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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체화는 무의식적 유능을 쌓는 일입니다

지식 덕후의 탄생

by 안영회 습작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인 어둠 속에 갇혀 있다>를 쓰며 교양 수준이지만 진지하게 우리 두뇌의 작동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네 가지 다른 기억이 버무려져 쓰는 글입니다.


자기의 '체화된 지식'을 회복하는 것

첫 번째는 페북에서 본 <자기의 '체화된 지식'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메를로-퐁티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이 개념적 사고가 아니라 감각적 지각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먼저 몸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그다음에 이를 개념화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념을 '체화된 지식'이라고 하였다.

현상적 세계를 만드는 기본 단위는 말이나 말과 대응되는 생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00% 동의하는 글입니다.


결국, 우리는 생물이기 때문에 몸으로 익히는 방식이 오랫동안 우리 신체에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암묵적 기억(지식)을 만드는 일은 그렇다. 그래서 장인들이 악보와 도면을 그린다. 그러나 직각 삼각형의 빗변의 길이를 구하는 방법이나 근친 교배의 유전적 퇴행을 막는 지식은 그런 방법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이런 명시적 기억(지식)을 잘 전수한 집단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들보다 더 많은 땅과 식량을 얻을 수 있었다. 몸으로 먼저 경험하고 이를 개념화한다는 퐁티의 주장은 명시적 기억(지식)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까지 읽고 있으니 확신 수준의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명시적 기억이나 상상을 실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인류의 발전은 명시적 기억(지식)을 자식들에게 전수하며 정교하게 진화시킨 결과이다. 하지만 이런 지식들은 개인의 체화된 지식(embodied knowledge)과 충돌한다. 예를 들자면 세뇌된 명시적 지식이 개인의 성적 본능(체화된 지식)을 억압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그런 충돌의 파괴력이 생로병사의 괴로움이다.

제가 인용한 단락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도 장기간의 경험이 배경 지식으로 작동한 것입니다.


본디 작은 존재와 loosely-coupled

두 번째는 역시 페북에서 본 <본디 작은 존재>입니다.

모두가 큰일을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짬을 내어 일상을 돌아볼 수는 있다. 만인 대 만인의 전쟁터가 되어 버린 사회경제체제, 생존을 위한 일정 관리와 자기 계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남들의 눈치를 봐 가며 쪼개어 써야 할 자원일 뿐이다. 하지만 일상을 찬찬히 응시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체제를 굴리기 위해 동원해야 할 자원이 아니라 조심스레 엮어 나가야 할 연약한 구슬 같은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말로 바꾸면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처럼 꾸준히 노력하면 성과의 크고 작음과 무관하게 결과는 무조건 나옵니다. 조금 더 진지하게 비슷한 메시지를 던져 주신 분은 최봉영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쪽인 나'와 '오인 나'를 차려서 말하고 사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loosely-coupled'라는 영어 단어 하나로 오랫동안 기억해 오던 노하우이기도 하죠.


무의식적 유능 쌓기와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

여기에 불과 며칠 전 처음 들은 '무의식적 유능(Unconscious Competence)'이란 표현이 세 번째 지적 자극을 더합니다.

영상에서 언급된 무의식적 유능(Unconscious Competence)은 학습과 기술 습득 과정을 설명하는 4단계 역량 모델(Four Stages of Competence)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 이론은 1970년대 노엘 버치(Noel Burch)가 Gordon Training International에서 근무하며 개발한 "새로운 기술 학습의 4단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량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충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우리는 생물이고, 몸이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서로 다름이 축복이 되려면>이라는 칼럼도 지적 자극을 제공합니다. 두 개의 문장 덕분인데요. 하나는 자연스러운 경험이나 접점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조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선 자연스러운 경험이나 접점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 처음에는 어색해도 점차 편견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동질 한 집단에 여러 다른 사람들이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기사가 제공하는 두 번째 영감은 '포용적 구조와 문화'를 전합니다.

다양성이 실질적으로 기능하려면,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집단의 일원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와 문화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처럼 ‘포용’은 집단 구성원들의 약속과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수업에서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켰던 것처럼 말이다.


글을 마치고 나서

오타 수정도 할 겸 글을 다시 보는데, 마침 제목을 보니 예전에 조환 님 덕분에 알게 된 김연아의 연습 태도가 떠오릅니다. 그냥 (꾸준히) 하는 것이 바로 김연아가 유능을 쌓는 태도였네요.


지난 지식 덕후의 탄생 연재

(55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55. 중심을 어디에 두는가만으로도 달리 보이는 세상

56. 뉴스를 빠르고 유익하게 소비하기 2025

57. 구글 노트북LM을 이용한 기사 내용 내비게이션

58. 브라우저가 아닌 다양한 플랫폼으로 분산된 검색 욕구

59. AI알못이 AI 논문을 읽고 얻은 호기심

60. 몸으로 체득하는 지식만 기억이 되어 작동한다

61. Time Horizon은 시간지평인가 시간적 범위인가?

62. 미디어 문해력, 협상론적 세계관 그리고 문화의 힘

63. 적대적 트리거와 충조평판 그리고 감정의 민첩성

64. 기억의 3 계층 그리고 점진주의와 프레임 문제의 관련성

65. 인공지능으로 구축하는 월드 모델과 들쭉날쭉함의 원인

66. AI 에이전트의 보상과 가치 그리고 RLHF

67. Validation 번역은 검증이 아닌 타당성으로 하자

68. '복사-붙여 넣기' 패턴과 레거시 코드의 공통점

69. LLM 벤치마크의 세 가지 평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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