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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Oct 14. 2022

쪽인 나와 무아론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15

책 231쪽에는 알듯 말듯한 말이 등장한다.

무아와 연기를 설명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중생들이 지금 이미 완전히 행복하고 자유롭기에 그 사실을 알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알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 바로 '깨달음'일까?

8살 우리 아들은 나에게 (일시적으로) 세뇌되어서 '신은 없어'라고 말한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다룬 아이들 책이 많아서 그에 대해 대화를 하다 내가 무심코 했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아이가 그러면 신이 무엇이냐고 물은 일이 있다. 신은 '완전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추구'라고 말했던 일이 있다.


나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처럼 세상이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이미 완전하기 때문에 불만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알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이해할 듯도 하다. 그래도 섞연치 않은 부분은 자유롭다는 표현이다. 우리는 마음대로 행할 수 있고, 행위가 연기에 의해 벌어지는 파장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뜻일까?


내가 무아론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했던 기록이 떠오른다.

연기의 일부라도 내 의지라는 것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고타마는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한다. 연기 안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일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최봉영 선생님의 '쪽인 나'가 떠오른다.


행위자 이론에서 쪽인 나

최봉영 선생님의 행위자 이론 도식을 본다. '쪽인 나'쪽에만 있는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행위의 알고리듬 측면에서는 subject, object, being, doing 등이 모두 상호작용의 맥락으로 존재한다. 도식에서는 inter라는 수식이 모두 붙는다.

두 번째는 행위의 정당성 측면에서 '온인 나' 다시 말해서 영어의 가상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남까지 함께 위하는' 혹은 '것까지 함께 위하는' 영역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드는 의무는 서양의 '박애정신'은 그러면 어떻게 출발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봉영 선생님께 질문을 하기로 한다.)


무아론은 '나'의 실체가 단지 생각의 다발임을 깨우치는 것

다시 시골 농부님의 책으로 돌아가자. 다음에 밑줄 친 내용을 보는데 다시금 최봉영 선생님의 행위자 이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세계관이 유아론에서 무아론으로 완전히 바뀐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바꾸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없다"라고 설명한 것이 이 전환이다.

유아론과 무아론의 관계가 온인나와 쪽인나 관계와 일대일대응은 될 듯도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매트릭스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분면으로 나타내면 그 안에 드러날 특징이나 요소가 바로 떠오르지는 않아 표현은 할 수 없었다.


아리송한 순간 다음 문장은 비교적 편안하게 이해한 듯한 느낌은 준다.

무아론은 '나'의 없음이 아니라,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실체가 단지 생각의 다발임을 깨우치는 것이다. '나', 사고지능, 생각은 모두 기능적 동의어다.

그런데 바로 뒤의 문장은 또 아리송하게 한다.

생명 현상과 에너지는 그 '나'에 갇혀있지 않다. 사고지능 없이도 모든 생명체가 잘 살아가고 있다.

(박문호 박사님 덕분에) 지각 능력이 없는 동물들은 잘 살고 있다는 사실로 문장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나'에 갇혀있지 않다는 말의 예시로 박문호 박사님 강의 일부가 떠오른다. 심장이 멈추는 순간 마치 세포 사이에 생명에 대한 합의가 있는 것처럼 함께 생명을 포기하는 신비한 현상이다.


관계에 대해 정의하지 않으면 객체 정의가 아니다

내가 동료에게 모델링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 말인데, 동료가 감탄했다.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하나의 객체만 표현하면 아직 객체를 정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나를 둘러싼 환경의 주요 객체와 그 관계를 알지 못하면 세상을 나와 환경의 이분법으로 뭉뚱그려서 보는 것이다. 내가 과연 무엇(?)인지 아는 과정은 나를 둘러싼 관계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난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연재

1.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2. 무의식 변화 인식과 자기 언어 개발

3. 아주 간단한 깨달음 수행법과 믿음

4. 깨달음과 깨달은 사람

5. 깨달음은 무엇이고,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6. 생각에 끌려가지 말고, 생각을 다스리기

7. 동정일여 그리고 몇 주간의 배움

8. 문제삼을 일과 사라지게 둘 해프닝

9. 사고의 틀과 대의적 소프트웨어 설계 방안

10. 주체와 객체 그리고 아기발걸음

11. 홀로서기와 따로 또 같이

12. 깨달음을 전하는 일은 이웃사랑 실천

13.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인 되기

14. 사고지능의 한계와 자연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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