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8. 한국에만 존재하는 5,000만개의 서열

by 사랑 머금은 햇살

"넌 몇학년? 몇살? 몇년생이야?" 질문은 계속된다.


한국에서는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다. 심지어 같은 해에 태어났어도 생일이 빠르냐 늦느냐에 따라 서열이 나뉜다. 빠른 2015년생이면 2014년생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지만, 생일이 늦으면 동생이다. 멀리 이국땅에서도 한국 꼬맹이들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서로의 나이부터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들한테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한지.


"너 몇학년이야?" "1학년" "나도 1학년인데. 그럼 몇살이야?" "7살." "어? 나도 7살인데."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 엄마가 끼어든다. "그럼 너 몇년생이니? 용훈이는 2017년 6월에 태어났어."


다른 아이 엄마가 대답한다. "우리 형탁이는 2018년 2월이에요."

"그럼, 내가 형이야. 형이라 불러." 용훈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주변에 있던 엄마들은 맞장구를 친다. “그래, 형탁이는 이제 용훈이를 형이라고 불러야겠다.” 그렇게 형탁이는 용훈이를 형으로 부른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이렇게 7살, 6살 아이들의 서열이 정해졌다. 이런 방식으로 한국 꼬맹이들 10여명의 서열이 차례로 정해졌다.


근데, 엄마들이 다 똑같이 생겼다.


"Hi Meg, I have a question."


미국 본사의 임원들이 한국을 가끔 방문했었다. Don이라는 이름의 VP가 방문했을때도, Hi Don이라고, 부사장의 이름을 부르며 회의를 진행했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국인 임원들에게는 서로 "A 상무님", "B 전무님", 그리고, "사장님"이라고 직급을 붙여 깍듯하게 호칭하면서. 심지어 CEO가 방한시에도, 그 이름을 불렀었다. "Hi, Meg".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정도의 보스는 보스도 아니다. "Hi Darren".


즉, 중요한건 담당 업무와 역할이지, 직급이나 나이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청바지 입고, 서로 이름 부르면서 회의하면 분위기는 부드러워진다. 외국인들한테 "저 부사장 몇살이야?" 이런 질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 한국의 직급 체계는 외국인들한테 설명하기도 어렵다. 일단, 한국의 직급 체계는 직무보다 연차가 먼저 보이는 구조다. 그리고, 높은 직급으로 갈수록 대부분의 조직은 나이가 많아진다. 여기에 신참, 고참 같은 접두어가 직급앞에 붙어, 때로는 서열이 더욱 세분화기도 한다.


한국의 서열 문화는 어디서 왔을까.


여하간, 한국의 서열 문화는 오랜 역사와 사회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유교적 가치관, 집단주의적 사고방식, 고도 성장기에 형성된 학교 및 회사 문화 등이 그 배경일 것이다.


유교 문화에서 연령은 곧 권위를 의미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았다. 사실 그런 경험과 지혜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으니까 일리가 있었다. 또한, 전후 급속한 경제 개발 시기에는 효율적인 조직 운영이 필수적이었고, 이때 사람을 줄 세워 통제하기 가장 쉬운 객관적 기준이 바로 ‘나이’였을 것이다.


학교와 회사에서도 이 서열 문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학교에서는 학년과 생일로 서열을 정하고, 회사에서는 연공서열에 따라 연봉과 승진이 결정됐다. 이런 문화는 과거에는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고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현재처럼 급격히 변하는 기술 중심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한 번 배운 지식이나 기술로 몇십 년을 써먹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몇 개월 만에도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시대에 뒤처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7살이면 1학년, 8살이면 2학년. 이렇게 나이를 기준으로 교육이 진행된다. 영재들이 월반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천재 한명이 10,000명을, 아니 1,000,000명도 먹여 살리는 시대인데.


서열을 나이로 정하는 문화는 어쩌면 언어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국어는 존댓말과 반말이 뚜렷하고, 말투 하나로 관계의 위아래가 정해진다. 아이들이 처음 만나 나이를 묻고 서열을 나누는 건, 호기심이 아니라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정리하려는 본능적인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언어 탓만 할 수는 없다. 영어에는 한국식 존댓말이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예의를 잃고 살아가는 건 아니다. 그들은 나이가 아니라 역할과 생각으로 서로를 존중한다.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 동료들이 그랬다.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였다.


한국어가 서열을 중시하는 언어라면, 이제 우리는 그 한국어의 한계를 의식적으로 넘어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언어가 사고를 규정짓는다고 하지만, 사고가 언어를 바꾸기도 하니까.




갓생, 킹받다, 어쩔티비, 억까, 내돈내산, 스불재, 삼귀다, 머선129, 꾸안꾸. 효율을 중시하는 우리 아이들은 이미 숱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빠르게 언어를 바꾸고, 요점을 간결하게 담아내며,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표현한다. "^^", "~", "ㅎㅎ"등의 이모지도 마찬가지다. 또한, "굿밤요!", "물 좀 갖다주삼", "업로드 좀 해줄수 있음?"과 같은, 존대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이상한(?)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더 자유롭고 평등한 소통을 향한 본능적 움직임 아닐까.


이렇게 보면, 부모 세대와는 다르게 외국어와 외국의 수평적 문화를 많이 접한 우리 아이들이 한국어를 개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존 세대는 '이게 무슨 말이야?'라며 당황할지 모르지만, 이런 새로운 표현들로 존대말과 반말로 나이가 강조되는 한국어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것 아닐까. 나이로 인한 서열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 아이들의 시도는 오래전부터 시작된듯 하다. 왜? 어른들이 못하니까.



* 저처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갓생 (신처럼 모범적이고 부지런한 삶)

킹받다 (매우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 상태)

어쩔티비 (상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거나 대응할 가치가 없다는 의미)

억까 (억지로 까내리다, 즉 근거 없이 비난하거나 험담하는 것)

내돈내산 (내 돈 주고 내가 산 제품이나 서비스)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뜻으로, 자초한 문제나 곤란한 상황)

삼귀다 (사귀다의 이전 단계로, 썸보다 진지하지만 정식으로 사귀지는 않는 애매한 관계)

머선129 (경상도 사투리 '무슨 일이야?'를 변형한 표현으로, 놀라운 상황)

꾸안꾸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진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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