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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un 29. 2023

경쟁하지 말고, 독점을 창조하라

<제로 투 원>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

지난 글에 이어 <제로 투 원>을 2장 ~ 4장을 읽고 배울 수 있는 내용을 씁니다.


닷컴 붕괴가 남긴 교훈

2장 '과거에서 배워라'에서는 '닷컴 붕괴가 남긴 교훈'을 다루는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때쯤에는 온 나라가 이미 시장 붕괴는 1990년대의 기술 낙관론에 대한 일종의 '신의 심판'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풍요로운 희망의 시대'에는 '탐욕에 미쳤던 시대'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고, 그 시대는 완전히 끝난 것으로 선언되었다. <중략> 미래를 위한 희망은 기술이 아니라 글로벌화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략> 그 결과 또 다른 버블이 양산되었고, 그게 바로 '부동산'이었다.

그리고 피터 틸은 스타트업 세계의 절대 원칙으로 잡은 네 가지 교훈을 열거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 원칙보다는 정반대의 원칙이 옳다며 반박합니다. 그가 제시한 정반대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소한 것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대담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

2. 나쁜 계획도 계획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3. 경쟁이 심한 시장은 이윤을 파괴한다.

4. 판매 역시 제품만큼이나 중요하다.


널리 퍼진 통념을 거부하는 피터 틸의 태도는 다음 문장에도 드러납니다.

진정으로 남들과 다른 사람은 다수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경쟁적 생태계 vs. 독점 기업

3장에서 피터 틸이 말하기를 가치 있는 기업은 '창출한 가치의 일부를 계속 보유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와 경쟁이라는 모순을 설명합니다.

미국인들은 경쟁을 신성시하며 경쟁 덕분에 우리가 사회주의자들처럼 가난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본주의와 경쟁은 서로 상극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축적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완전경쟁 하에서는 경쟁을 통해 모든 이윤이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기업가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은 분명하다.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또 보유하고 싶다면, 차별화되지 않는 제품으로 회사를 차리지 마라.'

피터 틸은 또한 경쟁적 생태계와 독점기업이라는 대비를 만들어 설명합니다.

경쟁적 생태계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잔인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중략> 독점기업은 경쟁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직원들이나 제품에 더욱 정성을 쏟을 수 있다. <중략> 사업에서 '돈은 중요한 것이거나 아니면 모든 것이다.' 독점기업들은 돈 외에 다른것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독점이 아닌 기업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중략> 기업이 매일매일의 치열한 생존 경쟁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독점 이윤' 말이다.

또한, 독점 기업 중에서도 창조적 독점 기업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춥니다.

창조적 독점 기업들은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풍요로움을 소개함으로써 고객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한다. <중략> 애플이 아이폰을 디자인, 제조, 마케팅해 얻는 독점 이윤은 인위적으로 물량을 줄였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든 것에 대한 보상이다. 마침내 고객들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스마트폰을 구매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준 것에 대한 보상 말이다.


독점은 진보의 원동력이다

아래 인용한 문장들은 마치 피터 틸의 가치관을 보는 듯이 강렬한 느낌이 전해집니다.

진보의 역사는 곧 더 나은 독점기업이 전임자의 자리를 대신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 독점은 진보의 원동력이다.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독점 이윤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은 혁신을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독점기업은 혁신을 계속 지속할 수 있게 되는데, 왜냐하면 독점 이윤 덕분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경쟁 기업들은 꿈도 꾸지 못할 야심 찬 연구 프로젝트에도 돈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책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은 왜 그토록 경쟁에 집착하며, 경쟁을 이상적인 상태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것은 전적으로 역사의 유물이다. 경제학자들은 19세기 물리학자들의 업적에서 수학을 베껴왔다. 경제학자들은 개인과 기업을 고유한 창조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환 가능한 원자로 여긴다. <중략> 완전경쟁이 최선의 사업 형태라서가 아니라 모형화하기 쉬운 형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물리학이 예측한 장기적 균형이란, 우주의 열역학적 죽음이라고도 알려진, 모든 에너지가 균등하게 분배되고 모든 것이 멈춰 선 상태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난에 가까운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경제학계에서도 이러한 약점을 알기 때문에 행동경제학 같은 분야가 부상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피터 틸의 다음 문장은 비난처럼 느껴지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줍니다.

비즈니스에서 균형이란 정체를 뜻하고, 정체는 곧 죽음이다. <중략> 완벽한 균형이란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 공간을 뜻할지도 모른다. 혹은 수많은 기업들이 갖고 있는 특징과도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새로운 창조는 균형과는 아주 거리가 먼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경제 이론을 벗어나 실제 세계에 나가보면, 모든 기업은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만큼, 딱 그만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강조합니다.

독점은 모든 성공적 기업의 현 상태다.


경쟁 이데올로기

4장에서 피터 틸은 창조적 독점에 대해 설명합니다.

창조적 독점이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동시에 그 제품을 만든 사람은 지속 가능한 이윤을 얻는 것이다. 경쟁이란, 아무도 이윤을 얻지 못하고 의미 있게 차별화되는 부분도 없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경쟁과 비교를 싫어하는 제 취향에는 굉장히 잘 맞지만, 경제학자들은 비난을 가할 듯한 주장이란 생각이 듭니다. 피터 틸에 따르면 경쟁은 우리의 사고를 왜곡하는 강박관념 즉,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경쟁 속에 갇힌다. 경쟁을 더 많이 할수록 우리가 얻는 것은 오히려 줄어든다. 이렇게 간단명료한 진실을 우리 모두 무시하도록 훈련받았다. 교육 시스템은 경쟁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반영하는 동시에 부추기고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달리 초등학교에 간 아이가 경쟁과 순위에 집착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저로써는 '강박관념'이라는 데에 깊이 동의합니다. 하지만, 사회 인프라에 대한 투영이 아니라 나와 우리 회사에 투영해 보아도 똑같은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다음 문장이 그런 자극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성적이라는 것 자체가 각 학생의 경쟁력을 정확히 측정하는 도구다.

저는 드러커의 영향을 받아 <개발의 시장 가치 측정을 위한 첫 발을 떼다>편을 쓸 때, 우리의 업무나 성과에 대해 측정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한 측정과 성적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과연 질적인 차이가 있을까요? 혹은 질적이 차이가 나도록 측정이라는 수단을 잘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위적인 모형에 맞춘 세상

당장 분명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사회적 통념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해주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이토록 작위적으로 구성된 현실을 기준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게 된다. 희한하게도 학교의 이런 현실은 바깥세상의 현실과도 비슷하다.

경제학자들의 비현실적인 모형에 자신의 현실을 맞추듯이 정체성을 정의하는 일은 계급사회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 체제에 편입되는 대가로 학생들은(또는 그 가족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치솟는 수십만 달러의 수업료를 내야 한다. 우리는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걸까?

피터 틸 스스로가 엘리트 시스템에서 자신이 비난하던 길을 가다가 중도에 빠져나온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당시 나는 보좌관만 되면 평생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중략> 만약 대법원에서 일하게 되었다면, 나는 아마 사건 조서를 쓰거나 남의 사업 계약서의 초안을 쓰며 평생을 보냈을 것이고,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기회비용만큼은 어마어마했다.


전쟁과 평화

피터 틸은 마르크스보다 셰익스피어가 그린 세상이 사람들의 갈등에 대해 설명하는 바가 크다고 주장합니다.

셰익스피어가 그리는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그들은 싸울 이유가 전혀 없으며, 왜 싸우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중략> 결국 두 집안은 애당초 싸움이 왜 시작되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더 나은 지침을 제시하는 것은 셰익스피어다. <중략> 가문의 전쟁이 몬터규 가와 캐퓰릿 가의 아이들을 희생시켰던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지배력을 상실했고, 그 자리에 홀연히 애플이 나타나 두 가문을 모두 제치고 나아갔다. <중략> 전쟁은 큰 비용을 치려야 하는 비즈니스다.

마지막 문장에서 '전쟁'을 언급하니 '2차 세계 대전'의 무대에서 벗어나 강대국이 된 미국, 그리고 '한국전쟁' 여파로 국부를 쌓은 일본의 역사가 떠오릅니다.

어떤 사람이 사회적 신호에 남들보다 덜 민감하다면, 그 사람은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 사람이 물건을 만들거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데 관심이 있다면, 외골수처럼 그 일만 파고드는 것도 겁내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일을 믿기 힘들 만큼 잘하게 될 것이다. <중략> 이 사람은 뻔한 것을 놓고 경쟁하는 무리들 속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때는 geek이라는 말이, 요즘은 nerd라는 말이 표방하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출처: 구글 검색


성적은 목표가 아니다

다음 설명은 경쟁을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 우리에게 벌어질 수 있는 폐단을 명료하게 제시합니다.

'개껌의 가격을 누가 가장 공격적으로 설정할 것인가', '슈퍼볼 광고를 누가 가장 잘 만들 것인가'와 같은 전술상의 각종 문제에 푹 빠진 나머지, 이들 회사는 '과연 온라인 애완동물용품 시장이 계속해서 남아 있을 만한 곳인가'라는 더 큰 질문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앞서 성적과 우리의 활동에 대한 측정값 사이에 어떤 질적 차이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이 '성적은 목표가 아니라'라는 문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꼭 필요한 순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외우고 다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터 틸도 스스로 겪은 시행착오를 밝힙니다. 그리고 경쟁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음을 암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당시 우리의 관심사는 객관적 생산성이 아니라 엑스닷컴을 무찌르는 것이었다. <중략> 가끔은 정말로 사워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싸워서 이겨야 한다. 중간은 없다. 아예 공격에 나서지 말든지, 아니면 한 방에 끝애야 한다. <중략> 경쟁을 가치의 표식으로 보지 않고 파괴적인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어지간한 사람들보다는 분별이 있는 것이다.


지난 <제로 투 원>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

1.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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