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4. 딸은 진짜 엄마편만 드나요?

아빠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요.

by 사랑 머금은 햇살

딸들이 엄마편만 들어서 서운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 딸은 다르겠지... 기대 했는데, 진짜 엄마 편인듯해요. 다른 엄마, 아빠들도 같은 생각이신가요?


아침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토요일 아침. 초등 2학년이 된 딸이 애착 인형을 안고, 나를 흔들어 깨웠다.

"왜 벌써 일어났어? 아빠 졸린데. 좀 더 잘게."

"아빠, 일어나. 엄마가 아파."


부엌에 가보니 아내가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얼굴이 창백했고, 눈 밑이 푹 꺼져 있었다. 누가 봐도 아픈 모습이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나 소변 색이 탁하고, 여하간 좀 이상해. 방광염 같아."

"방광염? 왜 하필 외국에서? 오 마이갓."


해외에서 누군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영어 병명 검색."이다. 컴퓨터를 켜고 ‘방광염’을 검색했다.


Bladder infection.


'아, 방광염을 이렇게 말하는구나. 이제 영어로 설명할 준비는 일단 됐다.'
의사가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물으면, 일단 Seems like bladder infection 그러면, 진료 시작하겠지.


"언제부터 그랬는데?"

"한 일주일 된 것 같아."

"많이 아파? 피가 나고 막 그래?"

"피는 안 나고, 많이 아프지는 않은데 많이 불편해."


당최 한국말인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말을 할 때는, "더 이상 얘기하기 싫으니까 날 위해 뭘 좀 해봐."라는 메시지다. 결혼한 지 20년 정도 될 때쯤부터 남편들은 말을 대충 해도 아내의 심중을 알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알았어. 일단 방에 가서 쉬고 있어."




주말이라 병원이 열었는지 전화했다. 소변 샘플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같이 가겠다는 아이를 간신히 떼어놓고, 아픈 아내를 차에 태우고 10분 거리의 병원에 도착했다. 미리 공부해놓은 대로 방광염 같다고 얘기를 시작하자, 의사는 예상대로 이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진료를 마쳤다. Bladder infection이 맞았다.


"방광염 맞네요. 하지만 너무 걱정할 건 없어요. 여자들이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종종 생깁니다. 푹 쉬면 좋아질 거예요. 항생제를 처방할 테니, 집안일하지 말고 잘 쉬게 해 주세요. 일주일 뒤에 다시 소변 샘플을 가져오세요."


아내가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내 쪽을 슬쩍 보며 씨익 웃었다.

"여보, 들었지? 집안일하면 안 된대~"


왜 웃지? 안 하던 의료 영어를 오래 해서 인지 피곤하던 참이었는데 정신이 번쩍 났다. 나보고 집안일하라는 얘기구나.




의사가 처방해 준 항생제, 위보호제를 들고 엄마 껌딱지가 기다리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껌딱지가 엄마를 걱정스레 쳐다보며 물었다.


"엄마, 이제 괜찮아?"

"응. 주사 맞고 약 먹었으니까 괜찮아. 그런데, 이제 집안일하면 안 된대." 이 얘기를 굳이 또 하는 이유는 뭔지.


껌딱지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결심한 듯 말했다.


"엄마, 진짜 꼭 쉬어야 해! 이제 아빠가 다 해 줄 거야! 아빠, 들었지?"


"뭐? 그럼 넌?"


"난 숙제해야 돼."


어휴. 토요일인데. 뭔 숙제...


딸은 확실히 엄마 편이다.


'딸, 그래도 아빠는 괜찮아. 아빠도 엄마 편이거든. 결국, 우린 같은 편이야.^^'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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