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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ul 08. 2022

깨달음은 무엇이고,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5

이 글은 지난 글에 이어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 51쪽부터 쪽에 이르는 내용중에 관심을 둔 내용과 그와 연관한 생각을 기록합니다.


깨달은 사람과 과대 망상 환자

깨달음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내용으로 저자의 실용적 관점이 마음에 드는 글이다.

깨달음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는 것은 현실에서 이해하여 얻은 바가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의 내용과 상태가 결과가 어떠하든 그것은 결국 생각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생각 밖에서는 이미 아무 일도 없다.

또한, 깨달음에 대해 어떤 경지라 설명하는 이들이 과대망상 환자일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지고 뒤이어 깨달음 자체를 설명할 수 없는데, 저자가 설명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닌 만큼 그냥 천천히 따라가 보려고 한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진리가 필요한 이유는 생로병사의 해결이라는 표현은 통괘하기까지 하다.

신선, 천국, 브라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알 수 없는 것을 구하는 것은 아무리 말이 그럴듯해도 무의미하다. 결국 진리가 필요한 것은 생로병사의 해결이다. <중략> 모든 존재들은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현상을 동일하게 겪고 있다. 그런데 인간만이 생로병사로 괴로워한다.

나는 기독교인이었던 적도 있고, 지금도 카톨릭 신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천국은 좋은 비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험과 몸의 영역을 벗어난 헛된 믿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는 일은 건강하지 않다고 느낀다.

인간은 자연의 현상과 달리 '짠~'하고 나타난 독립된 개체로써의 자아감을 갖고 있다.

<단위로 읽는 세상>에서 봤던 문구가 떠오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문구를 떠오르지 않고, 그때의 느낌이 떠오른다. 자연에서 일상에 오랫동안 벌어져왔던 일에 대해 인간만이 재앙이라고 부른다는...


저자는 선각자들의 가르침에는 공통적으로 '무념'이 들어 있다고 한다.

무념을 진리의 단초로 삼은 것은, 유념(생각)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보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기독교에서도 '순종'을 강조한다. 여기저기서 배운 글이 나를 #순리대로 따르게 하기도 한다. 나는 이들이 거의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유념 즉, 생각의 개입이 인위대로 흘러가게 하니까. 저자의 설명도 명쾌하다.


현대 과학의 언어로 깨달음 설명하기

뒤이은 설명은 박문호박사님 강의를 듣기 전에는 쉽게 따라가지 못할 내용이다.

인간은 감각 기관에서 1차로 수용한 정보들을 기억과 대조하고 가공한 뒤 2차로 의식하는 특화된 기관을 갖고 있다. 고도화된 뇌의 전두엽이다.

어쩌면 박문호박사님 강의를 들은 후라 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문호박사님도 강의 중에 이해는 그렇게 온다는 말을 했는데, 깨달음도 그렇게 오는 것이라고 저자는 자주 표현했다.

개별 유기체의 뇌에서 자연적이고 독립적으로 발생된 것이 아니라, 학습과 모방의 과정을 통해 인류의 집단의식으로부터 이식당한 것이다. 목적은 개별 유기체들을 사회조직의 구성원으로 포함시키고 조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늦게 등장한 뇌의 전두엽을 중심으로 작동된다. 생각은 인간 유기체의 개별적 도구가 아니라 인류의 집단의식 시스템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두엽은 개체의 유지보다는 사회 조직의 유지를 위해서 만들어진 기관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직관과 달라 어색하다는 느낌도 있고, 박문호 박사님이 설명하는 인류의 공진화 과정을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생각은 인간 유기체의 개별적 도구가 아니라 인류의 집단의식 시스템이라는 정의가 주는 자극은 매우 크다. 이에 대한 부연이 이어진다.

컴퓨터가 작동자 및 다른 컴퓨터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드디스크에 설치하는 OS(Operating System)와 같다.


나라는 관념과 가상 현실

나라는 존재가 아니라 나라는 관념이라?

그 가운데 '나'라는 관념은 언어 행위의 주어로 등장하여 모든 생각에 사용되므로 가장 강력하고 명백한 힘을 갖고 있다.

사실 나는 물론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면 사람들이 '나' 혹은 '내 생각', '내 꺼' 등의 말을 할 때 그 경계가 대부분 부정확하다. 그래서 존재라기 보다는 관념이 더 어울리는 말인 듯하다.


진화의 결과로 만들어진 인간의 전두엽은 인류 집단의 가상현실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 구성요소가 된 유기체들에게는 자아감과 시비호오를 따지는 분별 의식을 남겨주어 자연 상태에 없는 새로운 고통이 생겨난 것이다.

위 문장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최봉영선생님이 그린 그림이 떠올랐다. 이 그림도 생각이 인간 유기체의 개별적 도구가 아니라 인류의 집단의식 시스템이라는 입장을 띈 듯하다.

그리고 아래 문장을 읽을 때는 또 어떤 이유인지 <노자가 옳았다>를 읽을 때 배운 내용들이 함께 떠올랐다.

가상현실의 토대가 상생과 지성이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불행하게도 시스템이 야만적인 시절에 시작되다 보니 탐욕과 폭력이 바닥 깊게 놓였다. 그 결과로 가상현실 시스템은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경쟁과 착취에 스스로를 내모는 세계가 되었다. 사는 것이 힘들고 괴롭게 된 것이다.

나는 스스로 경쟁과 착취를 사회체제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사는 법을 익혔다. 최근에는 이를 성경의 표현을 응용해 광야라고 부른다. 몇몇 지인들은 그런 은유가 꽤 와닿는다고 말한다.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는 문장이다.

선각자들은 그 현상들을 깊이 이해하고,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가르친다. 이 세상은 가상현실이며, '나' 역시 환상이라고. 그 환상을 완전히 이해하면 생로병사의 고통이 사라진다고.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지난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연재

1.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2. 무의식 변화 인식과 자기 언어 개발

3. 아주 간단한 깨달음 수행법과 믿음

4. 깨달음과 깨달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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