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3.살다가 힘들면 아빠한테 와. 아빠가 떡볶이해줄게

우리 떡볶이 먹고 힘내자!

by 사랑 머금은 햇살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세상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과 마주쳤을때, 따뜻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50이 훌쩍 넘어서도 그립습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었던 우리 집 말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고 차가워도, 문을 열면 환하게 날 반겨주는 부모님이 늘 계시던 곳.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언제나 들을 수 있었던 곳.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따뜻하게 차려져 있던 곳.


그곳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어머니가 해주셨던 달달하고 매콤한 떡볶이였습니다.


내 천사를 위해 만드는 음식, 떡볶이.


돌아보면, 내가 가진 너무도 평범하고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고 살지요.


아이가 간절했던 나에게는 ‘육아’로 잠도 못 자고 고생스럽다는 친구들의 불평조차 부러웠습니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아기들의 몽당연필 같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너무도 사랑스러웠고,
유모차안의 아기와 눈을 맞추며 미소 짓는 아빠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렇게 부러워만 하던 어느 날, 내게도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평범했던 매일이 특별해졌고, 소소했던 일상이 선물이 되었습니다. 내 품에 천사가 안긴 것 말고는 변한 게 없는데, 세상이 참 아름다워졌습니다.


나는 잠에서 덜 깬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시간이 감사하고,
칭얼거리는 아이 숙제를 봐주는 저녁 시간이 애틋합니다.

내가 해주는 간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그 작은 입술이 마냥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나도 아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만듭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내게 그랬듯이.


처음 만든 떡볶이는 서툴렀지만...


결혼 후 내가 처음 떡볶이를 만들었던 건 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내가 심한 몸살로 결근한 날이었습니다. 퇴근 후 누워 잠들어 있던 아내를 보고, 그저 따뜻한 한 끼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평소 요리를 하지 않던 내가 "대충" 물을 잡고, 냉장고 저 안쪽에 잠자던 밀떡을 찾아 넣고, 또 "대충" 고추장과 물엿을 물에 풀었습니다. 젊으셨던 내 어머니가 해주시던 모습을 상상하면서.


"여보, 약먹으려면 뭘 좀 먹어야지."


어설펐지만, 남편이 만든 그 달고 매운 "대충 떡볶이"를 맛있게 먹으면서
"떡볶이를 먹으니 힘이 나네요."라고 말하는 아내를 보며,

아무런 위로의 말 없이도,
‘그저 한 그릇의 음식이 위로가 될 수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아내가, 그리고 내 아이가 힘들 때, 기분이 가라앉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는 그저 떡볶이를 만들었습니다.

내가 묵묵히 떡볶이를 만들고 있으면,
'우리 아빠가, 우리 남편이 내가 힘들었던 걸 아는구나.'
라는 위로가 - 말 없이도 - 아내와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을 알게된 것이지요.


앗! 뜨거! 아빠, 물, 물, 물!


어느 날 퇴근하고 보니, 딸아이가 식탁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눈을 마주치진 않았지만, 그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구나.
산수 시험을 잘못 봤나?
친구하고 싸웠나?
아니면, 선생님한테 혼났나?'


나는 옷을 갈아입고, 아무 말 없이 바로 부엌에 들어가 냄비를 꺼냈습니다.
고추장을 풀었고, 떡을 넣었습니다. 어묵도 넣고, 양배추도 썰어 넣었지요. 아, 아이가 좋아하는 만두도 넣었습니다. 잠시후 그럴싸한 모습의 떡볶이가 식탁위에 오르자, 딸아이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빠, 나 오늘 진짜 속상했어."

아이는 한껏 힘없는 얼굴로 떡을 집어 입에 넣더니,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앗! 뜨거! 아빠, 물, 물, 물!"

나는 황급히 물컵을 건네주며 웃었습니다.


"천천히 먹지 그랬어? 괜찮아? 뜨거운 줄 모르고 꿀꺽 삼켰구나?"

아이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후... 근데 너무 맛있어서 그냥 먹어버렸어."


나는 피식 웃으며 아이를 바라봤습니다.

"그렇게 맛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떡볶이를 다시 집었습니다.

이번엔 후후 불어가며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응! 아빠가 해주는 떡볶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이를 바라봤습니다.


"하하. 그래? 왜? 뭐가 그렇게 맛있어?"

아이는 살짝 고민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냥... 아빠랑 같이 먹으니까!"


'아이고,

언제 이렇게 컸니. 아직도 아기인 줄만 알았는데.'


"그럼 우리 앞으로도 계속 같이 먹자. 언제든 먹고 싶을 때 말해."

아이는 씩 웃으며 떡볶이를 집어 내 그릇에 하나 올려줬습니다.


"아빠도 먹어. 그런데 아빠는 천천히 먹어야 해! 아직도 뜨거워."


나는 아이가 건네준 떡볶이를 천천히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떡볶이는 조금 식었지만, 내 마음은 따뜻해졌습니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자, 우리 힘내자. 떡볶이 먹고!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건 거창한 해결책이 아닌 듯합니다.


떡볶이 한그릇이,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대화를 시작하게 해주고,
말을 안해도 서로 이해한다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떡볶이를 함께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낯선 곳에서 힘든 일을 맞닥뜨릴 때,

"아, 집에 가면 아빠가 떡볶이를 만들어주겠지. 아빠한테 가보자."라며,

아빠의 떡볶이가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 작은 기억이,
삶을 버티게 해주는 작은 힘이 될 수 있기를.


세월이 흘러도,
이 작은 냄비 하나로 나눴던 시간들이
아이의 마음속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떡볶이를 만듭니다.

'살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아빠한테 오렴. 아빠가 떡볶이 해줄게.'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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