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과 대화하기 II
인상적인 페북 글을 읽고 생각이 쏟아져 글을 쓴다.
첫 대목부터 나를 사로잡는 문장이다. 단락 제목을 붙이면 처음에 '없는' 이라고 썼다가 (아예 없지는 않을 테고) 조선후기 정치를 고려하여 '탈피한' 이란 표현을 취한다.
이번에도 박정욱님의 글에서 흥미를 끄는 부분을 추려 묻고 따지는 형식으로 풀어본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중동 다수 국가, 일본, 중국에서 가문 정치를 살펴볼 수 있다. 반면에 우리는 가문 정치가 없다시피 하다는 주장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튀는 존재다. 의정부의 아버지 지역구에서 출마하려던 문희상의 아들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물러난 게 단적인 사례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게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YS 아들도, DJ 아들도 권력 주변을 맴도는 것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았다.
박정욱님이 제시한 원인 분석은 아래 내용이다.
아마도 국왕 밑에 세습영주가 존재하는 봉건제도를 한국이 경험하지 않은 게(혹은 강력한 단일 중앙집권 국가가 오래 지속됐다는 게) 그 한 이유일 것이다. 이건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이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비교적 빠르게 성숙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집권제도를 들자, 자연스럽게 지방 토호를 제거하고 등장한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 조선이 떠오른다. 여기서 단락 제목을 붙여봤다. 조선이 대한민국에 남긴 것. 일제 강점기가 있어 전통이 단절되었다. 그래서, 조선이 대한민국에 무언가 남겼다는 표현은 낯설다. 그리고, (아마 내용은 일본을 배우자였을 듯한) 유신을 외치는 이들이 대한민국 군사정권에 있었다.
하지만, 말할 필요도 없이 한글이 조선이 남긴 최대의 유산이다. 세종은 한글만 남기지 않았으며, 왕의 업적은 물론 민중까지 포함한 조상들의 행동양식은 분명 우리에게 무언가 남겼을 것이다. 최봉영 선생님을 통해 발견한 한글에 숨겨진 비밀을 찾다 보면 생각보다 강력한 무언가가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쓰는 말속에 담겨져 있다.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나는 중국에서 살고 있었다. 뉴스를 들으며 놀랍기도 하고,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한국인들이 아무도 지시하지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자발적으로 모이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2002년 월드컵때 한국인의 단체 응원때부터 그런 현상을 놀라워했다.
그리고, 당시 독일에 살던 지인은 나보다 더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독일인들이 프랑스인과 자존심 싸움을 하기 위해 촛불집회를 활용하기도 한다고 전해줬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프랑스인들에게 자유의지 혹은 시민의식 관점에서 컴플렉스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이 '단두대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집권 세력을 교체하는 시민 혁명(?)을 일으켰다며 프랑스보다 앞선다고 주장했다 한다.
위 이미지를 얻으려고 구글링을 했다가 조금 스크롤 하니 성향이 다른 두 개 신문사가 내놓은 거의 같은 제목의 링크가 눈에 띈다. 그리고, 뻔한 기사 제목에 다소 역하게 느껴졌다. 4년만에 친일파부터 이어져온 긴 적폐가 바뀔 수 있나? 일상에 불만을 지닌 대중의 분노가 정권을 향하게 하려는 의도가 읽히는 제목이다. 독일인들이 프랑스와 비교하듯이 우리 민족은 단두대를 쓰지 않았다. 민족을 반역한 친일파들에게도 그렇게 못했고,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른 장본인이 노년에 골프치면 잘 살고 있다. 이것은 비아냥이 아니고 팩트다. 그런 대한민국이 4년만에 완전히 체제를 뒤짚는 일을 한다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대선판에 무속인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오히려 'BBK가 무죄'라며 사실조차 없던 일로 만들던 10 여년 전에 비해 사회가 투명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망가진 언론환경에서 그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튜브 방송(다스뵈이더)에서 본 아래 자료를 보고 낙관적인 나의 전망에 대한 근거를 찾았다.
MB시절 광우병 보도에 겁을 먹고, 언론을 군사정권으로 돌리려는 듯한 권위주의 정부와 같은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 집권 후에 다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더디지만, 국회에서 공론화를 통해 언론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인터넷 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입장의 유투버들이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며 신생 언론으로 성장중이다.
반면, 주력 신문의 논조는 시대착오 그 자체고, 이제는 네이버 클릭 경쟁에 갇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품질의 기사도 많다. 더군다나 일부 언론은 토건 기업의 방어(?)수단으로 쓰이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집단 지성의 힘에 의해 서서히 진화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을 듯이 보인다.
나는 민주당이 배출한 세 명의 대통령 그리고 하나회 숙청만으로도 역사적 기여가 큰 김영삼 대통령 재임기간을 더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는 20년 정도라고 본다. 20년 치고는 굉장한 성장이다. 그리고, 20년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망가트리려고 했던 두 명의 대통령은 감옥에 있고,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두 번의 정권을 통해 시민을 일깨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시민이 나서 두 명의 대통령을 감옥에 넣었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세력들을 보자. 첫째는 두 대통령을 감옥에 넣었던 사법권력들이다. 검찰과 일부 법관은 지금의 입법부나 행정부에 비해 훨씬 낙후된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지금 어느 정당도 보스 정치를 하지 않는다. 무능해보이는 민주당도 누가 보스인가? 그런 것은 없다. 하지만, 검찰은 어떤가? 3김 시절보다 못한 보스 체제다.
박근혜 탄핵 당시 허겁지겁 기록물을 치우려다가 잡히는 모습이 방송에 잡혔다. 민주 정부가 이뤄낸 기록 시스템이 최악의 집권자들에게도 작동한 장면이다. 반면 재판은 그렇지 못하다. 어처구니 없는 판정을 해도 판사는 불투명이 안전을 보장해준다.
언론에 의해 훈련되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정치를 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정말 알고 욕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정치의 모든 부분이 욕먹을만 상황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나는 기사 읽고 쓰기를 하면서 신문에 잘 나오지 않는 법안과 제도를 알 때마다 깜짝 놀랐다. 정치보다 100배는 후진 언론이 전해주는 말만 믿고 정치 전체를 혐오해봐야 시각만 삐뚤어질 뿐이다.
그리고, 국민 대다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교육 시스템을 보라. 그에 비하면 정치는 급격하게 진화했다. 어제 야당 대선 후보 토론회가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들이 아직 대중의 관심을 사는 일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TV나 라디오에서 군사정권의 권력 다툼 하는 드라마를 틀어줬다. 대중의 관심이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 대중은 내 견해와 다른 투표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촛불을 드는 시민도 존재한다. 교육이나 언론 같은 다른 분야는 그러한지 훑어보면 정치가 후졌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