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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라살이에서 두 가지 나로, 다시 느슨한 결합으로

지식 덕후의 탄생

by 안영회 습작

김영식 님의 페북에 올린 <찰라살이>를 읽고 씁니다.


하루살이보다도 짧은 생각의 찰라살이

하루살이보다도 짧다?

사람의 수명은 하루살이보다도 짧아 찰라멸입니다!
한 생각의 길이가 '나'의 수명입니다.

김영식 님이 쓰신 글을 읽으며 '생각을 믿지 말라'는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경험이 있어서, 생각의 길이가 '나'의 수명이라는 표현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삶은 연속하여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찰라멸로 끝나버리고

아이들과 등산하는데 큰 아이가 길가에 방목하는 말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풀만 먹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사람과 다른 동물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생각에 있구나 싶었습니다.


허구의 힘을 믿는 사피엔스와 살리며 사는 사람

한편, 지금까지 인문학적 지식 중에 가장 충격을 주었던 순간은 <사피엔스>에서 허구를 전하는 말의 힘을 '인지 혁명'이라는 소개할 때였습니다. 상상도 못 했지만 바로 설득이 되어 충격이 더 컸습니다.

사람들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쓸 때, 종종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일까?' 궁금했는데 어디서도 답이나 힌트를 찾을 수 없었죠. <사피엔스>를 읽기 전까지는요.


그리고, 최봉영 선생님께 한국말 묻따풀을 배울 때, 사람이라는 한국말의 놀라운 정의를 배웠습니다.

한국말에서 사람은 ‘살다’, ‘살리다(살+리+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사람은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임자를 말한다.

그 바탕에서 김영식 님의 <찰라살이>의 다음 글귀를 보면 '살림살이'가 무엇인지 분명해지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찰라생마다 많은 것을 갖추니 충만한 신비입니다. <중략> 매 순간 새롭게 도약하는 장면들입니다.

하지만, 생각이 그대로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괴로워하는 것의 바탕을 '착시'라고 말해 줍니다.

생의 착시를 잘 쓰되 속지는 마세요.
삶은 연속하여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찰라멸로 끝나버리고
매 순간 새롭게 도약하는 장면들입니다.

바로 그 착시가 고통을 낳습니다.


사람이 나라는 임자의 바탕으로 여기는 두 가지 나

그리고, 다음 글귀는 이틀 전에 최봉영 선생님께 받은 자료를 연상시킵니다.

검증할 수는 있습니다.
단 한 조각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으로
전체의 풍광이 변하는 이유를 찾으세요.

사람이 주체적으로 자신과 환경을 인식할 때, '나'가 두 가지 형태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독립적 개체로 자신을 보는 '오인 나'이고, 다른 하나는 어울려 사는 일의 맥락에서의 나를 뜻하는 '쪽인 나'입니다.

인용한 시골 농부 김영식 님의 글귀는 연기(緣起)를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연기의 결과를 생각의 세계에서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법으로 단연 최고의 설명이 최봉영 선생님의 '쪽인 나' 사상 혹은 쪽론[1]입니다.


느슨한 결합(loosely-coupled)과 두 가지 나

기록으로 보면 적어도 2022년부터 최봉영 선생님의 '두 가지 나'를 듣고 마음에 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나'를 받아들이기 쉬웠던 경험적 조건이 이미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 공학을 전공하고 업계에 있는 내내 설계를 위한 제1 원칙으로 '느슨한 결합(loosely-coupled)'을 마음에 두고 살았습니다.


느슨한 결합 활용의 대표적인 예는 '인터페이스 기반 프로그래밍Programming to interfaces'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자바 프로그램 언어가 제공하는 '인터페이스와 클래스 쌍'이라는 구조를 활용합니다.

여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바로 '오인 나'가 클래스이고, 환경(시스템) 혹은 더 큰 맥락(애플리케이션)에서 역할을 구체적으로 지정하는 인터페이스가 바로 '쪽인 나'입니다. 너무나 다른 지식의 연결이라 독자님들이 공감하기를 어려울 듯합니다.


그렇더라도 제가 보기 위한 기록으로라도 남겨 둡니다. '오인 나'와 '쪽인 나'를 동시에 바라보는 전략을 '느슨한 결합(loosely-coupled)'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시공간과 연결하면 애자일과 계절의 필요성과도 연결시켜 볼 수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합니다.


주석

[1] 묻따풀 강학회에서 김양욱 님이 쓰셔서 알게 된 표현입니다.


지난 지식 덕후의 탄생 연재

(55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55. 중심을 어디에 두는가만으로도 달리 보이는 세상

56. 뉴스를 빠르고 유익하게 소비하기 2025

57. 구글 노트북LM을 이용한 기사 내용 내비게이션

58. 브라우저가 아닌 다양한 플랫폼으로 분산된 검색 욕구

59. AI알못이 AI 논문을 읽고 얻은 호기심

60. 몸으로 체득하는 지식만 기억이 되어 작동한다

61. Time Horizon은 시간지평인가 시간적 범위인가?

62. 미디어 문해력, 협상론적 세계관 그리고 문화의 힘

63. 적대적 트리거와 충조평판 그리고 감정의 민첩성

64. 기억의 3 계층 그리고 점진주의와 프레임 문제의 관련성

65. 인공지능으로 구축하는 월드 모델과 들쭉날쭉함의 원인

66. AI 에이전트의 보상과 가치 그리고 RLHF

67. Validation 번역은 검증이 아닌 타당성으로 하자

68. '복사-붙여 넣기' 패턴과 레거시 코드의 공통점

69. LLM 벤치마크의 세 가지 평가 기준

70. 지식의 체화는 무의식적 유능을 쌓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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