 있을까. 나는 엄마에게 이해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해받을 수 있을까. 엄마는 찜찜한 얼굴을 하고 돌아섰다. 이해받을 수 있을까. 그 소리는 염불이 되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이해받을 수 있을까.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아예 이해 못 하진 않아요. 


나는 딱딱한 책을 건네받으며 A의 눈을 바라봤다. 잘 지냈어요? 사실은 여전히 뒤죽박죽 흘러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쩐지 A에게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다시 읽고 쓰려고요. 그게 설령 거짓이 된다고 해도, A는 아예 이해 못 하진 않을 테니까. 쪽지처럼 접힌 약봉지 다섯 개가 가방 한 구석에서 굴러 다녔다. 귀찮지 않은 날에는 부피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렇게 접어둔 것이었다. 삼십일 중에 오일. A를 다시 만난 날에도 약봉지를 정성스럽게 접었다. 정말 쪽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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